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잊어버릴 수는 없지만
아픔은 덮을 수 있어야 합니다"

베트남 종전 26돌, '치과의사의 베트남 방문기'

등록 2001.04.30 18:26수정 2001.05.01 20:05
0
원고료로 응원
일제에 의한 종군위안부 문제와 미군에 의해 노근리 학살 등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 월남전에서의 양민학살은 무엇인가? 일본은 역사왜곡을 일으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미국 또한 노근리 등의 양민학살 진상을 외면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러면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월남전에서의 양민학살에 대한 침묵은 무엇인가?

4월 30일은 베트남 종전 26년을 맞는 날이다. 이날,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국제민주연대베트남전진실위원회 등 52개 인권·시민단체는 공동성명을 통해 "총성이 멈춘 지 26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베트남 양국에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과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다"면서 "역사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려는 겸허한 자세로 과거청산운동에 나설 때만이 아시아의 인권과 평화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라며 베트남 양민학살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다.

이들은 또 '미안해요 베트남' 음반 제작 등의 사과운동은 한국인의 양심의 소리이며 과거청산을 향한 자기 고백이라고 전제하면서 △베트남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조사 △한국 참전군인들의 고엽제문제와 전쟁 후유증에 대한 적절한 조치 △한국과 베트남의 진정한 평화적 우호관계와 미래를 위한 책임 있는 과거청산을 주장했다.


건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베트남 진료활동과 양민학살 사죄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의 '2001 화해와 평화를 위한 베트남 진료단(단장 이한우)'은 지난 3월 17일부터 25일까지 베트남 꽝아이 썬틴현 지역에서 8명의 구개구순열(언청이) 수술 및 2779명의 일반치과진료 봉사활동을 펼치고 돌아왔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방문한 이들 진료단은 단순한 진료봉사활동이 아닌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을 대신 사죄하기 위해 베트남전쟁 당시 양민학살지역 방문 및 추모행사 등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들 치과의사들은 베트남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기 위해 동아리 모임을 구성하는 등 민간차원의 화해운동을 펼치고 있어 주위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진료단 일원으로 참가한 최철용 치과원장 ⓒ 조호진
진료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최철용(38·전남 광양읍 최치과) 원장은 지난 26일 전남 광양의 한 모임장소에서 광양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오마이뉴스 광양모임 관계자 등 2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방문활동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최원장은 베트남 방문에서 전쟁의 광기가 저지른 양민학살의 잔인한 범죄를 보았다면서 자신이 목격한 광주민중학살의 광기 또한 베트남과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최원장은 특히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에 분개하면서도 한국의 베트남 참전역사에 대한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씁쓸해 했다.


베트남 방문을 통해 "진정한 평화와 자유, 사랑의 참 의미를 깨달았다"면서 "사랑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고마워요! 베트남"을 외친 최원장은 한겨레21의 베트남 통신원 구수정 씨가 베트남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협박에 시달려 건강악화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안타까운 사정도 전했다.

전쟁의 광기를 화해와 평화로 돌리기 위한 지식인의 양심고백을 나누기 위해 최원장의 베트남 방문기를 요약해 싣는다.



음산한 흑백TV 속의 베트남 패망

'화해와 평화를 위한 베트남 진료단' 1기의 진지한 권유를 받고 베트남 진료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을 가졌다. 그리고 틀에 박힌 병원 생활과 개원 10년을 맞이하는 삶의 자세와 태도를 가다듬고 싶은 개인적 욕심도 있었다.

베트남! 초등학교 시절, 음산한 분위기의 배경음악과 함께 시위하는 시민들과 분신하는 승려의 모습을 전개하면서 긴장과 불안감을 조성시키던 TV. '유신헌법 아래 똘똘 뭉쳐야만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을 수 있다'는 TV선전이 아직도 생생하다.

1.5톤 트럭 한 대 가득한 공용장비와 55명의 짐을 싣고 만리길(4073km)의 호치민시 탑선넛 공항에 도착해 베트남 통일·건국의 아버지 '호치민' 동상을 관광했다. 우리나라의 60년대를 연상시키는 낯설지만 정겨운 풍경들과, 사회주의식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선전간판들...


밀라이 학살과 오월 광주

▲ '밀라이 할머니' 동상 ⓒ 조호진
베트남 정부가 통일 이듬해인 1976년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세운 밀라이 학살기념관을 방문했다. 1968년 당시 미군에 의해 한 마을의 베트남 양민 504명(노인 60명, 어린이 173명 포함)이 불과 4시간만에 집단 학살당한 밀라이, 박물관 내부에는 각각의 학살장면들이 활동사진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밀라이 학살은 이유 없는 양민 학살으로 전쟁의 광기에 의한 학살이었다. 정말 믿기지 않는 학살 장면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21년전 오월 광주를 내 눈으로 분명하게 보았다. 그날은 봄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였다. 부모님 심부름으로 광주일고 옆 금남로를 통과하게 된 내 눈에 비친 그 광경은 지금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공수부대 복장을 한 그들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곤봉으로 내리쳤으며, 머리에 피가 터져 쓰러진 사람을 군화발로 짓밟고, 질질 끌고 가 트럭위로 쓰레기 싣듯 던져 올렸고 웃옷을 벌거벗기운 채 머리고 몸뚱이고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팬 다음 어디론가 싣고 떠났다.


