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에 있었던 심연수 시인 심포지엄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데는 역량 미달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개최되었던 심포지엄으로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당시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던 필자는 연락을 받고도 참석하지 못했으나 추후 행사의 주요 내용을 파악하였다. 아래 기사는 이미 심연수 시인 문학 선집에 내용을 벗어나지 못하는 표면적인 내용들이긴 하나, 간략한 정리의 관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任軒永 중앙대 교수(문학평론가) ‘심연수의 생애와 문학’
기존의 한국문학사는 일본의 폭압이 점점 가혹해졌던 1939년 국민징용령 이후부터 1945년까지를 ‘암흑기’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탄압상과 정비례하여 비교적으로 민족의식을 보유할 수 있었던 간도지역엔 학생수가 급증했다.
시인 심연수가 졸업했던 동흥중학의 경우 1937년도 졸업생이 9명이었다가 심연수가 졸업하던 해인 1940년엔 무려 211명이 됐다. 이런 급증한 학생수는 문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간도지역은 특이한 이방감과 유난한 향수와 민족의식으로 한글문학이 왕성했던 것이다.
요컨대 심연수는 이 ‘암흑기’로 낙인 찍힌 시기에 간도지역에서 민족의식이 투철한 문학작품을 썼던 문인이다. 심연수는 재학 중 문예반장이었고 중학생 신분으로 ‘만선일보’에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다.
심연수는 중학 시절 습작기 작품부터 일본 유학이후의 모더니즘 세례를 받은 뒤 작품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특히 모더니즘계 시가 우수하다. 이 시기 모더니즘이란 현실도피가 아니라 엄청난 역사적 격변과 부담감이 주는 충격을 미학적인 위안으로 치유하려는 형식으로 이뤄진 것 같다. 남성적 모더니즘 성향에 의지의 시가 특색을 이룬다.
그의 대표작을 차근히 읽어보면 김기림의 모더니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비슷한 운명의 희생자인 윤동주가 모더니즘 중 정지용 계열이었다면 심연수는 김기림 계열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일본 유학중 쓴 몇 안되는 시는 마치 윤동주의 유학시절 시를 연상할 만큼 생생한 타국에서의 삶을 느껴지게 해준다. 반일적 색채가 강하다.
이제 심연수는 간신히 빛을 본 것에 불과하다. 중국에서의 자료는 거의 나온 것 같으나 아직 더 연구돼야 하고 일본 유학시절의 자료를 우선적으로 보충해야 될 것이다. 또 고향인 강릉과도 일정한 연계를 맺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심연수는 암흑기 문학사에 떠오른 또 하나의 별이다.
嚴昌燮 관동대 교수(시인) ‘심연수의 문학사적 의미’
일제 강점기 대표적 민족 저항시인으로 윤동주(1917∼1945)가 지칭되나 최근 중국 연변의 문화예술단체들에 의해 또 한명의 저항시인인 심연수(1918∼1945)의 시문학적인 조명이 다양하고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다.
만주에서 발행되던 ‘만선일보’에 다섯편의 시를 발표한 후 족적을 찾아볼 수 없던 심연수의 많은 시문들이 55년간 항아리 속에 보관돼 있다가 뒤늦게 세상에 공개됨으로써 그의 문학성과 문학사적 가치가 비로소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20세기 중국조선족 문학사료전집’ 제1집 ‘심련수문학편’에 실린 174편의 시를 우선 분석해보면 습작기는 자연(80여편) 시간-밤(10여편) 심상(20여편)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시적 이론이 보강된 유학시절이 시편들은 주로 삶의 문제(10여편) 사람에 관한 것(20여편) 일상적인 것(30여편)을 축으로 윤무(輪舞)하면서 시정신의 성숙과 예술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심연수 시인이 지닌 시적 특성으로 시적 긴장미를 통한 ‘유연성과 호방성, 그리고 거창성, 모호성’등이 지적된다. 그러나 그의 시적 품격은 새로운 시의 지평을 열어 보이며 미적 주권이 확인된 눈부신 서정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줌의 모래’등의 시편을 보면 맑고 투명한 시인의 정감과 눈동자를 만나게 된다. 대표시‘빨래’는 담백한 시정신을 보여준다.
민족시인 심연수 시의 경향과 특성은 ‘유연성과 병폐성, 전통의 인식과 고향 회귀성, 시의 호방성과 거창성, 철리성’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수행돼야할 문제를 제기하면 첫째 생가 복원및 문학비 건립이 추진돼야 한다.
둘째 한국과 중국간 국제 학술심포지엄을 열어 심층적인 검색이 이뤄져야하며 셋째 전국규모의 심연수문학연구소 개설을 비롯한 문학행사 개최이다. 끝으로 심연수문학상 등의 제정으로 강릉인의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지평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柳燃山 중국 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부장 ‘심연수 문학의 발굴과 조선족 문학’
연변인민출판사에서는 중국 조선족문학 100년사를 정리하는 대단위 작업을 진행중이며 그 첫 편으로 최근 빛을 본‘심연수문학편’을 출간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심연수의 가족사를 보면 독립 운동을 위해 어릴 때 고향 강릉을 떠나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것이다. 그러다 간도 용정으로 이주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심연수 시인은 한반도가 고국인 한국사람이자 중국 조선족문화 100년사에서의 뿌리를 확인케 하는 조선족 2세대이다. 또 그의 유복자 상룡 씨는 평양에 살고 있다. 마치 우리 민족의 역사적 운명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가족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때문에 심연수 유고의 발굴은 한국문학사의 한 획을 긋는 문학적인 평가와 함께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의 오늘과 내일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우선 문학사에 있어서는 1940대 간도에서는 전통문학 장르만 보급돼 있었고 모더니즘 조류는 거의 없이 1980년대에 들어서야 접촉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심연수 문학에서 이미 모더니즘 경향을 보이고 있어 1940년대 당시 간도에 모더니즘 이라는 새로운 유파가 시도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역사 연구 측면에서 볼 때 심연수 시인이 남긴 꼼꼼하게 쓴 일기나, 동흥중학 재학 때 한반도를 답사한 기행문은 당시 용정에서의 학생 생활이나 민족 교육 실태를 보여줄뿐 아니라 이주한 농민들의 삶의 실태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더 없이 소중한 연구 가치를 지닌다.
한편 심연수 시인 피살 당시 트렁크 안에 있었던 미발표작 유고들은 동생 호수 씨가 항아리에 담아 땅 속에 보관하던 것이 올해 55년만에 공개됐는데, 심연수 시인의 존재가 국내에 알려지기까지 자료 발굴 과정 전모는 이미 상세하게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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