등록 2001.02.26 18:50수정 2001.02.2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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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는 데까지 1시간 30분의 기차여행이었지만 역사의 다리를 지나온 사람에겐 긴 시간의 흐름이었다. 그 시간의 아픔과 역사의 굴곡을 뛰어넘어 이젠 고요의 공간에 와 있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죽음의 현장.
이 전쟁 박물관은 전혀 박물관답지 않다. 어떤 의미인가 하면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엮고 벽은 대나무로 엮었다. 안에 들어가면 밀짚으로 만든 여치 집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난다. 그리 크지 않은 단층이고 ㄱ자로 꺾어지는 전시실은 입구에 향을 피운 부처가 있다. 전시물이라야 포로들이 해골로 앉아 있거나 누워서 죽어 가는 모습과 노예처럼 부려지는 당시 모습을 그린 그림과, 당시의 흑백사진들을 영어와 태국어로 설명해 놓은 것이 전부다.
비라도 오면 저 전시물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만큼 엉성해 보이는 건물이다. 현진 가이드는 "그래도 태국 정부가 이 정도로 신경 써서 박물관을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한다. 널려진 유적도 제대로 관리 못하고 방치하는 태국 정부 입장을 보면 그 말도 수긍이 간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여기에 오기까지 죽음의 계곡과 콰이 강의 다리는 실감나지 않았다. 그저 여행사의 코스대로 따라 왔을 뿐이라는 거 이외엔…. 그러나 전쟁 박물관을 돌아보며 실감과 전쟁의 상처가 생생히 소름 끼치도록 피부와 닿고 정신에 충격을 주었던 것도 고백할 수밖에.
이건 삶이 아니다…. 생존도 아니다…. 짐승과 다름 없는 아니, 더 처참한 인간들의 사진 앞에서 비로소 전쟁의 잔혹함이 실감났다고 다시 고백한다. 뼈만 앙상한 군인들이 죽어 가는 모습과 열대병으로 온 몸에 피부가 짓물러 초라한 야전침대에 누워있는 사진과 그림들. 전쟁이란 인간이 지니는 모든 잔인함과 처참함을 잔혹하게 실천하는 장이다.
SLOW DEATH…. 나는 그 사진과 그림 앞에서 멈춰 서서 들여다보았다. 이런 제목으로 그들의 죽음을 표현한다. 굶주림과 병과 지독한 노동, 뒤에 찾아오는 죽음. 그리고 40%가 넘는 사망률. 그 죽음은 고통을 다 겪으면서 서서히 찾아왔다. 이 지옥에서 말레이 반도를 정복하려는 일본이 저지른 죄악은 1942년부터 1945년까지 3년 동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에 일어났고 죄악의 현장을 역사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전시물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오래된 오스트렐리아 신문 기사였다. 이곳에서 살아 귀환한 네 명의 군인들이 지팡이에 의지해 낡은 군복을 입고 비쩍 마른 모습으로 웃는 사진 한 장이 실려있다. 이곳에서 죽어간 포로 중에서 호주 병사가 무려 2300여명이고 이는 연합국 중에서 가장 많은 수치이다. 누렇게 낡은 신문기사를 읽어 내려가며 지옥과도 같은 이곳에서 살아 귀환한 병사들의 웃는 모습이 가슴에 아프게 각인됐다.
(2)무릎을 꿇고 묘비를 어루만지다
국립묘지로 가는 도중에 가게에 들러 슬리퍼를 하나 사서 바꿔 신었다. 당장 시원한 바람이 발에 스며들며 살 것 같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후배 주연이와 청년 둘은 그 동안 과일을 사서 입에 물고 있다. 가게에는 태국 특유의 선명하고 현란한 색채로 나염한 옷들이 걸려 있었다. 초록과 엷은 보랏빛, 빨간 바탕에 금박을 박은 태국전통의상은 매혹적이다. 나는 주연이를 살살 꼬셨다.
"우리 저거 사서 입고 돌아 다녀보자. 여기서 안 입으면 언제 입어볼 기회가 오냐?"
결국 이 곳에선 태국전통의상을 사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다음 날 아유타와에서 입고 나가 스타가 될 거라곤 이때만 해도 미처 짐작도 못했다. 더위가 훅훅 끼쳐와 냉방이 된 미니버스로 슬리퍼를 신고 걸어갔다. 이제 차는 국립 묘지로 향하고 있다.
국립묘지란 어떤 의미에선 많은 교감을 갖게 한다. 나는 오로지 생존만을 애타게 바랬을 젊은 군인들의 묘지에 서 있다. 커다란 석재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또 한 쪽에는 '慰靈(위령)'이라고 한자로 새긴 위령탑도 보인다. 6982명의 군인들이 전쟁을 치르다 싸움터가 아닌 노예 사역장에서 죽어가 잠든 곳.
유럽관광객들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 저쪽에서 오가고 있다. 몇 명의 관광객만 있는 넓은 묘지 안은 한산해 보인다. 나는 가까운 묘비로 다가가 하나씩 읽어나갔다. 부대의 문장이 묘비의 동판에 새겨져 있고 한 줄도 채 가 보기 전에 여러 나라의 군인들의 실체가 확인됐다. 주로 43년과 44년 11월에 죽은 군인들이 많은 걸로 보아 식량사정이 열악했거나 병이 창궐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혹은 가장 위험한 죽음의 계곡에서 떨어져 죽었는지도 모른다. 묘지에서 이런 짐작을 하고 있는 자체가 허무하고 쓸쓸할 뿐이다.
"당신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도다" 묘비명을 읽어나가면서 이름과 나이와 사망 날짜를 살펴본다. 29세, 28세, 23세…. 젊은이들의 죽음은 항상 기억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천국에서 편안히 잠드소서" 묘비명이 없는 것도 더러 있다. 가족들이 없는 걸까, 차마 묘비명을 적기 힘들 정도로 아들 또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
"너는 천국에 있지만 너는 죽지 않았다. 그곳에 갈 때까지 기다려다오." 어머니가 쓴 것이리라. 한쪽 무릎을 꿇고 내려다보며 읽고 있는 눈에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더 읽어나갈 수도 없었고 그곳을 떠나기도 싫었다고나 할까. 저쪽을 오가는 저 유럽인들의 가족이나 친지도 이곳에 잠들고 있을까? 묘비를 살펴보는 그들을 보며 잠시 생각해
본다.
손을 내밀어 묘비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동판에 새겨진 묘비명은 그동안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손길이 얼마나 많았는지 활자가 닳은 흔적이 완연했다. 나뿐 아니고 여기를 방문한 사람 모두 이렇게 쓸어보았으리라.
나만 빼고 일행 모두 태국 여행은 처음이라서 좀 재미가 없는 듯 했다. 하긴 화려한 태국 여행을 그리다가 인적 드문 시골길만 다니고 국립묘지를 방문하는 일이 관광을 즐기러 온 사람에게 재미있다면 무리일 것이다. 재미없다고 계속 투덜대던 청년 둘은 기어코 낚시대를 사고야 말았다. 강물 위를 달리는 선상 바베큐 만찬이 끝나자 배의 바깥쪽에 앉아 강에 낚시를 던졌으나 3시간이 다 되도록 두 낚시대 모두 입질 한 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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