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02.26 18:52수정 2001.02.26 19:46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번 볼 일이 있어 청량리엘 갔었다. 감기 기운이 있었지만 일을 빨리 끝내고 틈을 내어 내가 어릴 적부터 무려 40여 년이나 살아왔던 동대문집 동네를 찾아봤다. 동네 초입에서부터 전혀 어디가 어디인지 몰라보겠더군. 단지 국민학교 졸업 앨범을 만들었던 창신 사장과 음식점 진고개는 그 건물에 그대로 있고, 동네는 온통 몰라보게 변했는데 내가 살던 집터에는 큰 교회가 들어섰더구나.
그리고 국민학교 시절 놀이터로 사용하였던 임종성이었던가, 후에 강문학교(지금의 용문학교 전신) 교사로도 쓰였던 구한말 갑부의 고래등같은 기와집터는 어디 가고 없고 건물만 빽빽이 들어섰다. 여기에서 옛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라 그냥 두어 번 동네만 맴돌다가 왔단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던 여학생 집 근처도 먼발치로 눈길을 주고.
지금까지는 아빠의 어렸을 적 추억담이라 생각하고 장가들면 네 아이들에게도 할아버지의 어릴 적 이야기라 들려주어도 좋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난 동대문 역에서 수원행 전철을 탔단다. 아직 퇴근 시간 전이라 타고 있던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편히 수원까지 앉아서 갈 심사로 위치 좋은 빈자리에 골라 앉았다. 시청 앞인가 서울역인가를 지나면서는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더군.
그런데 서울역 다음 역인가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승객 중에 한 학생이 타더군. 학생은 어깨서부터 왼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오른팔이 아직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손잡이에 힘이 가해지면 깁스한 왼팔도 힘을 받을 게 아니냐. 네 나이보다 좀 어려 보이더구나. 나는 사실 자리 양보할 연륜은 아니잖니. 그러나 재빨리 중앙처리장치가 가동을 했지. '학생 이리 와 여기에 앉아'. 학생은 웃으면서 '괜찮아요' 그러기만 하더군.
이번엔 학생 뒤로 두어 살 먹음직한 아이를 걸리면서 한 아저씨가 오는 거야. 다시 중앙처리장치를 가동했지. '학생은 괜찮다니 아이를 여기 앉히세요' 아저씬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나는 자리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사람 많은데 아기를 앉혀야지요'라고 말했다.
아저씬 수원에 거지반 다 온 금정역에서 내리면서도 연방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진정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냐. 수원역에 내리면서도 피곤한 마음이 다 사라졌다.
다음 날 나는 감기 약을 타기 위해 아침 일찍 동수원 병원에 들러 처방전을 받았다. 그리곤 바로 옆 지정(?) 약국에 들러 처방전을 내밀었다. 그때 왠 학생이 아는 체 인사를 한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어제 전철에서 자리 양보를 마다한 학생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좁을 수가. 반가울 수가 그지없었다. 어때 신기한 일이잖니?
그래 바로 이거야. 어제 내가 자리를 권하지 않았으면 이 학생이 나를 기억하겠니. 약국에서 마주쳐도 전혀 누가 누구인지 모를 일. 게다가 지금 내가 그 학생 이야길하듯이 그 학생도 친구들, 아니면 부모님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애인한테 자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눈치챘겠지. 그래. 조그맣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사소한 것일지라도 베풀면 그만큼 세상살이가 즐거워진단다. 앞으론 우리 모두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서 세상을 살아 보자꾸나. 문득 일생에 단 한번 거지에게 파 한 뿌리만을 건넨 선행을 한 부자를 구원하려 하던 천사의 이야기가 생각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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