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앞 중국요리집들의 이색 결의문

안전문제로 학교당국과 마찰빚어온 중국요리 배달

등록 2001.05.09 00:39수정 2001.05.0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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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일찍 학교를 등교해보니, 정문 앞에 서 있던 몇몇 남자들이 교문을 지나는 학생들에게 약간 멀뚱멀뚱한 자세로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침마다 유인물을 건네는 부지런한 학생회 일꾼 쯤이려니 생각했지만 왠지 그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 보였다.

그들이 건네는 A4용지 크기의 종이 한 장을 얼떨결에 받아들고 바쁘게 걸어가면서 천천히 펼쳐서 읽어보니, 그 내용은 놀랍게도 학교 앞에 밀집해 있는 7개의 중국요리집에서 내놓은 합동 결의문(?)이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교문 앞에서 종이를 나눠주던 그 낯선 남자들은 그 중국집에서 나온 종업원들인 모양이었다.


결의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앞으로 대학 내에서 오토바이로 중국요리를 배달하는 배달원들은 학생들의 안전을 최대한 고려해서 서행운전을 할 것이며, 학교 중앙보다는 외곽을 이용하여 배달을 하며, 자체 규찰대를 동원해서라도 안전사고 예방과 면학분위기 조성에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결의문의 마지막쯤에는 "지켜봐 주십시오"라는 다소 동정어린 말투도 포함되어 있었다.

난생 처음 중국집 종업원들에게 유인물을 받아본 것도 이색적인 경험이겠지만, 안전사고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들의 뜬금없는 결의가 황당하게 느껴진 학생들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아침부터 강의실에서는 이 문제로 수다를 떠는 학생들이 줄을 이었고 오늘 캠퍼스에는 중국집이야기가 하루종일 꽃을 피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결의문이 아무 이유없이 오늘 갑자기 터져나온 것은 절대 아니다. 모르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이미 학교 내에는 대학당국과 학교 앞 중국집간에 밀고당기는 긴장관계에 대해 많은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당국은 오래 전부터 빠른 속도로 캠퍼스 내를 누비는 여러 대의 중국집 오토바이들이 학생들의 안전에 상당한 위험으로 다가옴을 심각함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 이유로 중국집측에 계속적인 경고를 해왔다. 하지만 중국집간의 과다경쟁은 누가 빨리 신속하게 배달할 수 있느냐에 승부를 걸었고, 중국집 배달부들의 배달속도는 하루가 멀다하게 빨라져가기만 했다.


결국 대학당국은 더 이상 중국집 배달부들이 학교안을 누비게 내버려두지 못하겠다는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고, 지난주쯤 "교내 중국요리 오토바이 금지령"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게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주요 고객을 잃게 된 중국요리집측은 큰 충격을 받게 된 셈이었고, 중국요리를 즐겨 시켜먹는 학생들도 큰 불편을 겪게 되는 묘한 상황이 난데없이 발생한 것이었다.

오늘 내가 받은 '결의문'도 그런 중국요리집측과 학교당국간의 갈등과정에서 나온 절충안의 하나로 보였다. 즉, 최대한 안전문제에 신경을 쓰는 대신 예전처럼 중국요리의 교내배달을 허용하게 해주는 것 말이다. 물론 그 갈등이 모두 해결된 것인지 좀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여하튼, 이번 계기로 중국요리 배달부들이 학생들의 안전문제를 신경쓰게 된 것 만큼은 긍정적인 효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만큼 배달속도는 느려지게 되겠지만 말이다. "아저씨, 빨리 갖다주세요"라고 매번 중국집에 전화주문할 때마다 습관처럼 외쳐되던 우리들의 모습 역시 반성의 대상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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