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자서전> 속의 위안부

(The Singapore Story) 위안부 존재 왜곡

등록 2001.04.27 20:12수정 2001.04.2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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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가 우리나라 위안부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시한 데 이어, 수정된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와 관련된 사실을 삭제하는 등 자신들의 역사적 범죄에 대한 반성은커녕 '감추기'에 급급하고 있어 주변국들의 분노가 증폭되고 있다.

그나마 우리 정부가 일본정부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강하게 재수정을 요구하며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에 대해 국제적 공감대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은 뒤늦은 감은 있으나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와 관련,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동남아국가들이 일본의 범죄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는 하나 피해당사자인 위안부를 제외한 일반인들의 경우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작은 섬나라를 경제부국으로 이끈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자서전 속에도 위안부 존재가 확인된다. 이 자서전에서 리콴유는 일본의 싱가포르 점령시절을 회고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나는 케언힐 로터리를 따라 울타리 밖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일본군을 봤다. 근처에 사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 안에는 일본인과 한국인 여자들이 사는데, 이 여자들은 군부대를 따라다니며 병사들에게 서비스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병사 200여 명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느라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다. 나는 그날 여자들은 보지 못했지만 '위안소'라고 한문으로 적힌 표지판을 봤다. 그런 위안소가 중국에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이젠 싱가포르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싱가포르에는 캐언힐말고도 위안소가 네 곳이 더 있었다. 탄종카통로(路) 부근에는 약 30동의 위안소가 세워졌다"고 적고 있어 위안부의 존재를 새삼 확인해주고 있다. 물론 이 글에서 풍기는 것은 리콴유 자신이 당시 장면에서 위안부들이 강제적 착취가 아닌 '자발적 서비스'를 베푸는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뒤이은 글에서도 계속된다.

"그때만 해도 나는 사병들의 욕구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접근방식이 영국군과는 다르게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다. 매춘부들이 워털루가(街)를 따라 늘어서서 캐닝 요새에 주둔하던 영국 군인들을 유혹하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일본군 사령부는 사병들의 성적 욕구를 잘 이해하여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준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점령시절 일본군에 의한 강간사건은 별로 없었다"고 적고 있다.

게다가 "싱가포르가 함락된 후 첫 2주일 동안 주민들은 승리에 도취한 일본군이 미쳐 날뛰지 않을까 크게 걱정했었다. 강간 사건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변두리 지역에서 아주 드물게 발생했고, 1937년 남경대학살과 같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 위안소들이 그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 위안부 자체가 집단강간의 희생자들이란 점을 전혀 몰랐다는 말이다.


물론 리콴유는 뒤 이어 "물론 당시 나는 일본군부가 어떻게 한국, 중국, 필리핀 여성들을 납치하고 꾀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전선을 따라 다니는 위안부로 만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일본군은 또한 네덜란드 여성들을 장교용 위안부로 쓰기도 했다"고 덧붙여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뒤늦게 인식했음을 밝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당시 위안부들이 '따라 다녔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일본의 범죄성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리콴유 자서전을 통해 비춰볼 때,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집단강간의 희생양이 된 위안부가 아닌 사람들은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기억은커녕 오히려 위안부가 일본군의 성적 착취로부터 일반 여성들을 보호하는 순기능을 한 것으로 알고 있을 가능성이 많고, 실제로 그런 인식들이 지금껏 바뀌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지금까지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돈벌이를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나라 위안부들이 개별적으로 일본정부에 대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행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군의 위안부문제는 인권을 유린하는 중대한 범죄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자칫 "매춘업소가 있기 때문에 일반여성들을 강간범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하는 한심한 주장처럼 오해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차원의 보다 강력한 대응과 사실전달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리콴유 자서전 속의 위안부 관련 글에서 느낀 점은, 위안부와 관련된 일본의 만행에 대해 국제사회에 보다 많이 그리고 자세하게 홍보할 필요가 있으며, 일본정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도 위안부들만의 외로운 싸움에 맡긴 채 뒷짐을 지고 있을 게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보상을 요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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