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에는 계기가 있다(?)
"데모", 소요나 폭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경우 같으면 별 의미도 없는 계기가 되는 어느 한 사건이 "발화제"로 작용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폭동을 불공평에 대한 표현으로 개념화하는데 따른 많은 어려움을 풀어주는데 계기가 되는 그 사건이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첫째 계기가 되는 사건은 그 상징적 의미에서 커다란 중요성을 갖게 된다.
영국의 80년대 인종소요의 경우 무허가 주류를 판매하는 혐의가 있는 카페를 급습한다든가, 마약을 소지한 혐의가 있는 택시 운전자를 수색한다든가 하는 것이 폭동을 불러일으킨 발화점이었다고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이 사건들은 흑인들이 경찰로부터 당하는 압제와 학대를 대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일단 그런 사건이 구체화되면 고질적인 불공평으로부터 비롯되어 확산되어 있던 좌절감은 [특정의] 잘못된 사건 지점에서 분노로 집중되게 된다.
그러나 발화제 개념이 이렇게 그럴싸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리 강력한 설명력을 가진 것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즉 분석자 입장에서 폭동 발발 직전에 일어났던 무수한 사건들 중에서 과연 어느 사건이 발화제 구실을 했는가를 어떻게 판별해낼 수 있는가 ?
영국의 스카아만 보고서는 택시 운전자 수색이야말로 1981년 브릭스턴 폭동의 발화제였다는 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경찰 측에서 벌인 그 불길했던 [스왐프 81](Swamp 81) 작전 기간 중에 있었던 수백 건에 이르는 다른 수색 건들은 왜 폭동의 발화제 구실을 아니하였는지 도대체 설명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 경우 택시 운전자에 대하여 수색하였을 때 다른 수많은 수색들은 과연 왜 경찰의 압제와 학대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지 못했을까 ? 적어도 브리스톨과 브릭스톤 지역 폭동의 경우 운명적인 경찰의 조치와 폭동의 발발 시점 상의 근접성 때문에 그들 사건이 발화제 구실을 하였다는 신빙성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다른 지역 소요나 폭동들의 경우 이같이 중요한 연결고리는 결코 확실치 않다. 1985년 영국 핸즈워어드 지역의 폭동의 경우 교통경찰과 흑인 운전자간에 잠시 동안 벌어졌던 언쟁을 빼놓고는 폭동 발발 직전 몇 시간 동안 어떤 믿을 만한 발화제라고 할 만한 어떠한 사건들도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사건들의 경우 폭동을 점화시켰다고 믿을 만한 일이 벌어졌다 해도 그것은 시간적으로 근접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 신씨아 자레트 여사의 비극적 죽음 직후 24시간이 훨씬 지난 이후에야 비로소 브로우드워터 농장 폭동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혼란이나 무질서 사태가 일단 발생하면 믿을 만한 발화제 사건를 소급적으로 제멋대로 판정해낸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사소한 어느 사건일지라도 그와 같은 의도에 맞아떨어지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대다수의 질서정연한 정치적 시위는 수많은 사건들을 동반하면서 진행되는데, 이때 소요 상태가 발생한다면 그 많은 사건들 중에서 있을 수 있는 "발화제" 사건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사건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요상태는 흔치 않기 때문에 인식되지도 기록되지 조차도 않는 것이다.
현대서구 소요의 진행 형태
이제 폭도들의 특수하다고 여겨지는 행태들에 대해서 주목해 보도록 하자.
폭동의 전개는 결코 마구잡이 식으로 진행되지는 않는 것이며, 폭도들이 공격목표를 선택할 때 은연중에 자신들의 불만을 드러내는 마련이라는 견해가 있다.
즉 건물들이 선택적으로 방화약탈 당한다는 것은 폭도들과 특수한 관련성이 있다든지 일반적으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다고 보면서 이것을 그런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미국 게토지역 폭동 기간 중 발생한 약탈유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보면 단순하면서도 아주 그럴싸한 설명을 하고 있다. 즉 가장 중요한 약탈의 지표는 도난 당한 상품의 가격에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1981년 폭동의 경우 각기 다른 참여자들이 각기 다양한 동기들을 가지고 각기 다른 행동들을 보여주는 여러 단계들을 거쳤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폭동이 왜 일어나며 그리고 언제 어디서 발생하는지에 관한 전적으로 설명을 위한 이론으로서, 폭동은 마치 가난한 자들의 투표함 마냥 공통된 불만의 표현이라고 하는 식의 개념 규정은 너무도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며 검증이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적절치 않은 채로나마 그것은 하나의 평가기준을 적용한 것일 수 있다. 분석자의 입장은 설명하려는 것이기보다는 변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분석이란 결국 도덕적 명분 또는 정치적 명분에 봉사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가지중립성의 요구를 명확하게 회피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데모 유형 분류
학자, 언론인, 정치인, 관리 등의 데모나 폭동 "이론"을 뭉뚱그려 각기 급진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등의 3가지 이데올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폭동은 단지 기회주의적인 형사범죄 행위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한편 폭동이란 해결되지 못한 불만의 표현이라는 주장은 급진주의와 자유주의의 입장이다.