디엔 니엔의 '증오비'와 팜터메오 할머니

꽝아이성 디에니엔 마을에는 '증오비'가 있다. 이 비석에는 "1966년 10월 9일 남쥬띤(남조선)의 박정희 군대가 이곳에서 112명의 베트남 양민을 학살하였다"라는 문구와 함께 112명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었다. 폭우가 몰아치던 그날, 당시에 사당이었던 이곳에 사람들을 모이게 한 후 집단 학살하고 수류탄을 투척하여 시신 수습조차 힘들게 학살한 만행 현장이었다.

"세상에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고, 자유와 평화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자"는 각오를 다지며 디엔니엔 학살의 유일한 생존자인 팜티메오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가슴에 난 총탄자국을 보여주며 시신들 속에서 살아난 이야기를 힘겹게 토해냈다.

▲ 참전용사였던 김영만 선생이 무릎끓어 사죄하고 있다. ⓒ 조호진
함께 답사를 간 베트남 참전군인인 김영만 선생께서는 "우리는 그때 전쟁의 광기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고백한 후,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께 큰절을 올렸다. 할머니는 무척 당황해 하시면서 "너희들! 너무 불쌍해"라면서 "죄다! 죄다! 엄청난 죄다!"라는 말을 수 없이 반복하며 삼십 년 동안 가슴에 묻고 지내던 회한을 쏟아냈다.

명분도 없고, 도덕성도 없는 전쟁에 한국군을 용병으로 끌어들인 미국과 4.19혁명을 총칼로 짓밟고 등장한 박정희가 경제발전과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독재를 옹호해줄 미국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를 맹목적인 살인자로 만들었다는 데 대해 화가 났다.

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는지, 왜 베트남 사람들을 죽여야하는지 아무 것도 모르던 그 젊은이들의 내던져진 삶은 어떻게 보상되어야 하는가? 그런 박정희를 위한 기념관을 짓는다는 현실이 기가 막히고 서글퍼졌다.


"붙잡힌 베트콩은 절대로 살려달라고 빌거나 비굴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더욱 화가 나서 더 잔인하게 고문도 하고 위협도 했지만 더욱 당당해지더라..."

할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를 계속 따라다니던 베트남 공안 관리자가 학살에 책임이 없는 전후세대가 찾아와 헌화, 참배하며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에 감화를 받았다며 베트남 속담에 "남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좋은 친구다"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진료 이틀째 저녁에는 베트남 최고 문인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탄타오 시인을 모시고 베트남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인은 국경을 넘어 인간사랑의 마음을 실천하는 진료단의 헌신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베트남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는 말과 함께 양심적인 양국의 지식인들의 만남이 기쁘다고 했다.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사로 활동했다는 시인은 한국의 전후 세대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하는 데 감동을 받았다며 "과거를 잊어버릴 수는 없지만 아픔을 덮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분향을 위해 줄을 선 진료단 ⓒ 조호진
학살지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봉고차 안에서 김영만 선생은 "붙잡힌 베트콩은 절대로 살려달라고 빌거나 비굴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더욱 화가 나서 더 잔인하게 고문도 하고 위협도 했지만 더욱 당당해지더라..."는 말과 함께 "이제와 생각하니 그것이 바로 조국통일에 대한 열망과 동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동포애와 자궁심의 발로였다는 사실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청룡 부대원들에 의해 135명의 양민이 학살당하고 시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다시 불도저로 밀어버렸다는 하미마을, 짓이겨진 살과 뼈 조각을 모아 위령비를 세웠다는 하미마을에서 당시 생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삼십 년이 지난 일인데도 눈물을 글썽이며 증언하는 모습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교과서에 '베트남 참전'은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마지막 저녁식사가 사이공 유람선상에 열렸다. 8박9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몇 십 년 친구처럼 헤어짐이 싫어 맥주잔을 채우고 글을 나누었다. 특히 함께 지내는 동안 도와준 베트남 학생들의 높은 민족적 자긍심과 착하고 예절바른 태도가 감동적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항공기 내에서 오랜만에 펼쳐든 신문에는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가 실려 있었다. 뒤집어 생각해보았다. 내가 배웠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베트남 참전' 문제를 과연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자유와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파병했노라고, 총을 들지 않는 노인과 부녀자와 아이들에게 총을 쏜 적은 결코 없었노라고 씌여 있지는 않은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박찬대 40.5%, 박남춘 9.8%, 김교흥 5.4%...박찬대, 유정복에 오차밖 우세 박찬대 40.5%, 박남춘 9.8%, 김교흥 5.4%...박찬대, 유정복에 오차밖 우세
  2. 2 '윤석열 사형' 구형에 논평 한 줄 못내는 국민의힘의 속사정 '윤석열 사형' 구형에 논평 한 줄 못내는 국민의힘의 속사정
  3. 3 윤석열 사형 구형에 세계가 주목... "정치적 자살 행위로 몰락한 스타 검사" 윤석열 사형 구형에 세계가 주목... "정치적 자살 행위로 몰락한 스타 검사"
  4. 4 용인 반도체 공장 부지, 직접 보면 놀란다...대통령도 후회한 이유 용인 반도체 공장 부지, 직접 보면 놀란다...대통령도 후회한 이유
  5. 5 이광재 29.4%, 우상호 24.7%...김진태와 대결, 모두 오차밖 우세 이광재 29.4%, 우상호 24.7%...김진태와 대결, 모두 오차밖 우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