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c~17c 종교개혁의 바람이 유럽사회를 거세게 몰아가고 있을 때 마녀사냥은 그 첫장을 열기 시작했다. 이때 약 50여만명이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다고 한다. 마녀로 몰린 사람들은 대부분이 하층민에 속하는 농민, 노동자, 그리고 노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죄목을 살펴보면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 악마를 숭배했다, 악마와 사랑에 빠졌다, 악마의 연회에 참가했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녔다 등등 허무맹랑한 것들이었다.
일단 마녀로 지목돼 마녀수사관에게 잡혀간 사람들은 차마 말로 설명하기 힘든 고문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자행됐던 고문은 '스트라페이도'라고 불리는 고문이었다.
지레의 원리처럼 사람의 손을 등뒤로 묶고 반대편에서 잡아당겼다 풀었다하는 방식으로 어깨에 강한 충격을 주면서 어떤 때는 잡고있던 줄을 놓아 바닥에 깔아놓은 자갈밭에 무방비상태로 떨어지게 하는 무자비한 고문이었다. 이밖에도 썸 스크류(sum screw)라고 불리우는 엄지손가락을 죄어가며 뼈를 으스러뜨리게 하는 고문, 바늘신발과 바늘혁대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들이 행해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녀사냥은 왜 시작되었는가?
당시 몰아닥친 종교개혁의 바람은 기득권 세력들, 즉 지배층인 교황과 귀족세력들에게 크나큰 위협이었다. 게다가 루터의 등장으로 농민들의 반란까지 일어나게 되자 기득권세력은 그들의 힘을 분산시킬 묘책을 찾게 된다.
그 묘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마녀사냥(witchcraft)이다. 이는, 일단 모든 불행한 일들을 모두 마녀의 소행으로 전가시키는 것부터 시작된다. 아기를 낙태하는 것도 마녀의 소행이요 흉년이 들어도 마녀의 소행이다. 길가다 넘어져도 마녀의 소행이고 외양간의 소가 죽어도 마녀의 소행이다.
이러한 선전전으로 인해 하층민들은 그것이 마치 정말로 마녀의 소행인듯 착각하게 되고 마녀로 몰려 한사람이 잡혀가게 되면 그로 인해 자신의 주변사람들에게 커다란 불신을 갖게 된다. 게다가 잡혀간 사람들이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자백을 하면서 주변사람들의 이름까지 대게 되면 이건 그야말로 굴비 엮듯이 줄줄이 잡혀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점차 불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그러한 마녀들을 잡아가주는 지배층들에게 다시 고마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한 하층민들의 분열은 그들의 뭉쳐진 힘으로 기존질서를 변화시키려하던 의식들을 묻어버리게 된다. 그야말로 마녀사냥은 기득권층이 그들의 체제유지를 위해 피지배층을 농락해가며 잔인하게 죽여가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자백을 하던 하층민들의 주변에는 점차 지배층에는 왜 마녀가 없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지배층 사람들, 주로 성직자들의 이름을 불게 되고 이로 인해 거짓죄까지 첨가돼 더욱 혹독한 고문을 받다 화염속에서 사려져간다. 그러나 지배층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이제 마녀사냥의 효용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결국 마녀사냥은 점차 줄어들게 되고 단지 역사속의 추악한 인간들의 단면을 보여주는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듯 했다.
그러나 피지배층을 다루는데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던 이러한 방법을 인간이 가만둘리 없었다. 그 재탕은 다시 미국의 역사속에 드러난다. 박해를 받던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에 정착하던 때 그들 또한 마녀사냥을 통해 인디언들의 분열을 조장하고 그들의 힘을 분산시키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결국 인디언들을 보호한다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지금도 보호구역안에 그들을 몰아넣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그리 오래전의 이야기도 아니다. 서슬퍼렇던 유신시절,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국민들의 시선을 돌려야할 일들이 벌어지면 반드시 등장하던 것이 바로 간첩단 사건이었다.
비민주적 정권타도를 부르짖던 학생들도, 그들의 사상적 스승이던 진보적 인사들도 모두가 다 북한의 지령을 받는 간첩들이요, 국가전복을 꿈꾸는 시대의 적으로 둔갑되었다. 이로써 박정희 정권 또한 체제유지에 많은 힘을 얻었고 그 정권이 지속되는데 꼭 필요한 요건이 되어버렸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보자.
요즘은 어떠한가. 우리는 과거 간첩단 사건과 같은 정권의 직접적인 사건을 접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와 유사한 마녀사냥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사건들을 보고 있다. 이제는 정권차원이 아닌 언론차원에서 벌어져 국민들에게 안보를 팔아 장사를 하고 있는 뼈아픈 일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빨갱이 사냥'.
어찌된 일인지 지금도 우리나라엔 빨갱이가 그득하다. 아니 적어도 그들이 말하고 있는 바는 그렇다. 그것도 고위 공직이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나 지식인들이 대부분이다.
저 김영삼 정권시절의 한완상 부총리도 그러했고, 이석현 의원도 그러했고, 김대중정권 초기시절의 최장집 교수도 그러했다. 그리고 최근들어 황태연 교수가 그러했고 송두율 교수가 그러하다. 모두가 다 사상적으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고 그들은 곧 북한과 직간접으로 연계된 사람이라고 보려 한다.
이 땅의 언론에겐 과거 중세시절 자행되던 마녀사냥의 과격함과 혹독함이 그대로 존재한다. 그들은 사상검증이란 언론의 자유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마치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마녀성을 검증하던 중세시절의 그들과 같다. 그들은 매일매일 수없이 검증을 해대고 국민들 또한 그렇게 믿도록 만든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들만큼 많이 팔리고 국민들에게 읽혀지고 보여지는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땅에 그렇게 많은 빨갱이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만 있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 나라는 어찌된 게 그들의 뜻대로 전복이 이루워지고 있지 않은가. 중세시절 마녀를 잡아줘서 고맙다고 여기던 하층민들처럼 우리도 빨갱이를 색출해줘서 고맙다고 언론에게 꾸벅 절하고 있어야 하는가?
이제는 깨달아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언론에게 사상적 정신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제는 제발 좀 벗어나서 누가 진정 올바른 행태를 보이고 있는지 되물어보자.
과연 빨갱이 사냥을 위한 사상검증이 옳은지 그렇다면 우리도 늘 두눈 벌겋게 뜨고 그들을 색출하기 위해 서로에 대한 불신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는지 그들에게 되물어보자.
그리고 그들은 과연 언론으로서 얼마나 공정하고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우리앞에 서있는지 그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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