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과 함께 했던 교정

등록 2001.04.27 16:12수정 2001.04.2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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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한 지 어느덧 10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10여 년 전 대학교 4학년 이맘 때였습니다. 전공이 가정관리학이었고 전공필수 과목 중 가정관리실습이라는 수업이 있었는데 수업내용 중에 10명씩 조를 짜서 1주일 동안 학교에서 생활하는 거였어요.

실습실에는 커다란 방과 부엌, 거실 등이 있었고 우리 학생들은 가까운 시장에서 장을 봐서 하루 세끼 밥도 직접 해먹고 한복을 입고 전통예절도 배우고 차 한 잔을 마시며 여러 교수님들과 사는 얘기도 나누고...

그러다 밤이 되면 일찍 잠들지 못하는 청춘들인 지라 마치 수학여행을 온 것처럼 밤새 무슨 수다 떨며 얘기 할 것이 그리도 많은지, 그러다 무료하기도 하고 장난기가 발동한 친구들이 야한 비디오를 빌린답시고 몰래 나가려다 조교언니한테 들켜 무산되기도 하고...

아무튼 색다른 수업에 재미를 만끽하기도 하고 하루 세 끼 밥해 먹으며 수업을 하려니 힘들기도 하고 집 생각도 나고 식구들도 보고 싶고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날인 토요일엔 어머님을 학교에 모시고 와서 그 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자그마한 선물과 함께 한복을 입고 큰절도 올리고 식사대접도 하고 학교구경도 시켜드리고 하는 날로 프로그램이 짜여 있었죠.

금요일 오후, 내일 어머님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한 가운데 대표로 학생 두 명과 어머니 두 분이 노래하기로 결정되었는데 아무도 자청하지 않고 꽁무니만 빼서 결국은 제비뽑기로 결정보기로 했죠

노래 듣는 것은 무진장 좋아하지만 노래 부르는 것 하고는 담을 쌓은 소위 타고난 음치집안 인지라 나와 엄마가 뽑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저는 피했는데 그만 저희 어머님은 낙찰되어 대표로 노래를 해야 됐습니다. 난감했지만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고 저는 어머님께 전화로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걱정을 하고 전화를 했는데 엄마는 흔쾌히 '노래하지 뭐'하시며 한 곡 부르시겠답니다. 엄마가 "난, 노래 못한다'하면 어쩌나 약간은 불안했는데 흔쾌히 승낙해 주시어 다행이었지만, 속으론 음치가족망신을 우짤고 싶었죠.

드디어, 토요일이 되고 그 떨리는 노래 순서가 되었을 때, 엄마가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생각보다는 듣기가 괜찮더군요. 노래를 부르시는 엄마 모습을 뵌 적이 없기에 많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애국가외에 유일하게 끝까지 아는 비장한 노래 한 곡이 있으신 줄을 몰랐습니다.

친구들은 교수님 앞에서, 여러 어머님들 앞에서 부끄러움에 당초 노래하기로 되어있는 두 학생만 노래를 했지만 , 어머님들은 그날 흥겨이 노래를 한 곡 씩 모두 부르셨습니다.


자취를 하는 학생들이 꽤 있었기에 멀리서 오신 어머님이 많이 계셨습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오신 어머님들은 처음 보시는 사이이신데도 마치 10 년지기 동무 마냥 이 얘기 저 얘기 기탄 없이 사는 얘기를 하십니다.

어머님들 말씀 속에서 다들 얼마나 힘들게 자식들 공부를 시키시는지 알 수 있었고 그런 힘든 환경 속에 공부를 시키셨기에 자그마한 선물과 함께 한복을 입고 "어머님,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며 큰절을 올릴 때는 어머님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매일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다가 그날은 어머님을 위해 저희 딸들이 정성껏 마련한 식사를 드시며 흐뭇해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교정을 돌아보시며 학교구경도 하시고 사진도 찍으시고 ,돌아가시는 어머님들의 입가엔 미소가 가시지 않습니다.

이 수업을 하기 전에 우리 과만 별스런 수업을 다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토요일 날 어머님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뵈면서 이 수업을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을 비로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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