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원고의 '원판 불변의 법칙'

영어보다 어려운 우리말

등록 2001.04.26 12:23수정 2001.04.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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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출판 편집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박상익 선생님. 저는 모 출판사에 근무하는 편집자 Y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주간 동아'에 기고하신 번역 관련 글을 읽었습니다. 글을 너무 잘 써주셨습니다.


저는 출판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번역서를 별로 읽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근데 출판 일을 시작하고 보니 아, 번역서가 어려운 건 순전히 번역 문제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출판사도 내는 책 가운데 80% 정도가 번역서입니다. 교수들은 대학원생을 시켜서 싸구려 번역을 해오고 편집자는 미친 듯이 밤을 새워가며 그걸 거의 100% 다시 번역(윤문이 아니고!)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물론 의미가 쉽고 선명하게 다시 드러난 번역문을 보며 흐린 유리창을 깨끗이 닦은 것처럼 기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이게 과연 편집자의 몫인가라는 하곤 했습니다. 그 ‘교수’라는 사람들은 대학원생과 편집자의 피땀을 가로채서 번역료를 챙기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편집자와 출판사들의 ‘격렬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이 번역하신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편집자가 고생해서 깨끗하게 고쳤겠지 라는 그런 생각부터 했더랬습니다. 이 편지를 빌어, 그런 ‘선입견’을 가졌던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좋은 번역 계속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좋은 번역자를 만나는 것은 편집자에게 있어 최고의 행복이니까요.


이 메일을 보내준 분은 나와는 전혀 면식이 없는 분이다. 내가 일전에 '주간동아'에 기고했던 번역 관련 글(칼럼 제100호 참조)을 읽고 메일을 보낸 것이다. 메일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먼저, 언젠가 한 출판인으로부터 시중의 번역물 중 80%가 엉터리 번역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제대로 된 번역은 2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학창 시절 번역된 책을 읽다가 도저히 읽혀지지 않아 중도에 팽개쳐본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처음에는 기본 지식이 너무나 부족해서 이 책을 읽어나갈 수가 없나보다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책임의 대부분이 번역자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일이 필요치 않았다. 부디 이 글은 읽는 독자들은 책 읽다가 막히는 부분이 나오면 자신을 탓하지 말기 바란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있으니까.


물론 나도 번역물을 출간할 때는 다른 분의 신세를 진다. 역사물을 번역하다보면, 워낙 주제가 다양해서(정치, 경제, 문학, 음악, 미술, 건축 등), 우리말 어휘력과 표현력에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나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기 때문에 번역물을 낼 경우 계약시 옵션을 붙인다. A급 교열자를 붙여달라는 것이다.

내 선에서 일단 번역이 완료되면, 전문 교열자의 교열을 거친 다음, 내가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검토하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그런 다음 최종적으로 편집자가 재검토를 해서 인쇄에 넘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도 번역자와 편집자 사이에는 긴밀한 대화가 수없이 오간다. 이런 순서를 밟으면 번역 문장의 완성도가 그래도 한결 높아진다. 물론 출판사로서는 인건비 등 추가경비가 늘어난다. 하지만 쓸 건 쓰고 들일 것은 들여서 정성을 쏟으면, 번역 문제로 시비에 휘말리는 경우가 크게 줄어든다(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당연한 일이지만, 번역자와 편집자(또는 교열자)에게는 각기 다른 고유 업무가 있다. 번역자에게는 일차적으로 ‘정확한’ 번역을 할 의무가 따른다. 역사가 액튼 경이 말했듯이 “정확성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이다(물론 번역 이론가들은 각종 학설들을 인용하며 반박할 것이다. 세상에 ‘정확한’ 번역이 어디 있느냐고. 물론 그런 건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그런 고답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실무적 차원’에서의 정확성이다).

반면, 편집자나 교열자에게는 넘겨진 번역 원고를 ‘다듬는’ 임무만을 맡겨야 한다. 정확성의 의무까지 편집자에게 전가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운 일이다.

‘원판 불변의 법칙’이란 우스개 소리가 있다. 아무리 꾸미고 성형을 해봐도 박색(薄色)은 여전히 박색으로 남는다는 말이다. 이 법칙은 번역 원고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즉, 애당초 정확하게 번역되지 못한 글은, 교열자와 편집자가 아무리 뜯어고치고 윤문을 해도 독자들에게 제대로 의미 전달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국내 굴지의 H출판사에서 나온, 독일어 전기물 시리즈 번역이 떠오른다. 나는 평소 전기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배우기도 할 겸 이 시리즈에서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 10여 권을 한꺼번에 구입했다가, 몇 권을 골라 앞부분을 읽어본 후 실망한 나머지 모조리 반품해버리고 만 적이 있다. 편집자가 윤문에 꽤 공을 들였는지 문장은 아주 매끈매끈하게 다듬어졌는데 도무지 내용 파악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좀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이 시리즈 중 하나인 '비스마르크'를 들 수 있다. 비스마르크 평전이라면 19세기 독일사에 대한 전문적 소양을 쌓은 사람이 번역 작업을 맡아야 할 것이건만, 이 경우는 독문학 전공자가 어학 실력만 믿고 번역에 뛰어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번역자 자신도 의미 파악을 못한 상태에서 편집자에게 원고를 던져 놓았으니, 제 아무리 날고 기는 편집자가 윤문을 해봐도 독자로서는 내용 파악이 되질 않는 것이다. 한국어가 영어, 독일어보다 훨씬 난해해지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이다.

“정확성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라는 액튼의 말이 우리 출판계에서도 실현될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인문학의 위기를 개탄하고 사회 정의를 말하는 등, 겉으로는 온갖 고상을 다 떨면서, 뒤에서는 대학원생들의 약점을 이용해 노동력을 갈취하는 교수들의 구태의연한 기만적 작태도 하루 빨리 사라지기를 기대해본다. 지금은 지식인의 반역이나 일삼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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