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1926년 월간지 '개벽(開闢)'(이 시를 게재한 '개벽'은 1926년 8월 일제로부터 강제 폐간당함) 6월호에 발표된 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새삼 이 시를 여기서 서시로 읊는 것은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우리의 역사적 진실마저 일본에게 빼앗긴 요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일까.
4월 28일은 일제저항민족주의 시인 상화(尙火, 想華:호가 두 가지 한자임) 이상화(李相和)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날이다. 3-1운동과 의열단 이종암(李鍾岩) 사건 등을 통해 일제의 칼날에 맞서 '칼보다 강한 저항시'로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픔과 해방을 부르짖은 투사요, 시인인 그는 빼앗긴 땅의 소생과 독립을 목놓아 불렀다. 상화는 불혹의 나이를 갓넘기고 갔지만 그가 토해낸 청춘의 끊는 피와 불멸의 정신은 아직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다시 한번 민족의 분노가 들끓고 있는 요즘 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돼야한다. 일제 독립을 위해 젊음을 불사르고 항거한 독립투사의 정신과 이같은 저항시의 이념을 되새겨 다시는 일본에게 권력을 빼앗기지 않았어야 했는데 일본의 '역사왜곡 권력'에 우리의 바른 역사가 빼앗겨 버리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화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기념관조차 건립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21세기 문화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일본문화가 인터넷 등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 역사뿐 아니라 문화까지 일본에게 속속 빼앗기고 있지만 문화 주체세력들은 '대세의 흐름'이라 치부하고 그 흐름에 놀아나고 있으니 정말이지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상화는 주권을 빼앗긴 민족은 말하고 들을 자격이 없다며 초창기 스스로 자신의 호를 '백아'(白啞:벙어리 아)라 불렀다. 이는 상화가 위암으로 1943년 타계,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월성 이씨 가족묘지에 안장된 후 그해 가을 시인 백기만, 서동진, 화가 박명조 등 10여 명이 세운 상화 묘비에 나타나 있다. 묘비에는 '시인백아월성이공위상화지묘'(詩人白亞月城李公諱相和之墓)라고 아로새겨져 있지만 상아 묘비의 의미조차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眞珠)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욱 ―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窒息)이 되어, 얄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느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피란 피 ― 가슴의 샘이, 말라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 내 침실이 부활(復活)의 동굴(洞窟)임을 네야 알련만…… .
'마돈나',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1923년 9월 <백조> 3호에 게재된 '나의 침실로'
대구 달성공원에 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詩碑), '상화시비'를 볼수 있다. 이 시비는 1948년 3월 시인 김소운이 제의, 시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고 이윤수 시인 등 대구 '죽순' 동인들이 발벗고 나서서 건립됐다.
이 시비에는 상화의 대표시 '나의 침실로'가 새겨져 있다. 상화는 이 시에서 '내 침실을 부활(復活)의 동굴'로 비유했다. 민족의 독립과 인간의 자유를 위해 '굵고 짧게' 살다간 상화는 이 침실에서 부활을 기다리면서 지금도 잠들어 있는 것이다.
상화 생가는 대구시 중구 서문로 2가 11번지인데 다들 현재 대구시 중구 서성로의 상화 일족집을 상화 생가로 잘못 알고 있다. 이는 대구지역 모일간지 기자와 대구시 중구청 지적계장이 상화의 재적부 등에 의거, 현장을 답사한 결과이다.
민족시인 상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민족의 울분이 불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상화 기념관을 건립할 때라고 본다. 3년 전부터 추진돼온 상화기념관 건립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어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구시의 이같은 문화사업 추진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올해는 문화관광부가 정한 '지역문화의 해'다. 우리나라 문화를 말하라면 자본주의 문화, 즉 '돈이 뿌려지는 곳에 문화가 싹튼다'라는 논리가 철저하게 먹혀 들어간다. 그렇다고 정부는 이같은 자본주의 문화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문화예산을 대폭 증액해야하는 데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해마다 문화 예술 관련 예산은 '쥐꼬리'에 불과하다.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천민자본주의에서 기생하는 '쓰레기 문화'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이상화(李相和) 시인 연보
호:상화(尙火, 想華), 무뉘, 무성(無星), 백아(白啞)
1901년 대구 출생
1915년 경성 중앙 학교(京城中央學校) 입학
1919년 3·1 운동 때 대구에서 거사하려다 실패
1922년 문학 동인지 <백조> 동인
1925년 KAPF에 참여
1927년 의열단 이종암(李鍾岩) 사건으로 구금
1935년 중국으로 건너감
1936년 귀국 후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1943년 위암으로 사망
덧붙이는 글 | ―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 속에만 있어라 : 내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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