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박인순씨가 건국대 영자신문(1987년 6월 20일자)에 기고한 글 <정부의 헌법개정 태도변화에 대한 반대 - 국민들은 민주적 헌법 개정을 원한다> 내용 전문.
4월13일, 전 대통령은 기대되었던 대통령 선출에 대해 현재의 제도속에서 변경이 없음을 선언함으로써 서울에서 개최되는 88올림픽 이후까지 헌법개정에 대한 국내 토론을 종식할 것을 갑자기 발표했다.
이런 대통령 담화문은 모든 국민들은 크게 실망시켰고 충격을 주었는데 그것은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행로가 장벽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사실 전두환 그 자신이 만들었던 대통령 선거인단 제도는 대통령 본인이 실제적으로 그의 후계자를 고를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또 그런 위치에 있도록 맡겨졌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화적인 정원이양을 할 최초의 대통령으로 해외에서 비쳐진다.
1986년 8월 전 행정부는 의회제도의 법안을 제출했다. 이때부터 정권을 장악하려는 그들의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또한 비록 야당이 전두환의 책략을 따를 것 같지는 않지만 정부는 대통령 직접선거 제도에는 찬성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게리맨더링같은 의회지역 인정은 올해 말에 있을 대통령선거에서 여당인 민정당의 승리를 모장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국회 의원의 대다수가 동과 이익(명예)을 위해서 정치적 소신을 팔아먹는 사쿠라 입법자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거개혁을 위해 전의 법안을 조사했을 때 (각료제도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의 행정부가 총리에게 모든 헌법상의 권리를 이양시키려는 음모를 획책하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공정한 권력분산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만일 대통령 직접선거가 수용되면 현 정권은 권력을 유지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현 독재체제를 영구히 하기 위해 내각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비록 헌법을 개정할 의향이 있다 치더라도 전의 행정부는 국민을 위해 근본적인 법을 개혁할 의도는 없는 것 같다. 만일 그들이 헌법을 개정한다 해도 국민의 의사에 반해서 확정될 헌법개정안의 말의 참된 의미는 국민들의 희망을 왜곡시키기기 위한 기만책이 될 것이다. 전의 최상의 정책은 헌법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로부터의 국민의 선택권리를 막아버린 것이다.
장애물은 정부형태를 선택하는 국민들의 권리이다. 차기 대통령을 지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당에서 추천하는 전을 계승할 대통령 후보가 전두환 자신처럼 군인출신일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그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그들은 대통령 자리를 넘겨주는데 그들 자신이 마치 정의로운 것인 것 마냥 최대로 선전했다. 그들은 또한 세계평화의 상징인 1988 서울올림픽을 이용하고 있으며, 독재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만일 그 게임이 몇몇 불순한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어 진다면 한국 국민들에게 대단히 불행한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실시된다.
민주헌법 개정은 헌법에서 부분적인 변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970년 군부설립과 경제재건에 의해 가려져 왔던 국민의 기본법을 재개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기본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1981년 국민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줬던 군사정부지배와는 다른 민주정부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헌법개정을 통해 새 정부와 더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희망하는 이유이다.
1988 올림픽게임이 민주헌법개정과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연기하는 하등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실제 누구를 위해서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는가? 정부는 올림픽에 대한 장미빛 청사진의 잘못된 희망을 불어 줌으로써 오랫동안 국민을 우롱해왔다. 진정으로 평화적이고 성공적인 올림픽 게임을 위해서 정부는 주야당인 통일 민주당과 다른 그룹과의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집권당의 지도자들이 헌법개정에 대한 논의를 재개할 것인가 하는 것은 보아온 바와같이 의문시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개정된 민주헌법 아래에서 치르는 다음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민주헌법개정을 통해 국가의 진정한 민주화를 세우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이것이 바로 군사독재에 대항해서 보호해야 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이것 또한 진정한 국가의 자유와 통일의 방법이다. 세계의 역사속에서 사회정치적인 혁명에 근거한 최초의 이데올로기 보고서인 성서의 엑소더스에서 증언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명백한 환경에 대한 더 좋은 설명은 없다. 엑소더스 사건은 특히 신이 인간존재의 입법자이자 정치적인 계획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예수는 그 자신이 거의 완벽하게 잃어버리는 내적인 인간관계의 수준에서 자유에 대한 그의 메시지를 부각시켰던 것 같다. 같은 상황이 바울에게 나타난 것, 신약성서 속의 거의 모든 글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종교적 관점에서 날마다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전두환 정부에게 민주적 정치개혁을 요구하기 위해 캠퍼스에 모여든다. 시민들이 거리에 누웠고 많은 개신교 목사 뿐만 아니라 여러 대학의 수십명의 학생들이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머리를 깎았다. 이러한 행동은 자유 운동의 한 부분이다. 1980년도 광주사태때 정부는 맨앞에 1사단의 군대를 동원했고 짐승같은 군대에게 시민을 향해서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10일동안에 공식집계 174명이 살해되었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비공식 집계에 의하면 천여명이 살해되었다. 요즘 국민들은 치우친 정부의 한쪽만의 정치적 시간표에 반하여 항의 표시인 과격한 요인들에 의존해온 경향이 있는 현 집권정부에 의해 그들의 권리를 빼앗겼다.
엑소더스 측면에서 볼 때 헌법개정에 대한 국내 토론의 종식을 선언한 전 대통령은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와 흡사하다. 파라오가 이스라엘 국민에 대해 압박을 가하면 가할수록 저항은 더 커졌다. 처음에 파라오는 빈틈없이 그 국민들을 다뤘다. 그러나 후에 그는 열가지 불행에 시달림을 당한다. 마침내 그는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자유를 선언한다. 명백하게 그는 처음에는 그들이 자유를 갖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난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유를 줘야만 했다. 그것은 이스라엘 국민들이 반항적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파라오 같은 전대통령도 새 헌법을 개정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이제 우리의 의무는 명백하다. 온 국민과 함께 하는 정의로운 폭동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불타는 희망을 성취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적인 소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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