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외출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우편함에, 모르는 곳에서 내 앞으로 온 편지가 한 통 있었다. 보내는 사람 나사모(NaSaMo). 나사모? 아무리 생각을 굴려 봐도 나는 그런 모임에 든 적이 없었다. 남편이 주차장에서 차를 손보고 있는 사이 얼른 편지를 꺼내 보았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사람 김은정. 그리고는 사랑스런 은정! 이라고 시작되는 편지는 내 얘기였으며, 내가 작년에 내게 쓴 편지였다.
읽어 가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도 나는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았구나 싶어 콧등이 시큰해져왔다.
답장을 써보고 싶다.
"편지 잘 받았어. 고맙구나. 마음 써 줘서. 어떻게 지냈냐고? 잘 지내기도 했고 그렇지 못하기도 했다. 시집 문제는 이제는 한 풀 꺾어진 상태지. 영원한 해결이란 없는 것이라고 반쯤은 체념하고 살 작정을 했지. 그것이 바뀐 것이라면 바뀐 것이겠지.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면서 서로 많은 감정들을 털어 냈다고 믿는다.
내가 남편과 이혼하고 싶다고 그 때도 노래를 불렀었니?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첫 번 째로 우리 사정을 고려하지도 않고 차를 바꾸어서 지금까지 고생이다. 바꾼 차도 그 당시 1년이 조금 넘은 새 차였는데 바꾸고 말았지.
몇 달을 차를 볼 때마다 솟구치는 화를 참느라 마음이 많이 상했다. 그리고 나 몰래 바람 피우다 걸려서 진짜 법정에 설 뻔했었다. 지금? 지금은 아예 버린 자식이라고 치부하고 산다. 그것이 내가 살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아. 아직도 내 길은 찾지 못한 것도 같고, 아니 찾았으나 더디게 걸어가는 중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동생들은. 나 참 많이도 동생들에게 강요하고 살았나 봐. 마치 내가 엄마인 것처럼 간섭하고 지시하고 그랬었지. 그러면서 생색도 많이 내었겠지. 이제는 서로가 편한 길로 가려고 한다.
나는 도움을 요청해 올 때까지 지켜보기로만 했다. 그 애들도 다 자란 어른이잖니. 난 가끔 동생들도 어른이라는 것을 잊어 버려서 탈이야. 내 친구들은 아직도 여전히 씩씩한 미혼이다. 그 친구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는데, 친구들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내가 어려워도 내색하지 않고 미련할 만큼 끈기가 있었니? 나를 그렇게 평가해주고 있는지는 몰랐다. 어려운 것은 내색하며 살고 싶다. 말하지 않으면 이 바쁜 세상에 누가 내 아픔에 눈길이라도 줄까. 눈길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위로는 받고 싶은 때가 있더라. 그래. 말대로 어려움은 지나가는 폭풍이었더라.
폭풍이 지난 자리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도 다시 세우고 만들면 된다. 그러나 나이가 한 살 더 먹어서 그런 걸까. 다시 세우는 일이 점점 피곤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지.
이렇게 타협을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죽는 한이 있어도 부러지지는 않을 거라던 신념은 정말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려 한다. 아픔이 또 다른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 고맙다. 나도 정말 아픔 속에서 또 다른 희망을 발견했다. 아니 아픔으로 해서 나 자신을 똑 바로 보게 되는 기회를 가졌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겠다.
일년이라는 시간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다시 일년 후에 더 발전되어 있고 노력하는 삶을 살았기를 바래본다."
일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롭던 시간도 있었고, 황홀하게 좋았던 순간들도 있었으리라. 내가 나에게 보낸 편지를 보며 그 지나간 시간을 알차게 매워준 나 자신이 대견스러워진다.
갑작스레 받은 편지에 많은 생각들이 오갔던 하루였다. 그때보다 나아진 것은 별로 없어 보이는 생활이지만. 시련이 기회가 되는 삶. 그래 내 삶은 항상 그랬던 것 같다. 위기 앞에서 절절 매지 않고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 왔겠지만, 가끔은 위기 없는 평탄한 삶을 꿈꾸기도 한다.
기회를 준 인생에 감사를 해야하는지 판단은 쉽게 내려지지 않지만, 오늘도 나는 열심히 사는 길이 최선이라 믿으며 살아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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