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10년후 봄 밤... 91학번 '700명'의 대합창

등록 2001.04.26 11:54수정 2001.04.2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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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학번 71명의 대합창 ⓒ 오마이뉴스 최경준

1신대체-4월 27일 새벽 1시30분 "91명이 아닌 71명만이 무대에 올랐지만..."


강경대 10주기... 91학번 '700명'의 대합창 / 김환태 기자



4월 26일 밤 10시 30분 명지대 운동장. 91학번 91명이 무대에 올라 대합창을 할 차례. 그러나 정작 무대에 오른 91학번들은 목표에서 20명이 적은 71명이었다. 대학생에서 이제 나이 서른이 된 직장인들이 된 그들이기에 함께 모인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이다.

밤 8시부터 명지대 운동장에서 열린 '강경대 열사 10주기 추모문화제'에는 7백여 명의 대학생들과 이제 사회인이 된 91학번들이 참여했다. 고 강경대 학생은 명지대에 다니던 중 시위과정에서 경찰의 폭행으로 91년 4월 26일 숨졌다.

운동장 한편에 앉아 추모문화제를 지켜보던 고 강경대 학생의 아버지 강민조(60) 씨는 “여태껏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들을 역사 속에 묻을 수 있을 것 같다”며 “91학번 경대 친구들이 각계각층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오다 경대를 잊지 않고 오늘 무대에서 합창을 한다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최경준
9시 50분, 추모제 행사장을 빠져나온 91학번들이 마지막 합창연습을 위해 학생회관 로비에 모였다. 남자 45명, 여자 26명, 모두 71명이다. 아이를 안고 있는 91학번도 보인다.

노래패 출신으로 현재 극단 ‘상상’에서 뮤지컬 배우를 하고 있는 안현주(단국대. 91) 씨가 앞에 나서서 노래지도를 했다.


91학번 모임을 주도한 문치웅(명지대. 91) 씨는 “처음엔 잘 모이는 것 같더니 역시나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기대 이상으로 모이지 못했다”며 “조직해서 참가한 91학번보다는 소식 듣고 자발적으로 모인 91학번이 더 많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최경준
고 강경대 학생의 어머니인 이덕순(53) 씨가 지나가다 이들을 보고 인사를 한다. 학생들은 이덕순 씨에게 “어머니, 사랑합니다”라고 입을 모아 화답했다.


10시 30분, 마지막 연습이 끝나고 91학번 71명이 무대에 올랐다. '살아남은 자들'은 10년 전 그날 숨진 91학번 친구 강경대를 그리며 합창을 했다.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지 않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이들이 부른 4곡 가운데 한 곡의 제목은 그랬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수많은 91학번들, 91년 5월 세대들은 지금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살아남은 자'들은 이날 추모제의 마지막 순서인 '91학번 91명의 대합창'을 위해 올해 초부터 모이기 시작했고, 한 달 전부터 노래연습을 해왔다.

이들은 이날 목표인 91명을 다 채우진 못했지만 더 많은 91학번들이 무대 아래에 있음을 확인했다. 이들의 합창은 71명의 합창이 아니라 이날 운동장에 모인 700여 명 모두의 합창이었다.

추모문화제 총기획자인 김정환 씨는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강경대이고 우리 모두가 91학번"이라고 말했다. 그는 "91학번들이 사회인이 된 지금에도 91년에 그들이 대학을 다닐 때 외치던 '국가보안법 철폐', '민중생존권 쟁취'라는 구호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구호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91학번들이 이날 무대 위에서 부른 노래는 '나이 서른에 우린'을 포함, '동지를 위하여', '새세대 청춘송가', '투쟁의 한길로' 등 4곡이었다. 특히 마지막 곡인 '투쟁의 한길로'는 고 강경대 학생이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고 강경대 학생의 부모들도 91학번이 되어 노래를 함께 따라 불렀다.

