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04.26 08:39수정 2001.04.27 12:22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우리 집을 짓던 해에 감나무 한 그루를 앞뜰에 심으셨지요. 단감을 먹고 버린 씨에서 싹이 난 걸 한 해 겨울, 화분에 심어 방 안에 들여 놓았지요.
그런 것이 손가락 굵기로 자라면서 아버지는 뜰에 내다가 심고, 해마다 겨울이면 짚으로 싸매서 얼지 않도록 애지중지하셨습니다. 그런 감나무가 8 년 쯤 되었을 때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떠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반신불수인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워 밖으로 나가 감꽃이 처음 핀 걸 보여드렸더니 말없이 바라보셨습니다. 나는 그때 아버지 눈에 가득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감나무를 참 좋아합니다. 풀과 나무에 관심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감나무는 내가 태어나 가장 먼저 친한 식물입니다.
어릴 적 외가에서 산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외갓집 뒤안에는 어른 아름으로 두어 아름되는 늙은 감나무가 있습니다. 노인들은 다 돌아가시고 이젠 덩그러니 감나무만 남아 집을 지킵니다.
그 감나무 밑에서 감꽃을 주워 먹으며 놀던 기억, 찰떡에 감홍시를 비벼먹던 기억, 감나무 위에 매달았던 홍시망태, 그리고 가을이면 바알갛게 매달리던 감, 감, 감들...
아버지가 심어서일 뿐만 아니라 감나무가 여기 추운 지방에서 자란다는 사실이 고맙고 대견하고 신기해서 아버지가 떠나신 뒤에도 나는 감나무를 식구처럼 보살폈습니다.
어느 핸가는 감꽃이 펴도 감이 달리지 않아서 이른 봄에 하루는 술을 잔뜩 퍼마시고 들어와서 감나무를 안고 울면서 하소연했습니다.
"감나무야, 올해 또 감이 안달리면 우리 어머니가 널 베어내자고 하신다. 그러니 올해는 꼭 감을 매달거라. 응."
그러면서 감나무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지요.
그런데 그 눈물의 호소가 먹혔던 겁니다. 그해에 감을 한 접도 넘게 땄으니까요. 가을이 오고 감잎을 떨군 감나무를 상상해 보십시오. 저절로 흐뭇하고 배가 불러 오는 거예요. 주렁주렁 가지가 휘도록 매달린 감나무를 아침 저녁으로 바라보며 겨울 채비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감나무가 올 봄에 수상쩍더라구요. 지난 겨울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면서, 나는 추위보다 감나무 걱정을 먼저 했지요. 저렇게 큰 놈이 설마 얼어죽지는 않겠지 하고 스스로 걱정을 달래면서 봄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4월이 오고 뜰설거지를 하다가 큰 감나무 곁에 심은 올해 4년이 되는 작은 감나무를 살폈더니 아무래도 이상한 겁니다.
가지를 살짝 꺾어 보았더니 아뿔싸 감나무 가지가 나긋나긋한 느낌이 없어 툭하고 부러져 나가데요. 자세히 여기 저기를 살폈더니 감나무는 죽어 있었습니다. 이 작은 놈이 짚으로 싸매 주었는데도 지난 겨울 동장군한테 당한 겁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겁니까. 지난 주말에 보니 곁에 서 있는 큰 감나무 가지가 지난 주까지 영 싹을 틔울 낌새가 없더군요.
그래서 찬찬히 살펴보니 웬걸 감나무 중동 바로 위에서 길게 세로로 쩍 갈라 터져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 큰감나무가 살이 얼어 터져 나간 겁니다. 갈라터진 틈새가 훤히 보이는 겁니다. 세상에! 저리 될 때까지 감나무는 얼마나 아팠을까. 추위에 또 얼마나 떨었을까. 그 긴긴 겨울밤을 저리 되도록까지 얼마나 몸부림쳤을까.
나도 모르게 이미 유명을 달리한 감나무 둥치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버지 생각이 나고 미안함과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내 사랑 감나무는 장렬하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감나무는 중부지방에서는 잘 안자라지요. 더구나 북향인 의정부 수락산 밑에서는 더 더욱 안 자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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