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만의 원주민들과의 만남

<인도여행기> 안다만 가는 길 - 2

등록 2001.04.20 19:03수정 2001.04.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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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글리뿌르 가는 길, 겉으로 보기엔 아름답지만 도로 포장은 엉망진창이었다. ⓒ 임현주
포트블레어 여행안내소에 들러 안다만 지도를 보니 안다만은 크게 NORTH, MIDDLE, SOUTH ANDAMAN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30일이란 제한된 시간동안 움직여야 한단 생각에 지도를 보고 일정을 짜려 했지만, 여행 안내소 직원들의 말도 서로 달라 어디를 가야할 지 막막한 상황.

결국 무작정 북쪽으로 가보자는 생각에 천을 끊어 해먹을 만들고 짧은 옷과 모기약을 사는 등 섬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 후, 3월 18일 한국인 친구 2명과 함께 안다만의 북쪽 도시 디글리뿌르(Diglipur)로 향했다.


포트블레어에서 디글리뿌르까진 버스로 12시간. 인도에서의 이동거리치고 짧은 거리였지만 도로 포장이 엉성하게 되었는지 12시간 내내 버스는 놀이공원의 열차를 탄 기분, 몸이 30cm씩 붕떴다 의자 모서리에 부딪치고, 짜이(인도의 차)를 마시다 얼굴에 뒤집어 써가며 가다보니 점심무렵 '바라탕'이란 작은 마을에 닿았다.

안다만 원주민 '자라와', 이 사진은 한 인도인이 찍은 것.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져 버스에서 내렸을 때 그 곳엔 말로만 듣던 안다만 원주민 '자라와'(Jarawa)들이 있었다. 처음 본 이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인, 그 옆으로 아이들과 남자가 옹기종기 앉아 있는 데 모두 검은 피부에 곱슬머리, 머리에 두른 머리띠 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들은 바라탕 근처 강가에서 사냥과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가끔 이 곳에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다.

자라와외에도 안다만에는 옹게(Onge), 센티닐리스(Sentinelese),
안다마니스(Andanmanese), 숌펜(Shompen), 니코바리스(Nicobarese) 등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들이 사는 지역은 모두 여행자 출입금지구역. 게다가 안다만 원주민들 대부분은 외부인에게 적대적이라 사진을 찍으려다간 그들의 화살에 맞을 수도 있다는 주의를 받을 정도.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안다만이 개발되며 이들의 터전은 점점 좁아지고 있고, 인도 정부의 개발 정책으로 많은 수의 원주민이 희생돼 지금은 극소수의 원주민이 남아 있는 상태. 외부인에 대한 적대감은 그들에겐 자기들이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한 여행자에게 앞으로 안다만이 더욱 개발되면 이들이 관광상품이나 하급 노동자로 전락할 거란 말을 들으니 그들을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스미스 아일랜드(Smith Island)


배를 타고 본 스미스 모습 ⓒ 임현주
3월 19일, 드디어 오랫동안 조용히 머물 섬을 발견했다. 디글리뿌르에서 동기(dongi : 작은 배를 인도인들은 동기라고 부른다)를 타고 30분 정도 들어가니 스미스란 작은 섬이 나타났다. 한국인 친구 2명과 함께 둘러본 섬은 원시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마냥 조용하기만 했던 섬은 안으로 들어가보니 벌써 많은 야영객들이 해먹을 걸고, 돌을 쌓아 화덕을 만들어 밥을 해 먹으며 군데군데 마을을 이루어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이 그림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람의 소리를 듣기 힘들고 가끔 해변을 거니는 사람이 눈에 띌 뿐이었다. 그 들 중에는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이들도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들어온 착각이 들 정도.


돌을 주어 만든 부엌 ⓒ 임현주
아름다운 스미스를 발견한 우리들은 그 길로 디글리뿌르로 돌아와 쌀, 감자, 밀가루, 계란, 과일 등을 준비해 다음날 아침 일찍 스미스로 들어갔다. 도착하자마자 각자 조용한 자리를 찾아 해먹을 걸고, 부엌을 만들고 나니 마치 새집에 이사 온 기분이 들었다. 집단장 후 가랑잎으로 차를 끓여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꿈만 같다. 흰 모래 사장, 옥색 바다, 푸른 하늘, 그리고 나까지도 전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여기저기 촛불이 켜지고 장작불이 피워졌다. 해먹에 누어 하늘을 보니 바로 머리 위에서 별들이 빛나고....

