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과 공포 속에서 지낸 이틀밤

<인도여행기> 랄라지베이의 서바이벌 캠핑

등록 2001.04.22 14:53수정 2001.04.25 17:06
0
원고료로 응원
문제 1 - 비

▲ 코코넛 숲 ⓒ 임현주
스미스섬에서 쫓겨난 이후 한국 친구들과 헤어져 찾은 곳이 '랄라지베이'(lalagibay). 한 인도인의 말을 듣고 별다른 기대 없이 들어간 랄라지베이는 스미스만큼이나 깨끗하고 조용한 섬이었다. 섬 전체가 코코넛플랜테이션으로 조성돼 있어 코코넛 나무가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하는 6가구의 주민들 인심도 후한 편.


아침 일찍 도착해 이 곳에선 좀 오래 머물자는 생각으로 조개껍질로 집 주변을 장식하고, 부엌도 튼튼히 만들고, 땔나무까지 구해다 놓고 보니 제법 구색을 갖춘 집이 만들어졌다.

집 단장 후 해변을 한바퀴 돌아보니 랄라지베이는 스미스섬보다 야영객이 적은 데다, 모두들 숲 속에 꼭꼭 숨어 있어 정말 고요 그 자체였다. 아무도 없는 섬에 들어가 완벽하게 혼자가 되보고 싶다는 내 바람에 꼭 들어맞는 섬이었다.

▲ 정성들여 꾸민 랄라지베이의 우리 집 ⓒ 임현주
그러나 저녁이 되자 이 아름다움은 곧 공포로 변해버렸다. 저녁을 먹고 해먹에 누워 있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우기도 아닌데 조금 오다 그치겠지'라는 생각에 편안한 마음으로 비를 맞았다. 그러나 점차 빗줄기가 굵어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무서운 생각이 들어 해먹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겹게 들렸던 파도 소리도 섬뜩하게 들리고, 코코넛나무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도 스산하게만 느껴지고...

그 와중에도 짐이 걱정되었다. 배낭 안에 든 물건들이 하나하나 떠오르자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짐을 꾸려 마을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낮에는 가깝게 보였던 마을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 우리집에서 함께 살았던 도마뱀 ⓒ 임현주
손전등을 비춰봐도 보이는 거라곤 코코넛 나무뿐... 온 몸이 비와 땀으로 뒤범벅이 될 즈음, 갑자기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같은 곳만 맴돌다 지쳐 쓰러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러다간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겨우 정신을 차려 집으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길을 헤맨 시간은 겨우 15분 정도... 이 때 처음으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집으로 돌아온 후 얼마 안돼 비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 때부터 외로움이 밀려왔다. 무엇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가란 생각부터 시작해 온갖 잡념들이 떠오르며 외로움은 슬픔으로 변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웠다.

그 때부터 한국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의외로 큰 위안이 되었다. 노래 가사를 생각하다 보면 처량한 생각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다 보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곡들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노래는 '살다보면'.


▲ 랄라지베이의 저녁풍경 ⓒ 임현주

"살다보면 하루하루 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 나도 한번 혼자서 훌쩍 떠났으면 좋겠네. 수많은 근심 걱정 멀리 던져 버리고, 언제나 자유롭게 아름답게, 그렇게..."

정말 내 심정을 잘 담아내는 노래였다.


문제 2 - 식량

▲ 낮시간의 해변 풍경 ⓒ 임현주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막 아침 해가 바다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 날 아침 해는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오래된 친구처럼 반가웠다. 해를 보니 어제의 소동이 꿈처럼 느껴지고 다시 아름다운 랄라지베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침을 먹으려고 보니 음식 봉지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문득 스미스에서 계란을 바닥에 두고 잤다가 염소들이 몽땅 먹어치워 버린 것이 생각나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불행하게도 그 예감은 적중해 주변을 살펴보니 토마토, 망고 등의 과일과 계란 부스러기가 널부러져 있었다.

밥대신 먹으려고 사온 밀가루 봉지도 모두 젖어 뒹굴고 있고... 겨우 과자 봉지만 배낭에 들어 있어서 겨우 하루 정도 버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다음 날 아침 섬에서 배가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과자 두 봉지를 아껴 먹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 해질녘의 랄라지베이 ⓒ 임현주
그러나 그 다음 날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짐을 챙겨 해변에서 배를 기다렸지만 5시에 오기로 한 배는 6시가 넘도록 오지 않았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프랑스 친구들과 해변에 서서 배 소리가 날 때마다 수건을 흔들며 소릴 질러보았으나 우릴 위해 섬으로 들어오는 배는 없었다.

다행히 오후 3시경 섬으로 코코넛을 싣기 위해 들어온 배가 있어 그걸 얻어 타고 큰 섬으로 나오며 '이젠 살았구나'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뜨거운 해변에 서서 배를 기다리며 가장 절실했던 것은 '핸드폰'. 한 프랑스 친구가 '누구 핸드폰 가진 사람 없냐?'라고 농담을 던져 우리 모두 한 바탕 웃어넘겼지만, 그 말을 듣자 정말 문명세계가 그리워지고 핸드폰 생각이 간절해졌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부산 돌려차기 사건, 성범죄 밝힌 건 검찰 보완수사 아니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성범죄 밝힌 건 검찰 보완수사 아니었다
  2. 2 아이 유럽 보냈는데 압수수색 당한 여행사 "100만원 더 보내라" 아이 유럽 보냈는데 압수수색 당한 여행사 "100만원 더 보내라"
  3. 3 압색 당한 여행사 예약자 400명... '2년 전에 여행비 냈는데 어떡하나' 압색 당한 여행사 예약자 400명... '2년 전에 여행비 냈는데 어떡하나'
  4. 4 [이충재 칼럼] 정권 잃으면 검찰 반드시 살아난다 [이충재 칼럼] 정권 잃으면 검찰 반드시 살아난다
  5. 5 [단독] 극한 가뭄 때 기증 받은 '생명수', 뜯지도 않고 폐기한 강릉시 [단독] 극한 가뭄 때 기증 받은 '생명수', 뜯지도 않고 폐기한 강릉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