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플라이'와 해브록 병원

<인도여행기> 문명의 섬 '해브록'

등록 2001.04.24 16:51수정 2001.04.2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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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 속 탐험

해브록의 한 작은 마을
ⓒ 임현주
랄라지베이 소동 이후 사람이 그립고, 도시가 그리워 찾아간 곳이 해브록(Havelock). 해브록은 안다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섬으로 놀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하다고 알려진 곳이다.


해브록에는 큰 시장도 있고 식당도 있어 먹고 싶은 음식을 실컷 사먹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일은 함께 안다만에 들어온 한국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해브록에 도착하자마자 들른 식당 주인으로부터 "너랑 똑같이 생긴 여자들이 NO2해변에 묵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보니 정말 그 곳에는 한국 친구들 4명이 오손도손 지내고 있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친구들 얼굴을 보자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까지 핑 돌았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그 동안의 여행담을 주고 받는데, 오래만에 써보는 한국말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엘레판트 해변의 바다 속 풍경(인도인이 찍어준 것임) ⓒ 임현주

다음 날 이 친구들과 가까운 해변으로 스노클링을 하러 갔다. 수영도 못하고, 스노클링이 난생 처음인 나는 기대감보단 긴장감이 큰 상태. 그러나 친구들로부터 약간의 강습을 받고 바다 속에 들어가보니, 그 곳에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처음 물 속에 들어가 본 것은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은빛 물고기떼, 그 사이를 헤치며 좀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산호, 조개, 물고기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분홍, 흰빛 산호, 입을 벌리고 있는 보라색 조개, 온 몸은 까맣고 등에 반짝반짝 빛나는 파랑색 줄무늬가 있는 물고기, 무지개빛 물고기, 노랑색과 검은색의 물고기, 온 몸이 파란 물고기... 그저 푸르게만 보이던 바다 속엔 온갖 색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정신없이 물고기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어 깜짝 놀라 되돌아 나오기를 반복하며 하루 종일 바다 속을 돌아다보니 어쩜 어딘가에 용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진료


음료수와 생필품을 파는 가게 ⓒ 임현주
해브록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는 날부터 팔과 다리에 붉은 반점같은 것이 생기더니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가렵기 시작했다. 원인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사는, 생긴 것은 작은 파리같지만 모기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샌드플라이'때문이었다.

한 외국인 친구에게 들으니 샌드플라이는 물린 지 이삼일 후부터 그 고통이 시작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물린 자리에 붉은 반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다음으로는 가려움증, 마지막에는 흉터가 분화구처럼 변해 그 곳에서 진물같이 것이 흘러나오는 게 증상이라고.

가려움에 시달리면서도 '곧 나아지겠지'란 생각으로 버티던 나는 숙소주인으로부터 말라리아에 감염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겁이 나 결국 병원을 찾았다. 처음에는 약을 사러 약국을 찾았지만 인도도 의약분업이 되어 있어 약을 받으려면 병원을 찾는 것이 순서였다. 무료로 운영되는 병원이 많아 약국보다 병원이 더 저렴했다.

오후 3시부터 문을 여는 시장 모습 ⓒ 임현주
인도인이 알려준 무료병원에 도착하니 병원은 생각보다 규모가 큰 데다 입원실까지 있어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의사가 외출했다는 말에 병원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니, 입원실엔 화상 환자, 다리가 부러진 환자 등이 누워있고 그들을 문병 온 사람들의 걱정스런 표정들이 여느 병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병원 벽에 도배된 가족계획 포스터. 엄마와 아빠 아이 한 명 행복한 한때를 보여주는 사진과 함께 '하나가 제일 좋다'라는 커다란 문구가 새겨진 포스터는 어렸을 적 자라며 봐 왔던 우리나라 포스터와 비슷했다.

얼마 후면 인도 인구가 중국을 앞설 거라는 예상이 나올 정도로 인구증가율이 높은 인도에서 최근 가족계획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외에도 피임법에 관한 포스터와 에이즈 예방 포스터, 말라리아 예방 포스터 등 여러 종류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어 기다리는 것이 심심하지 않았다.

해브록의 병원 모습 ⓒ 임현주
30여 분쯤 지나자 의사가 들어왔는지 사람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줄을 서기 시작했다. 평상시엔 느린 인도인들도 버스나 기차 안에서 자리잡을 땐 엄청 빨라진다는 농담처럼 순식간에 줄이 만들어져 제일 먼저온 내가 거의 맨 마지막 순서가 되었다. 그러나 30여 명의 환자가 진료를 받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여 분.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가 진료를 받아보니 20여 분 안에 3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비결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샌드플라이에 물려 매우 가렵다고 하자 의사는 "이 쪽, 저 쪽" 딱 두 마디를 하더니 진료카드에 뭔가 열심히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진료의 끝이었다. 주사를 맞으면 이틀 동안 잠만 자야 한다는 얘길 들어 주사 말고 바르는 약을 원한다고 하자 의사는 볼펜으로 한 줄을 죽죽 그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No Problem!"

진료실을 나와 약창구로 가서 약을 받아보니 바르는 물약과 솜 한 뭉치... 연고타입의 약은 없냐고 물었다가 간호사에게 혼만 나고 병원을 나서는데 한국 여행자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 친구가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 병원을 찾았더니 진료를 마친 의사가 하는 말, "당신은 아마 사랑에 빠졌나보군요..."

그래도 나는 약까지 받았으니 그 친구보다 훨씬 성과가 있었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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