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 진압의 군사화
영국이 19세기 초 직업경찰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 중의 하나는 바로 그 "적과 동료시민"을 구별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보자. 1819년 영국의 요우만 계급이 만체스터 부근의 세인트 피터스 광장에서 발생했던 불법집회에 대해서 비난했을 때 사상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당시 "피털루" 지역에서는 1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 이상이 부상당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상자 수치는 예를 들어 그보다 40여년 전인 1780년 고오든 지역 폭동에서 민간인 사상자 수가 400명을 초과하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도대체 살육전이라고까지 묘사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피털루 사건에서 영국의 일반 국민들을 놀라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그 동료시민들이 국가에 의해서 마치 적인 것처럼 무차별적으로 마구 난도질당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이다.
결국 국가가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효과적으로 반란을 진압할 수 있는 역량이 배가되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군대가 점차 국내의 공공질서 유지기능으로부터 손을 떼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은 그야말로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현대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있어서 군부의 개입은 전형적으로 비상사태의 경우에 국한되거나 엄격하게 지정되어 있는 상황에 대해서만 개입하도록 하는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면 영국 SAS(공군 특수기동대 Special Air Service)의 경우 테러리즘 사건에만 개입하도록 제한되어 있다.
적과 시민(이 경우 시민이 아무리 가증스런 범죄자라 할지라도)의 구별이야말로 현대적인 군대와 경찰 전술의 바탕에 놓여 있는 근원적인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군사전술이란 크게 보아 적을 완전 섬멸하기 위한 "화력전투"를 벌여야 한다. 군사무기와 군수품은 그러한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즉 전시 핵무기에서부터 자동소총에 이르기까지 군대에서의 지상명제는 적의 전사자수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찰은 대응 상대가 무장한 경우라 할지라도 화력전투를 만들어내고자 하지는 않는다. 경찰의 경우 화력은 즉각적인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특수한 대상에 대해서만 대응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 경찰관과 군인 모두 상대를 사살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행위와 군대의 행위는 그러한 차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경찰의 무력 사용을 정당화시켜주는 상황이란 매우 특수하다. 즉 경찰이 시민을 사살하는 경우는 그것이 [필수적]일 때에 국한되는 반면 군인이 적을 사살하는 경우는 그것이 [가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사살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상과 같은 경찰 무력사용에 적용되는 필연성의 원리는 사용되는 무력의 [양]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즉 경찰의 무력은 범죄의 심각성에 비례해서 사용되어야만 하며, 상대가 진압되면 즉각 무력 사용을 멈춰야 한다.
영국경찰에서 이 원리는 치명적인 무력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무력사용의 경우에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다.
북아일랜드에서 25년 이상에 걸쳐 군대가 민간 정권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 경우 군인들은 "경찰활동"과도 같은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 때문에 커다란 제약을 받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즉 북아일랜드에서 지원임무를 맡고 있는 군인들은 전시와는 달리 자동화 무기를 사용하되 단 한방 씩 만을 쏘도록 지시를 받고 있다.
식민지 경찰
경찰활동의 모든 시스템들이 경찰과 군대간의 이토록 명확한 차이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최근 영국에서도 이 경계선을 흐리게 만드는 여러 가지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는 것은 국가와 국민간의 사이를 근본적으로 다른 관계로 만들어 가는 징후가 된다고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 좋은 사례는 대영제국 전반을 통해서 식민지 경찰이 점령군으로서의 특성을 많이 가지고 공유하고 있었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식민지 경찰의 배치, 무기체계, 무력사용 등의 측면에 있어서도 군대와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우선 배치 측면은 어떤가 ?
식민지 경찰은 전형적으로 막사에 거주하면서 이 곳을 그들이 분대로서 책임지고 있는 영토를 마치 '점령군처럼 깃발을 휘날리면서' 순찰해 나가는 기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무기체계는 군대의 경우와 유사하며, 흔히 포병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식민지 경찰이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 본국 경찰에게 부과되어 있는 것과 같은 엄격한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고을 지도자에게 복종을 강요하기 위하여 마을 전체를 본보기로 파괴했던 것은 식민지 경찰이 그리 특별하지도 않게 사용했던 무력이었던 것이다.