밤은 물건들의 세상이라더니 낮엔 들리지 않던 온갖 소리들이 들려왔다. 고동들이 나뭇잎 사이를 바스락 소리 내며 기어다니는 소리, 바람에 날리는 나무가지 소리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움직이면 이 아름다움이 흩어질까봐 가만히 누워 있다보니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씩 별 사이로 나타났다. 그들을 불러내 차례차례 얘기를 나누다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스르르 잠이 들었다.

스미스 저녁 풍경 ⓒ 임현주
그러나 이 아름다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바다에 들어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마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다보니 총을 맨 군인들과 경찰이 날 보며 나오라고 고함을 쳐댔다. 깜짝 놀라 나가보니 오늘부터 규칙이 바뀌어 스미스에선 야영을 할 수 없으니 빨리 짐을 싸 나가라는 황당한 말이 들려왔다.

너무도 갑작스런 상황에 어제 들어올 땐 일주일이든 열흘이든 마음대로 머물 수 있다고 들었다고 했더니 오늘은 사무실 문이 닫혔으니 항의를 하려면 내일 사무실로 오라며 큰 소리를 치고 사라져버렸다. 옆에서 묵고 있는 한국 친구에게 가보니 그들도 벌써 경찰들의 침입을 받고 황당해하고 있는 상황...

아무런 말도 없이 모두들 멍하니 앉아 있다보니 여기저기서 짐을 싸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해 우리들도 어쩔 수 없이 섬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열흘치의 식량을 들고 영문도 모른채 섬을 떠나오며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곳이 인도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조르나의 집

조르나의 가족 중 아이들의 모습 ⓒ 임현주
스미스에서 쫓겨난 후 찾은 곳이 깔리뿌르(Kalipur) 해변. 그 곳에는 이미 스미스에서 쫓겨나온 사람들과 스미스에 들어가려다 실패한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깔리뿌르 해변은 야영을 할 수 있다는 말과 달리 물도 없고, 머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괴상한 해변이었다. 열흘치의 식량을 들고 또 다시 새로운 섬을 찾아갈 기운도 나지 않고,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해변 입구에 작은 집 한채를 보는 순간 '저 집에서 머물자'란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그들 중엔 아무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들이 없어 허락을 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알고 있는 힌디를 섞어가며, 온 몸으로 얘기한 후 어렵게 허락을 받아내 마당에 짐을 내려놓고 인사를 하다 보니 이 집에는 모두 18명의 식구들이 살고 있었다. 두 형제가 결혼을 해 손자까지 본 후 3대가 살고 있는 대가족.

음악 공책을 펴 놓고 힌디 노래를 불러주는 조르나 ⓒ 임현주
식구가 많아 아무리 이름을 들어도 외울 수가 없는 상황에서 이 집의 제일 어른 격인 맏형의 막내딸 '조르나'와 가까워져 우린 이 집을 '조르나의 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저녁 6시부터 우리가 내놓은 재료로 저녁준비 하기 시작했다. 한편에선 짜파티(밀가루를 얇게 밀어 기름기 없이 불에 살짝 구워 만드는 인도 음식)가 만들어지고, 한 편에선 밥을 짓기 위해 쌀을 고르고... 그 중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감자와 고구마를 까는 일, 그 외엔 그들의 손놀림이 너무 빨라 우리가 거드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었다.

옆에서 앉아 가만히 음식 만드는 것을 지켜보니 아궁이와 같은 화덕, 밀가루 반죽을 미는 방망이 등 우리의 옛 부엌 풍경과 비슷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차이는 밥하는 방법. 쌀을 씻어 물을 맞춘 후 불을 지피는 것과 달리 이들은 쌀을 채에 받혀 티를 골라낸 후 그대로 끓는 물에 넣고 가끔씩 휘휘 저어가며 밥을 지었다. 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끓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밥모양이 갖춰졌다.

짜파티 만드는 '디디'
ⓒ 임현주
대식구의 식사여서인지 준비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려 8시가 넘어서야 저녁상이 차려졌다. 그러나 모두 모여 밥을 먹을 거란 예상과 달리 남자 어른, 우리, 여자와 어린 아이들 순서로 밥상이 차려졌다.

그들의 풍습에 따르자는 생각에 우리 차례가 되어 식당으로 들어가서보니 정말 진수성찬! 반찬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다 식당에서 먹는 맛하고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맛이 있었다.

'단야밧"(고맙습니다)과 '아차 헤'(좋습니다)을 외쳐가며 밥을 먹고 나와보니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는지 마당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행히 그들 중엔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들도 있어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지 조르나의 가족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멍석 위에 둘러 앉아 지도를 그려가며 한국이란 나라를 설명해주고, 힌디노래와 한국 노래를 번갈아 부르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 깊은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서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그 마음만으로도 나눌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많았다.

맛있는 저녁, 정겨운 인심, 스미스에서 쫓겨난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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