이날의 추모행사는 밤 10시50분경에 끝났다. 91학번 40여 명은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명지대 옆 술집에 둘러앉아 그날을 되새겼다. 그들은 부산 수산대, 대구대, 전남대 등 그야말로 전국에서 모인 91학번들이었다. 동아대 출신 91학번 3명은 이날 합창을 위해 부산에서 올라오기도 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으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노래. 사회노래패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광석 씨의 ‘편지3’을 시작으로 한 명씩 돌아가며 10년 전 그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명지대 91학번 고정석(왼쪽) 씨와 손병욱(오른쪽) 씨. "지금은 비록 운동을 떠나 일반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도 알맞은 때와 기회가 올 것이다.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오마이뉴스 최경준
이날 91학번 모임에 처음 나왔다는 김재환(단국대91) 씨는 “회사 끝나자마자 달려왔다”며 “경대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고 남들보다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이제 그 속에서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학 교사를 하고 있는 신혜영 씨는 “그때 우리가 그렇게 큰 일을 했는지 10년이 지난 오늘 알았다”며 “경대를 생각하며 지난 10년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10년을 계획하자”고 말했다.

고 강경대 학생의 타살에 이어 '열사정국'으로 점철된 91년 5월. 그때를 기억하는 것은 비단 이날의 추모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91년 5월 투쟁 세대'는 추모제의 대합창만이 아닌 모임결성과 세미나주최 등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포스트 386세대'의 네트워크 - 91년 5월 투쟁 10주년 사업준비를 위한 청년모임

91년 5월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91년 5월 투쟁 10주년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한두 명씩 모여서 만든 '91년 5월 투쟁 10주년 사업 준비를 위한 청년모임(이하 청년모임)'. 어느새 60명을 넘어섰다. '청년모임'의 구성원은 참여연대, 민주노동당 등에 소속된 활동가를 비롯해 진보적 연구단체나 학술단체 연구원, 출판, IT산업 등에 종사하는 일반 회사원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학번도 다르고, 출신학교도 다르고, 활동하고 있는 공간도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91년 5월 당시 학생회 간부 등 핵심적인 활동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91년 5월 '죽음의 기억'을 안고 학생운동을 떠나왔던 이들은 그 동안 각 분야에 흩어져 사회운동을 해왔다.

지난해 8월부터 '청년모임'을 준비해온 김윤철(서강대 정외과 박사과정. 33) 대표는 "청년모임은 91년 5월 투쟁 과정에서 분신이라는 가장 극단적 자기희생의 저항형태로 산화해간 젊은 영혼들에 대한 추모와 이를 통해 '잊혀진 운동'으로서의 91년 5월 투쟁을 역사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또 "운동의 영역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이들을 사회적으로 조직화, 집단화할 것"이라면서 "91년 5월 '죽음'에 대한 슬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집단적인 자기고백을 통해 10년만에 비로소 자기 치유의 과정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386선배들에 대해 건강한 비판할 것"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청년모임'이지만 유독 이들이 제한하고 있는 부류가 있다. 제도정치권으로 진입한 386세대는 참여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 청년모임의 '불문율'. 386세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대표는 "청년모임은 정치권으로 진입했음에도 제 역할을 다 못하고 있는 386세대에 대한 건강한 비판을 하고 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청년모임'은 또 한국외대대학원 총학생회와 함께 91년 5월 투쟁 10주년을 맞아 그 역사적 의미와 남겨진 과제가 무엇인지 규명하기 위한 학술심포지엄도 개최한다.

오는 5월 12일 '1991년 5월 투쟁, 죽음과 폭력의 정치를 넘어'라는 주제로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열리는 학술심포지엄에서는 91년 5월 투쟁을 촉발시킨 직접적 원인으로서의 국가의 '폭력성'에 대한 '재조명'을 한다. 또 여타의 투쟁과 달리 91년 5월 투쟁이 '분신자살' 등 죽음의 양태로 나타나게 된 원인과 87년 6월 항쟁과 달리 '성공'하지 못한 원인도 학술적으로 규명한다.

91년 5월 투쟁 '살아남은 자'의 고백 1 : '청년모임' 김윤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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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 저서 <이재명과 기본소득>(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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