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에게도 '친구'는 있다

등록 2001.04.29 15:28수정 2001.04.2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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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하고 2년을 시집살이를 했다. 시집살이라는 것은 내 개인적인 생활이 전혀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어나는 시간부터 잠자리에 들 시간까지 나는 가족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충실한 하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내 의지보다는 가족들의 요구나 욕구가 우선이 되다 보니, 중요한 일이 있어도 외출조차 마음대로 하고 살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런 힘든 시기에도 내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감행한 일이 있다. 바로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기이다.

결혼을 안 한 친구들은 꼭 밤 시간에 만난다. 내 편의를 봐서 낮에 만나자고 했지만, 결혼한 여자는 일요일도 내 시간이 아니다. 아니 일요일은 더 외출하기 어려운 날이다. 그래서 평일 밤 시간밖에는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배가 불렀을 때도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도 나는 꼭 참석을 하려고 했다.

물론 늦게 들어가는 날에는 시어머니나 시누이들의 싫은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렸다. 시누이가 남편감을 데려온다던 날에도 나는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나는 결혼을 했지 내 사생활과 친구 모두를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은 아주 고독한 경주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내가 가족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내게 의무만 강요하고, 내게 보살필 것을 요구한다. 내가 없었으면 어찌했을까 싶게 모든 일이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제사부터 온갖 집안 일, 그리고 '대'를 이으라는 요구까지.

인간으로서의 내 삶은 없어지고 한 집안의 부속물이 되어 해내야 하는 의무들은 산더미 같은, 그럼에도 내 편이고 내 아픔을 이해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달려야 하는 죽음으로 가는 경주 같다.


그런 내 삶의 숨통을 트여주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이루게 해 주는 것은 친구들이다. 친구의 소중함을 나는 결혼해 살면서 뼈속 깊이 느끼고 있다. 그 전에는 그저 친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소중한 친구이다.

작년에 나는 친구들과 처음으로 여행을 갔다. 친구 넷과 내 딸, 그리고 나. 여섯 명이 떠난 여행이었다.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했다. 가족들 뒤치다꺼리도 없이 자유롭고 여행다운 여행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고단한 치다꺼리의 연속이라면, 가족 없이 떠난 여행은 진정한 자유와 휴식을 주었다.


아이를 데리고 간 것은 아이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서였지, 아이를 안 데리고 가면 여행을 갈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여자들끼리도 여행을 갈 수 있음을 나는 직접 보여주었다. 딸에게도 나에게도 여행은 신선한 활력소가 되었다.

결혼해서 사는 내 인생을 불쌍하다고 연민을 품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게 된 것도 친구들과의 우정에 힘입어서였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며느리, 엄마, 아내로 끝내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이 내 인생에 어떤 답을 주거나,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그런 종속관계인 것도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면서, 친구라는 다른 이름으로 만나는 관계들인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영화에서처럼 목숨을 바치는 과장도 없고, 나를 희생하여 얻어 지는 관계도 아닌, 내가 비록 그들을 위해 물질적인 어떤 것은 마음먹은 대로 해 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의 정을 의심하고 지내지는 않는다. 아니 물질적인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습기만 하다.

물론 아줌마로 살기에 나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내가 가정에 안주하고자 친구 만나기에 소홀했더라면 지금처럼 친구들과 굳은 정을 나누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집식구에게서, 남편에게서 싫은 소리를 들었어도, 앞으로도 들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결코 친구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나에게 어떤 것을 주어서 그들을 지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친구 그 자체가 소중한 인생의 보물임을 알기에, 어떤 경우가 와도 그들과의 우정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내게 좋은 친구가 있음은 내가 그들에게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좋은 친구로 그들에게 자리매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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