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미디어 비평> 첫 방송 현장

방송에 의한 신문 비평, 그 포문이 열리다

등록 2001.04.28 21:45수정 2001.04.2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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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F스튜디오안은 긴장이 가득하다.
주조정실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않고 지시하는 최용익 부장. 이 프로의 사령탑이다. 100분 토론으로 '악명'을 날리던 그가 이젠 우리 나라 최초의 매체비평 프로의 장을 맡았다.

대본과 테입을 들고 잰 걸음으로 스튜디오와 주조정실 사이를 오가는 PD와 작가, 보도국의 차장급 기자들 사이에 진행자 손석희의 모습도 보인다. 직접 프롬프터 앞에 서서 문구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이미 몇번이나 다듬어졌던 문장들이 비로소 그의 것이 된다.

미디어 비평, 이번 방송사 봄개편 프로그램중 가장 주목하는 프로그램이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주조정실 시계가 토요일 정오를 10분 넘긴 시각,
큐사인과 함께 '미디어 비평' 타이틀이 뜬다.

"안녕하십니까, 손석희입니다. 문화방송은 오늘부터 매체 상호간의 자유롭고 건전한 비평을 위해 오늘부터 '미디어 비평'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작업이 궁극적으로는 우리 언론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미디어 비평'은 특정 정파의 편도 아니고 특정 신문의 편도 아닙니다. 이 프로그램은 문화방송의 무기도 아니며, 정권의 도구는 더 더욱 아닙니다. 방송도 비평의 대상이 될 것이고, 정부가 언론의 기능을 왜곡시키려 한다면 그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비평의 장은 문화방송에 마련되지만 우리는 모든 미디어들이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퇴행적으로 감정적인 비판이 아닌,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비평을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론의 장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미디어 비평'은 항상 시청자와 독자 여러분의 편에 서 있습니다."

긴 오프닝이 몇번의 사소한 실수끝에 끝났다. 다들 한숨을 돌리고 농담도 오간다. 손석희 씨 넥타이를 트집잡기도 하고 타이틀에 그려진 눈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내기도 한다. 지난 3월부터 준비한 프로지만 팀워크는 어느 오래된 프로 못지않은 듯하다. 머리를 긁적이며 담배를 피워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깨를 토닥이며 슬슬 풀어주는 기자도 있다.


첫 번째 코너, 뉴스 초점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논쟁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고 왜곡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독자들은 미로를 어렵게 찾아내야만 진실에 도달할 수가 있게 되지요. 그 첫 번째 예입니다...."

몇몇 신문들의 1면을 비교해 보여주는 화면이 나간다. 도대체 사건의 본질이 뭔지, 그 미로를 찾아 헤매는 독자들에게 엉켜있는 진실의 실타래를 푸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는 게 이들 비평팀의 날선 의지다. 준비기간동안 새벽에 들어가 아침에 나오는 '인간같지 않은 생활'을 하게 만든 이유이다.


음악과 함께 신문 만평 BEST 3이 소개된다. 한주간 촌철살인 같은 신문 만평이 이 코너의 주인이다. 미디어 비평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듯하다.

다음은 미디어 이슈. 전 시사자키 진행자라는 이름보다도 CBS 사태에 대한 항명죄로 '짤린' 진행자로 더 인기높은 정태인 씨가 만드는 순서다. 노련한 진행자답지않게 '책읽는 것 같은 멘트'가 지적을 받는다. 2번 카메라 다음에 1번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는데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또 지적받는다. 3일간 10여명의 사람들을 만나 10시간 이상 인터뷰를 했다는 '매체간 상호비평' 인터뷰가 간신히 끝났다.

"정태인 씨가 몇 년생이죠? 아이구... 저보다 어리시군요."
"참, 제 처가 손석희 씨 왕팬인데.. 전해달랍니다."

답답했던 스튜디오에 한바탕 웃음이 날리고 이어 보도국 윤병채 기자가 촬영해온 호주 ABC TV의 '미디어 와치'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88년부터 시작된 호주 미디어 비평 프로는 신문의 미디어 면을 신설케하는 등 호주 언론이 상호 견제 비판하면서 언론과 사회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일조했다 한다. 데이빗 솔터라는 미디어 와치 프로를 만들고 지금까지 이끌어온 뚝심좋게 생긴 PD 인터뷰가 화면에 나가자 보도제작국 김영일 국장이 한마디 던진다.

"데이빗 솔터, 저 양반은 호주의 최용익이군."

10여년간 그 아성을 잃지 않고 프로의 명성을 지켜온 진행자 리틀 모어가 지금까지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얘기하자 이번엔 최용익 부장이 한마디 던진다.

"저 친구, 호주의 손석희잖아."

5분짜리 코너를 만들기 위해 11시간 비행을 마다않던 보도국 윤병채 기자에게 직접 가본 호주 방송 환경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매주 월요일 황금시간대 방송하는 미디어 비평 프로를 보면서 이젠 호주의 시청자들은 신문과 방송 등에 서로 다른 뉴스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프로로 선택될 정도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더군요. 미디어 와치는 단순히 언론뿐만 아니라 언론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지키고 공고히 하려는 이들에게까지도 메스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입고있는 언론노동조합 조끼의 허름함과는 다르게 다부지고 진지한 얘기를 쏟아놓는다.

"호주 미디어 와치팀이 제게 당부한 말이 있습니다. 이 비평 프로가 끝까지 가지 않을 거라면 아예 시작하지 말아라. 미디어 비평프로의 최고 덕목은 '용감하라'이다. 너흰 동업자를 비판해야 하고 그래서 친구를 잃을 수도 있어야 하니까...라고 말입니다."

한국 방송사상 전대미문의 길을 걷기 시작한 미디어 비평은 미국의 PBS, 독일의 ZDF, 영국의 BBC 그리고 호주의 ABC와 캐나다 방송 등을 연구하고 우리 실정에 맞게 풀어 논 방송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녹화가 끝났다.
30분 방송에 2시간 녹화면 첫 방송치곤 괜찮은 성적이다. 마지막 클로징 아웃을 하고 일어난 최용익 부장은 얼굴이 많이 상해 있다. 진행자 손석희 씨는 무사히 끝난 방송에 스텝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하기 바쁘다.

긴장이 풀리면서 비로소 느낀 식욕탓인지 식당을 찾느라 갑자기 주조정실이 시장바닥 같다. 그 소란스러움 속에 '용감한' 전사들의 어깨가 부딪힌다. 오랫동안 닫혀있던 대문을 여는 삐걱임이 들려온다. 공기속을 가르는 전파라는 괴물이 이제야 비로소 제몫을 시작하는 소리다.

이렇게 4월 28일 토요일 오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한국의 미디어가 이제야 비로소 서로를 견제하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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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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