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성(Sex)의 일치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대학생 43%가 사랑하거나 좋아하면 관계를 가져도 된다고 답변했다. 부산 동의대가 최근 신입생 2764명을 대상으로 혼전 성관계와 관련한 조사를 벌인 결과 '사랑하거나 좋아하면 할 수 있다'가 42.8%, '결혼이 전제라면 된다' 22.8%, '좋아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2.2%를 각각 차지했다.
사랑과 성, 결혼 등이 삼위일체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대학생은 이 가운데 불과 얼마되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실현하기가 힘들다는 측면에서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 )같은 이상적 형태로 보아진다.
플라토닉 러브와 에로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쓴 '향연 (饗宴)' 에서 비롯된 '플라토닉 러브'는 본래 '미에 대한 근원적 사랑'을 뜻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어의가 달라져 지금은 '육체를 무시한 순수지선의 정신적 사랑'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좌우간 이같은 플라토닉 러브가 존재할 수 있느냐, 또한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나아가 육체적 욕망과 정신이 함께 존재하는 몸을 지닌 인간이 성적 욕구를 품는 것은 본능인데 이를 플라토닉 사랑으로 절제하고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도 제기된다.
즉 플라톤닉 러브와 육체적 사랑은 어디다 기준을 두고 구분하는가. 우리는 육체적 관계를 가지느냐, 가지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이 두 사랑이 확연히 쉽게 구분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육체적 관계를 갖지 않더라도 육욕으로 실제의 성관계를 상상하고 이를 절실히 추구하는 '정신적 외도'는 순수한 플라토닉 러브일까.
반면 혹자는 성관계를 갖더라도 상대와의 정신적 사랑은 깊이를 더 해간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다시말해 너와의 끝없는 정신적 사랑과 너무도 애절한 사랑이 정신인 상태로만 머물 경우 서로의 마음으로는 이를 모두 담아낼 수 없겠기에 육체의 그릇으로 담아낸다고나 할까.
필자는 이렇게 규정하고 싶다. "에로스(플라톤의 이상적 에로스 개념은 완전히 다르지만 지금 흔히들 사용하고 있는 이성간의 육체적 사랑)는 플라토닉 러브의 구체적인 표현이요, 남녀는 에로스를 통해 플라토닉 러브의 소중함과 영원성을 비로소 감지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식 용어로 표현하면 플라토닉 러브는 '잠세태'(potentiality)이고 에로스는 현세태(reality)에 해당된다. 따라서 '플라토닉 러브'와 '에로스'는 용어와 의미의 구분이지 결국 인간의 사랑을 서로 다른 측면에서 구분한 동정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양파 안에 뭔가 있을 것이다'하고 기대를 걸고 하나씩 껍질을 벗겨 가면 나중에 아무것도 없듯이 에로스와 플라토닉 러브도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무(無)에서 하나로 만난다.
'플라토닉 섹스'
지난해 12월 일본의 인기 여성 탤런트 이지마 아이(29)가 사랑과 성을 다룬 자전적 고백서인 '플라토닉 섹스'(Platonic Sex)가 발매 2개월만에 무려 85만부가 팔려 몇년전부터 섹스리스(Sexless:남녀가 성이 없다는 뜻)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일본 남녀를 여전히 뜨겁게 달구고 있다. '플라토닉 섹스'는 저자가 가출한 중3때부터 자신의 인생역정을 그대로 나타낸 소설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쾌락 때문에 섹스한 것이 왜 나쁘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이 책은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는 '플라토닉 사랑 예찬론'으로 끝을 맺는다. 그녀는 "내가 진짜 원한 것은 순수한 사랑이었다.나는 지금도 마음이 통하는 상대를 찾아 헤매고 있다"고 적었다. 상극처럼 보이는 '플라토닉 러브'와 '에로스적 섹스'(육체적 사랑)를 그녀는 한데 묶어 '플라토닉 섹스'로 엮어냈다. 필자가 지금껏 전개해온 '플라토닉-에로스론'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필자는 '사랑이 없는 성(Sex)은 쾌락이다', '사랑이 없는 결혼은 사기다' 등의 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굳이 그런 차원에서 사랑과 성을 논하려면 이런 표현은 어떨까. '남자는 성(Sex)을 위해 여자에게 사랑을 주고 여자는 거꾸로 사랑을 위해 성(Sex)을 준다.' 이 말도 성과 사랑에 대한 남녀간 차이를 지적해 줄뿐 결국 동떨어질 수 없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플라토닉 러브의 종말인가
'서울대학교 50년사'란 책에는 1960년대 이후 대학생들의 사랑과 만남의 형태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60년대 중반까지 대학생들은 고전적이고 고상한 플라토닉 러브가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미팅 한번 못해보고 멀리서 연인을 바라보거나 혼자 가슴앓이를 하는 '순정파'였다.
그러던 것이 여학생수가 대폭 늘어난 80년대는 본격적 '과커플' 시대가 열렸고 미팅은 부담이 덜 가는 '집단적 형태'로 이뤄졌다. 그러나 90년대 개방의 물결을 타고 '신세대' 대학생들은 나만의 방식을 강조, 절차가 복잡한 집단 미팅보다는 취향에 맞는 상대를 즉시 만나 성공할 수 있는 '소개팅'을 즐기게 된다.
그리고 '인터넷 정보화시대'로 대변되는 요즘은 사이버상이나 나이트클럽 등에서 즉석 '번개팅'으로 이어져 남녀의 만남은 빠르고 노골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소위 남녀가 '골인'하는 시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너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과거 60~70년대 순정적 사랑은 퇴장당한지 오래고 다시 입장할 것 같지 않다.
드디어 플라토닉 러브의 종말을 고할 시기가 온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첫사랑을 쉽게 지울 수 없듯이 하늘의 별이 반짝이는 날까지 플라토닉 러브를 얘기할 것이고 이 사랑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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