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저널리즘 논의' 철회, 왜인가?

중앙일보 조우석 기자의 '뉴 저널리즘 논의' 철회, 왜인가?

등록 2001.02.28 18:10수정 2001.02.2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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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기자는 중앙일보의 '출판팀장'이란 묵직한 직함을 가진 베테랑 기자다. 나름대로 '출판면'을 즐겨 보는 나는 조우석 기자의 기사를 좋아한다.

특히 지난 17일자 중앙일보의 Book 섹션 중 [책과 세상] 『`나는`이란 주관적 표현 칼럼에 쓰는 이유 』란 칼럼 기사는 자못 눈길을 끌었다. 딱딱 끊어지는 간결한 문체에 단언적이고 명확한 표현, 그것이 조기자의 장점이다. 게다가 그 솔직함이란...

이 글을 읽는 분 중 아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시사 저널의 편집장이라는 '김훈' 씨의 '자전거 여행'이란 책에 대해서. 한 때 이 책은 베스트셀러 순위 안에 들었다. 평소에 자전거를 무척 즐겨 타는 나는 이 책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다. 게다가 이 책을 쓴 사람이 저명한 저널리스트란 점, 그리고 자전거를 '풍륜(風輪)'이라고 불러가며 자전거를 찬미했다고 하니 나로선 더할 나위없이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조기자가 이 김씨를 매우 과감하게 깐 것이 눈길을 끌었다. 조기자 말인 즉, 김훈의 글이 미문(美文)이기는 하나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귀가 얄팍한 독자인 나는 김훈의 신작 '자전거 여행'의 구입 계획을 철회했다. 이것만 봐도 중앙지의 '출판 섹션'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일간지의 '출판 섹션'으로 책을 구입하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안다. 결국 이 기사들은 우리나라 베스트셀러 순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베스트 셀러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바로, 서두에 말한 조기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이란 주간적--' 의 기사 내용에 대한 것일 뿐이다.

조기자는 이 기사에서 『1960년대 이후 서구의 뉴저널리즘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이른바 객관 보도라는 것과 거리를 두는 특색을 보인다』고 전제한다.

즉,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불기 시작한 '뉴저널리즘' 논의는 철저히 객관 보도에 대한 불신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나아갈 길은 '주관적 보도'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언론활동이란 객관적 사실의 짜깁기가 아닌 `문화적 담론체` 라는 것, 따라서 객관 보도에 몸을 숨기지 말고 자기의 목소리를 충분하게 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러하니 의견성 기사에서 `나는` 이란 표현은 너무도 당연하다.(중략) `탈(脫)사실 시대의 뉴스 언어` 의 핵심인 `나는` 이라는 표현은 포스트 모던 시대의 키워드라고 나는 판단한다.』

이 칼럼에서 조기자는 자신의 소위 '나 저널리즘'의 실천을 하려는 듯, 불가피한 경우도 아님에도 '나는 판단한다'는 식으로 '나는'을 남발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의 문제 제기는 매우 시의 적절해 보인다. 다름 아니라 요즘 '일간지의 문화권력'에 대한 이슈가 불거지면서 우리나라 언론이 개혁의 물결을 거슬릴 수 없는 게 대세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언론권력의 핵심은 마치 '공론'이며 '절대 절명의 진리' 보도인 양 독자를 호도하는 언론의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이미 1920년대 월터 리프먼의 선구적인 지적대로 뉴스 언어란 사회적 책임을 전제로 특정 언론사가 `가공한 현실`, `인식한 현실` 이라는 판단 때문'이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간에 '데카르트'의 합리론의 붕괴에서 양자역학의 출현까지를 살펴가며 자신의 '나 저널리즘'의 타당성을 역설하려던 그의 기세는 바로 며칠만에 수그러들고 말았다.

그 증거가 되는 기사가 바로 지난 24일의 『아직은 때 이른 뉴저널리즘』이란 기사다. 17일 기사의 확고한 의지와 자신감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후다. 그리고 평소엔 그가 주연을 차지했던 중앙의 북섹션이 '배영대 기자'의 구름 이경숙을 창원 집까지 찾아가 언론사상 최초로 인터뷰한 기사인 『'이경숙 "인상비판식 도올 논쟁 유감"』로 도배되어 있었다.

한편, 조우석 기자는 지난 17일 '뉴저널리즘'논의를 부각시킨 기사와 함께 『김용옥식 `새로운 논어해석』에서 "도올 주해(註解)는 `동시대 논어` 로 설득력이 높으며, 도올이 발견한 공자상은 `과거를 당겨 앞날을 여는` 온고지신의 선언서로 읽힌다"며 도올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두 기자의 상반된 입장이 전혀 서로 무관한 우연인 기사일 뿐일까?

어쨌든 중앙의 '도올 쳐부수기 공작'에는 '배영대'라는 출판부 기자의 숨은 노력이 적잖이 숨어 있다는 것만 말하자.

이는 다시 말해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기자의 말대로 뉴저널리즘의 '기자 개인의 주관적 사회적 담론. 즉, 인식한 현실' 그대로 기사화 된다는 엄중한 사실인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그의 '바른 소리'를 철회해야만 되었을까? 거기서 조기자의 고민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내 추측은-거의 상상에 가깝지만- 이런 것이다.

'도올 옹호'와 '도올 반대'의 두 대표격인 기자가 '편집회의'에서 격론을 벌인다. 결국 후자가 이기게 되고, 진 쪽을 주장했던 조기자는 완전히 쭈그러져 버린 것이다. 결국 도올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뉴 저널리즘 논의'까지 함께 매장되야 하는 운명에 처해 버린 것이다. 이에 배기자의 활약에 대해선 joins.com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조기자는 이날 자신의 '굴욕적인 패배(카노사의 굴욕을 방불케 하는-나의 과장이겠으나)'와 함께, '노암 촘스키의'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이란 기사를 올렸다. 물론 자기가 쓰고 싶어서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쓴 것같은 문투로... 그리고 '나는'이란 혁신적 저널리즘의 '구호'를 포기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서평은 이미 몇 달 전에 (작년 11월 쯤) 조선일보 출판 섹션에 보도된 바 있다. 결국 '신작'도 아닌 셈이며, 괜히 공백만 채우려는 서평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날의 중앙일보의 제목은 '실패한 언론과 거짓말'로 바꿔 넣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www.joins.com

덧붙이는 글 www.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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