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04.27 17:35수정 2001.04.3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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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동생의 입사 신원보증을 위해 인감 증명과 재산세 과세증명을 떼러 동사무소에 갔다.
동사무소에 가기 위해 책상 서랍을 열어보았더니 도장이 두 개 있는데, 어떤 게 인감도장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평소 나는 남편에게 '털팔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리를 잘 못하고, 뭘 기억을 잘 못하는 편이다. 덧붙이건대, 남편은 그걸 나의 성격이라고 인정하고 귀엽게 봐주는 편이다. 내가 남편이 골치 아파 하는 돈 관리를 전담하는 대신에.
그런데 동사무소에 가서 인감 증명을 신청하고 도장이 어느 것인지 모르겠다며 두 개를 내밀었더니, 대조해 보고는 둘 다 아니라는 것이었다. 순간 좀 창피했다. 그래서 가지고 간 도장 중 하나를 인감도장으로 갱신했다.
그런데 동사무소의 인감 담당 직원이 "여자들은 인감증명 쓸 데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인감 도장을 자주 바꾼다"고 옆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얼굴에 이상한(약간 비웃는) 미소를 띤 채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고는 나에게 인감 도장을 나중에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를 해 놓으라고 했다. 사실 맞는 말이다. 그렇게 하는 게 맞다. 인감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은 내가 잘못이다. 백번 인정한다.
그런데 왜 "여자들은 인감을 쓸 데가 없어서 그런지..."라는 말을 덧붙이는지 심히 불쾌했다. 그건 여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여자들은 인감을 별로 쓸 데가 없어서"라는 말에는 다음과 같은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여자들은 재산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회활동도 별로 하지 않고, 돈을 벌거나 빌릴 일도 별로 없다는 인식 말이다. 그런 일은 남편들이 주로 한다.
물론 아직까지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재산도 적고, 사회활동도 적고, 돈을 더 적게 버는 것도 아마 현재 우리나라의 통계상 사실일 것이다. 어쩌면 30대 후반 이후에만 그럴 수도 있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여자로 하여금 인감증명을 쓸 일이 별로 없게 만드는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재산세 과세증명을 떼면서 왜 여자들이 인감증명을 뗄 일이 별로 없는지에 대해 좀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나이가 좀 들어서 결혼한 우리 부부는 결혼하던 해에 빚을 좀 내어 일산에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한 채 샀다. 사실 남편은 아무래도 여자가 사회적으로 약자이니 법적으로 약간 유리하게 해놓는 게 좋고, 감방이나 노동운동을 하느라 별로 자기가 번 돈이 없어 내가 직장생활을 하며 번 돈이 더 큰 기여를 했으니, 내 이름으로 명의를 하라고 해서, 돈 좋아하는 얌체인 나는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보통 남편 이름으로들 하는데, 그렇다면 여자 이름으로 하는 것도 뿌듯하겠다 싶었다. 어차피 부부는 한몸 아닌가.
그런데 부동산에서 매매 계약서를 쓰는데, 40대 중반의 부동산 중개인이나 파는 사람 모두 너무 황당하다는 식이었다. 자기들 일도 아닌데 나를 되바라진 여자, 남편은 좀 모자라는 남자 취급을 하는 거였다. 그 분위기에 너무 당황했던 우리 부부는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기도 힘들어 그냥 공동명의로 계약서를 썼다.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별 상관 없다는 게 우리 둘의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도 그 두 사람은 뭔가 찝찝해 하는 분위기였다. 문제가 복잡할 거라나 어쩐다나 하며. 무슨 문제가 복잡한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사실 만일 남편 이름만으로 명의를 하려 했다면, 너무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어쨌든 여동생의 신원 보증을 위해 이번에는 서울에서 일산으로 팩스로 재산세 과세증명을 신청했다. 그런데 "아파트가 본인 이름으로 되어 있는가"라고 물었다. 아마 이것도 남자였다면, 본인 이름으로 되어 있는지를 묻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과 공동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어떻게 재산세가 나오느냐고 물었다. "남편 외 1인"이라고 했더니 남편 것을 떼지 그러느냐고 했다. 내 이름으로는 재산세 과세증명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분명히 공동명의로 되어 있고, 재산세도 "남편 이름 외 1인"이라고 찍혀서 나오는데,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리고 요즘 바빠서 정신 없는 남편을 다시 부르기도 뭣해서 무슨 소리냐, 그냥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4시간 후에 찾으러 갔더니, 내 이름으로는 재산세가 전혀 나오지 않은 걸로 되어 있었다. '0'이라고...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분명히 '남편 이름 외 1인'으로 재산세가 나오며, 둘이서 내지 않는가. 어쩔 수 없이 부랴부랴 이번에는 나를 태우고 온 남편을 불러 인감증명을 다시 떼고 재산세 과세 증명서를 다시 신청했다.
