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 없이 이어지는 여자의 삶

강요되어지는 삶에 익숙해지기 싫다

등록 2001.04.30 18:22수정 2001.04.3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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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삶은 어쩌면 이렇게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을까. 나와 내 엄마, 그리고 많은 여자들의 삶은 어쩌면 이렇게도 닮아 있을까. 마음이 답답한 날이다.

며칠을 차이로 두 개의 글을 읽었다. 한 사람은 사십이 넘은 여자이고 한 사람은 육십이 넘은 여자이다. 그런데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가로막고 있는 두 여자의 일생은 내게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사십이 넘은 여자. 홀로 된 어머니 아래에서 외롭고 고단하게 자랐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으나 먹고사는 일 때문에 친정어머니는 집에서 살림을 도와주셨다 한다.


그 어머니가 갑자기 앓아눕게 되었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중, 갑자기 시아버지가 위독하다는 기별이 온다. 병원에서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라는 절망적인 말만 되풀이하는데, 시가에서는 며느리가 오지 않는다고 성화를 부린다.

어머니를 떠나 시가로 간다.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장성한 많은 자식들은 성대한 장례를 치른다. 며느리는 홀로 쓸쓸하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눈물이 마를 새가 없다.

육십이 넘은 여자. 결혼해서 처음으로 친정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남편에게 다녀와야겠다고 여비를 줄 것을 청했다. 남편은 돈이 없다고 했다. 자는 남편의 주머니를 뒤집어 보니 돈이,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들어 있다. 부인은 차비 정도만 꺼내서 친정에 다녀왔다.

다녀온 날 남편이 여자를 불렀다. 그리고 식칼을 들이밀며 말했다.
"남편의 주머니를 뒤집는 나쁜 손모가지는 잘라 버려야 한다."
여자는 울면서 빌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마음에 한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이 글을 읽은 날, 남편에게 물었다.
"이 담에 당신이 죽었는데 아이가 오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왜 못 와? 당연히 와야지."
"아니 못 올 수도 있지. 그 날 우리 딸 시가에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해 봐. 당연히 못 올걸."
"아니. 그 때는 세상이 달라져 있을 거야."


남편은 우리 딸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 낙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될까?

부부의 관계는 많은 부분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깝게는 내 엄마와 내가 사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으니까. 그리고 주변을 봐도 우리 아버지 같은, 엄하기만 하고 모든 것은 아내에게 미뤄버리는 남편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전문주부라 해도 가사 노동에 남편들도 거들고 있고, 아예 전문주부로 나서는 남편들도 있다.

그러나 가족의 문제에 들어가면 그렇지가 않다.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가족이 우선이다. 처가는 두 번째이고 무슨 일이 있으면 당연하게 자신의 가족을 먼저 생각한다. 그 가족에서 아내의 부모와 형제자매들은 포함되지 않으며 때로는 아내도 자신의 가족에 포함시키지 않기도 한다.

내 딸이 불합리한 경우를 당했다면 울분을 느끼지만, 내 아내가 그런 경우에 있다면 '여자가 감내할 일'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남의 부모님 장례식에 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을 할 것인가.

남편의 부모가 어찌 내 부모가 될 수 있는가 말이다. 여자가 결혼을 해서 자신의 부모를 찾아보고 싶다는데 어떻게 돈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으며, 아내의 손목을 자르겠다고 식칼을 들이댈 수 있단 말인가.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날이 더해질수록 힘들다는 생각이 더해진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물어본다.

"무엇에 익숙해진다는 말인지요?"

희생과 굴종으로 살아야 하는 며느리라는 자리에 대한 익숙해짐? 말 없이 보살펴주고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아내자리에 대한 익숙해짐?
나는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기 싫다.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며 살련다.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며느리, 좋은 아내라고 칭찬을 들어서 무엇할까. 나는 내가 행복해지는 길을 가고 싶다. 세월만 보낸다고, 시간이 흘러간다고 저절로 변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세월이 흘러도 여자들은 비슷하거나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말이다.

지금의 내가, 우리 사회가 변해야 아이들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이대로 주저앉아, 익숙해져야 한다고 강요되는 일에 익숙해져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살아간다면, 미래에도 내 딸은 아마도 한 집안의 부속물이 되어 살게 될 것이다.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채, 고통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지만, 예외에 속할 수 있는 행운을 기대하기엔 그 행운은 너무도 멀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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