물론 식민지 경찰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경찰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며 이들 식민지 경찰의 임무는 식민지 민중들을 억압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었다.
최근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드 정책이 사라지기 전까지만 해도 남아프리카 경찰은 백인이 아닌 국민들에 대해서 마치 식민지 민중에 대한 역할과도 같은 그런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것은 일종의 '내부식민지'와도 같다.
남아프리카 경찰의 군국주의는 경찰관 개개인이 자동소총을 휴대하였던 점, 무장 경찰장갑차에 다용도 기관총을 설치하고 다녔다는 점, 경찰관들이 박격포 같은 전시무기와도 친숙하다는 점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 경찰과 군대는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사실로부터 비로소 이 구분을 흐리게 만드는 그 어떤 것들도 일반 국민들에 대해서는 위협이 된다는 점을 보다 더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영국의 공공질서 유지기능의 경찰활동에 있어서 최근 수년 동안에 걸쳐 일어났다고 비판해마지 않는 것들이다.
비판자들은 영국의 공공질서 유지기능의 경찰활동이 눈에 띄게 [준군사화]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아마도 [군사화]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쟁점은 배치, 무기체계, 전술 등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문제되는 것은 시민의식에 관해서이다. 이 비판들은 다른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어쌤이라는 학자의 설명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는 영국경찰이 식민지 경찰 스타일의 공공질서 유지기능의 경찰활동 방식을 채택해나가는 것은 공공의 국민들을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반역하기 쉬운 피압박 민중으로 보는 견해를 반영한 것이라는 솔직한 우려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제퍼슨이라는 학자 역시 최근 영국의 공공질서 유지기능의 경찰활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변화들이 과연 영국 민주주의의 쇠퇴 증상을 보여주는 것인지 하는 문제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이슈라고 보고 있다.
영국경찰이 반민주 경찰 ?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강요에 의하지 않은 동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시민들의 상당한 비율이 강요에 의해서 마지못해 동의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 역시도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보아야 하는가 ?
이런 우려들이 비교적 솔직한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우려들은 몇가지 잘못된 가정들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표피적인 겉모습과 바탕에 있는 진짜 모습을 혼동한 데서 나온 것이다.
첫 번째 잘못된 가정은 민주주의란 것이 실질적으로 [모든] 시민들의 강요에 의하지 않은 동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본 점이다. 런던정치경제대학의 레이너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그와 같은 모든 시민의 동의가 있다고 하면 도대체가 경찰이 존재해야 할 필요성 그 자체가 거의 사라지고 말 것이다.
둘째 폭동을 진압하는 장비들을 획득하거나 폭동진압 훈련을 통해 그러한 장비들 사용법을 교육시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해서 적대적인 것이라고 보는 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실질적으로 다른 모든 자유민주주의 체제 역시도 민주주의 체제 진영으로부터 축출하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의 공화국안전기동대는 프랑스의 가장 무난한 얼굴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폭동진압특수경찰이 곧 프랑스를 비민주주의 국가로 낙인찍는 것은 아니다.
세째 폭동진압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는 것 자체를 국민에 대한 억압과 등치 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만일 경찰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사용하도록 강요받을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그러한 장비들을 가능한 한 가장 공격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잘못된 기술결정론에 바탕을 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조잡한 등식일 뿐만 아니라 진실은 오히려 그 반대방향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준군사적 장비들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현실에 있어서는 오히려 규제라는 의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아직도 식민지 경찰의 잔재 남아
우리나라 경찰은 어떤가 ?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정치가 군부정치에서 민주정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경찰도 민주화되었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더더욱 일제 식민지 경찰의 전통에서도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도 힘들다.
과거 영국이나 일본이 식민지를 지배할 때 활용했던 식민지 경찰의 전통이 해방된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공질서 유지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면 큰 잘못이다. 우리나라 경찰은 국민들을 식민 지배하는 정부나 정권의 도구여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경찰도 식민지경찰, 군부경찰, 반민주경찰의 전통에서 그리고 식민지 경찰의 잔재를 쓸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몫은 경찰 아닌 우리 국민들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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