그런데 담당자는 '분명히 안 나온다고 했는데 아줌마가 하라고 해서 했는데 역시 안 나오지 않느냐'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집으로 오면서 두 번 일한 것도 속상하고, 여자는 이렇게 재산권 행사하기 힘들고 인감증명 뗄 일이 적기도 하겠구나 생각하니 너무 속이 상했다.
집에 와서 일산 세무서, 구청, 해당 동사무소로 전화를 했더니, 사실은 이러했다. 공동명의로 해놓더라도 대표적인 한 사람의 이름만을 등재하며, 나머지는 '외'로 표시하기 때문에 재산세 과세증명을 떼면 그 사람 이름으로는 재산세 낸 것이 증명이 안 된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나의 지인 한 사람은 건물과 땅, 주택 등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따로 재산세가 나오더라고 했더니, 건물이나 땅, 주택이 아닌 아파트의 경우는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럼, 누구 이름을 명시하느냐고 했더니, 제일 앞에 쓰인 사람의 이름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나머지는 '외 1인'이라는 식으로 표시한다고 했다. 그럼, 부부가 아닌 형제끼리 산 사람은 간단한 신원증명 같은 걸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등기부등본을 첨부하면 된다고 했다.
재산을 공동명의로 해놓고, 아무 생각 없이 남편이 먼저 이름을 쓴 것이었는데, 덕분에 나는 간단한 신원증명을 하려고 해도 등기부등본을 첨부해야 하니, 남편이 인감 떼고 등등의 일을 전담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내 이름을 먼저 썼다고 해도 이번에는 내가 이런 일을 전담해야 하니 이 또한 번거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왜 이름을 한 사람만 등재하느냐고 했더니, 그걸 어떻게 일일이 입력하느냐고 했다. 아파트를 부부가 공동명의로 한 사람은 아직 많지 않을 것이고, 형제나 친구가 함께 소유하는 경우는 더욱 적을 것인데, 그걸 입력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이냐고 했더니, 아파트 한 채를 30명이 공동 소유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파트 한 채를 30명이 소유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은가. 있기는 있는 것일까?
사실 간단한 과세증명은 각자의 이름으로 나오는 게 옳은 일이다. 국세청의 슈퍼컴퓨터는 뭐하라고 있는 것인가? 공동명의 부동산이 뭐 그리 많다고 그걸 입력하는 게 어려운가? 그리고 정말 중요한 재산권일 경우는 양측의 동의서를 첨부하게 하는 게 논리에 맞다.
자기들 편하자고, '외'로 지칭되는 사람들이 간단한 서류에 첨부할 재산세 과세증명을 위해 등기부등본을 떼어 첨부해야 하고, 또 부부가 아닌 형제, 친구들이 같이 샀다면, 전화해서 재산세 우리 집으로 얼마 나왔으니, 그중 몇 퍼센트인 얼마를 나에게 붙여라 전화하고는 또 통장으로 받아서 내는 식으로 일반 국민들이 불편한 일을 감수해서야 되겠는가?
입력하고 관리하고 발송하는 일이 불편하다면, 공동명의로 한 사람들의 경우, 1천원이나 2천원이나 관리비를 더 내도록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하면 된다. 공동명의로 한 사람들은 다 그만한 가치관이나 사정이 있을 것이므로 그 정도 돈을 더 내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직장 여성이든, 주부이든(분명 경제적 대가가 있는 일을 한다) 같이 일해 집을 가져도 남편 명의로 해놓는 경우가 많으니, 인감 뗄 일이 별로 없다. 게다가 공동명의로 해놓아도 남편 이름을 먼저 등재하면, 인감 뗄 일이 없다. 그렇다고 여자 이름을 먼저 실어도 이번에는 남편이 동사무소에서 황당한 일을 당한다.
국세청의 입력 편의를 위해, 관리의 편의를 위해, 그리고 아직도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40대 주사, 주사보 아저씨들 때문에, 이래저래 우리 아줌마들은 당분간 '여자들은 인감 뗄 일이 없어서..."라는 말을 들어야 될 것 같다.
멍청하고 덤벙대는 성격 때문에 '여자들'을 싸잡아 욕먹게 했으니, 실로 여자분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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