이와 같은 설명방식이 단지 "정치적으로 올바른" 폭동만을 변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선택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은 그런 이론들이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것이라는 증거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폭동은 공통된 불만의 표현이라고 하는 생각은 분명 이데올로기적 의도성을 가진 것이다. 즉 그것은 폭도들을 범죄자에서 피해자로 변모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상과 같은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폭동 설명방식은 폭도들의 중요한 한가지 특성 즉 폭도들은 매우 논쟁적이며 마치 겨루기 행사를 벌이는 것인 경우도 흔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데모와 경찰의 도덕적 지위
우선 논쟁적이라는 측면은 다양한 당사자들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것이다. 과연 폭도들은 불공평과 압제에 대하여 분노를 폭발시켜도 되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분별 없는 폭력배들이 과연 그런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
경찰은 과연 법과 질서를 영웅적으로 지켜내는 파수꾼인가, 아니면 무차별적인 잔혹성의 축제에 참여하고 있을 따름인가 ?
영국의 커어너 위원회(Kerner, 1968)나 스카아만 경(Scarman, 1981)이 수행한 청문조사 작업들은 곧이곧대로 감정을 배제한 채 냉정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던 분석작업만은 아니었다. 이들의 역할은 정치적이었다. 즉 그들이 주목하게 된 경쟁하는 설명방식들에 대해서 그들은 권위주의적으로 사법적 심사를 한 셈이었다.
그나마 이와 같은 권위주의적인 사법적 심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특정 폭동에 관한 경쟁하는 라이벌 설명방식들은 여전히 경쟁을 벌이며 이른바 "독립적인" 청문조사자의 도움을 받아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데모 청문조사 역시 정치적
하지만 그와 같은 청문조사들 역시도 전혀 독립적이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해당 위원회가 논쟁의 한 당사자에 의해서 설치되었으며 이 기구가 공식적인 증거들을 심리하는 경우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폭동이 일어나면 그 직후 즉각적으로 뉴스와 해설, 분석과 추측 등이 난무하게 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하지만 폭동 이후에 아무리 청문조사가 행해진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폭력에 대해서는 이를 정당화하지만 상대방의 폭력에 대해서는 그 정당성을 부인하려 한다는 점에서 [모든] 당사자들은 동등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 폭동 이후 라이벌 설명방식들이 겨루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바로 이러한 지점이야말로 폭동의 정치적 현실이 동등하게 정치적 결과들을 재구성하고 있는 지점이 된다.
예를 들어 영국의 1981년 폭동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에 따르면 사회적 박탈감과 차별 등은 경찰의 인종주의 및 가혹함 등과 함께 단호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소요 후 이루어진 영국의 경찰개혁
이와 같은 상황의 직접적인 결과로 인하여, 영국경찰의 현대화나 국민신뢰에 크게 기여한 경찰교육훈련, 지방별 민경간 협의절차 도입, 경찰서에 대한 "일반인 방문" 감시제도 등의 변화조치들이 시행되게 되었던 것이다.
예컨대 1968년 프랑스의 학생혁명과 같이 다른 지역 다른 나라의 소요들이 가져왔던 정치적 결과와 영국경찰의 이와 같은 개혁조치들을 굳이 비교한다면 물론 영국의 경우가 딴판이라 할 만큼 온건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 이너시티 지역 폭동들이라고 하는 촉매제가 없었더라면 영국경찰에서는 아마도 그러한 온건한 개혁조치들조차도 취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무력으로 폭동을 억누를 때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이 경우 경찰은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경찰이 취한 조치들이 전체적으로 과도한 것으로 인식된다면 경찰은 "싸움" 그 자체에서는 패배한 셈이 되고 말 것이다.
데모나 폭도들이 실제로 불공평에 대한 분노로 동기 유발된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만일 사건 발생 이후 이들이 바로 불공평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비쳐지게 된다면 바로 그 폭도들이야말로 피해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점은 공공질서 유지기능의 경찰활동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경찰활동 행위 그 자체에 대해서도 정신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재인식시켜 준다. 즉 폭동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경찰은 [적]이 아닌, 경찰이 보호해야 할 바로 그 [동료시민]들과 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또렷하게 드러내준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세계 각 국가들이 폭동에 대처하는 방식은 바로 그 나라의 경찰 나아가 정치 수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군부정치 체제를 청산한지 그리 오래 되진 않았지만 우리나라 경찰도 데모진압이란 결국 동등한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 같은 국민을 상대로 한 것이라는 점을 새삼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일제 식민지] 경찰 아닌 [우리나라] 경찰로서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이점을 진정 제대로 인식하면서 진압작전에 임하고 그리고 진압 후에는 국민의 소리를 겸허하게 듣는 자세를 가져야 향후 데모진압에 임하는 경찰의 작전 수준에도 개혁과 발전이 가능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에 언론과 국민들이 열의를 갖고 경찰에 대해 고언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경찰개혁의 양질의 밑거름이 된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번 부평 대우 사태 이후 경찰에게 필요한 것은 그간 많은 논란을 빚어왔던 전투경찰대 설치법 등 법제도 개정 문제와 데모진압 경찰교육훈련 내용의 개혁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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