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아찔했던 그 순간

미아( 迷兒)를 둔 부모 심정, 잠시나마 경험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등록 2001.04.30 22:28수정 2001.05.0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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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던 그 해 어린이 날, 우리 가족은 아이들을 데리고 과천 어린이대공원에 갔었습니다. 점심때가 가까워 도착했는데,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로 붐볐습니다. 놀이기구를 탈 생각은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분수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손에 물을 묻혀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나무 벤치 한 곳에 자리를 펴고 준비해간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아들을 데리고 장난감을 파는 가게에 가서 이것저것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아들이 없어진 것입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입니다. 그래도 멀리 가지 않았을 거라고 믿고, 주위 사람들에게 아들의 인상착의를 이야기하고 물었으나, 다들 못 봤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린 지 삼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가자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유괴 당하지 않았을까, 아들이 없는 사람이 데리고 간 것은 아닐까, 보호소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가도 하루 이틀 지나도 부모가 나타나지 않으면 보육원으로 넘긴다고 들었는데 혹시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미아보호소를 몇 번씩이고 들락날락했지만 두 시간이 넘도록 아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를 이래서 잃어버리는가 보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고 아플까, 우리도 미아를 둔 부모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 아빠를 부르며 울며 떼를 쓰고 있을 네 살짜리 아들의 모습까지 떠올려지면서 무더운 날씨보다 가슴은 타들어 갔습니다.

두어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마지막으로 어린이대공원 입구 전철역 주변에서 아들을 찾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그 쪽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허리춤에서 삐삐음이 울렸습니다. 나는 얼른 공중전화 박스로 뛰어가 삐삐음을 확인했습니다. 파출소에서 아들을 데리고 있으니 데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화를 확인하자마자 나는 지금까지 태어나서 가장 빠른 걸음으로 어린이대공원 맨 꼭대기에 위치한 파출소를 향해 단숨에 뛰어갔습니다. 경찰관 아저씨와 아들이 밖에서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나를 보자 "아빠!"하며 와락 달려와 품에 안기면서 우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달랜 후 경찰관 아저씨로부터, 아들이 어떻게 파출소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경찰관 아저씨는 누군가로부터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아들을 파출소로 데리고 와서 아들을 달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들의 가슴에 달린 명찰에 적힌 이름과 내 삐삐번호를 보고 연락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명찰은 점심 먹기 전, 모 회사에서 나온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명찰을 달아주고 있길래 달아줬는데, 그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후로, 우리 가족은 어린이날에는 집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근처 자장면집에 가서 외식을 합니다. 그리고 평일이나, 한가한 주말을 이용해서 아이들이 원하는 곳을 갑니다. 아들을 잃어버리고 찾아 헤맨 가슴 아픈 기억이 있어서 그렇지만, 편안하고 여유 있는 시간에 마음껏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날은 어린이날보다는 한가한 주말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후로 나는 한 가지 습관이 생겼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보도나, 거리에서 미아 찾기 전단을 받아보거나, 미아 찾기 광고전단이 담벼락에 붙어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유심히 지켜봅니다. 아마도 그때 그 일이 떠오르면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아픔을 조금이나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잃어버린 아이를 둔 부모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이번 어린이날에는 나와 같이 순간의 방심으로 사랑스런 자녀를 잃어버리는 부모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라며 두 손을 모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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