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 서도식 부부의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부부가 함께 꿈꾸는 세상

등록 2001.05.16 10:59수정 2001.05.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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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오늘이 저희들 결혼 3주년 되는 날이네요."

김태연, 서도식(본명 룩 왈렌) 씨 부부는 달력의 날짜를 확인하고 서로 마주보며 활짝 웃는다. 도식 씨는 벨기에 국적을 가진 한국인이다.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나 2살 때 벨기에의 한 평범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부모님께서는 제3세계와의 국제연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어요. 오히려 저보다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계실 정도니까요."

세상을 보는 눈이 따뜻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그의 눈에는 한치의 그늘이 없다. 긴 턱수염에 개량한복을 입은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인이지만, 세계를 편견 없이 아우르는 그의 생각의 폭은 어느 한 '국적'과 '민족'에 얽혀 있지 않은 자유인이다.

사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도식 씨의 입양문제에 대해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여러모로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그와 얘기를 나눈 지 5분도 안되어 쓸데없는 고민은 날아가 버렸다.

"벨기에에는 부모님과 형, 누나가 살고 있어요. 20년 동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다름'을 인정했고, 저는 한 개인인 '서도식'일 뿐입니다."

물론 다른 입양아들과 마찬가지로 도식 씨에게도 '한국인'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인가 봐요. 대학 총장님께서 대학교에 일본손님이 오셨으니까, 와서 통역을 해달라고 부탁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일본사람이 아니라, 한국사람입니다'라고 말했죠. 그때 불현듯 '내가 한국사람이라면 한국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한국어를 공부하고 유학을 계획했죠."

도식 씨는 한국에 대해 입양아가 쉽게 가질 수 있는 '고국에 대한 아련한 추억, 원망과 미련'을 갖기보다는 좀더 자신을 개발하고 개방된 정체성을 갖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그를 더욱 당당해 보이게 한다.


입양아, 그러나 그늘 없는 그의 맑은 미소

태연 씨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1972년 생후 8개월쯤, 아버지의 석사과정 이수를 위해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는 태어나지 않았지만, 아기 때부터 미국이란 나라에서 살았으면 '미국사람'티라도 나야 할텐데,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정(情)은 그녀에게 한국인의 정서를 물씬 풍기게 한다.

"저는 한국사람이에요. 한국가정에서 한국말을 하고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식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으니까요. 주말에는 한국학교에서 공부도 했는 걸요."

그들은 1995년 ㅅ대어학당에서 서로의 꿈을 갖고 만났다. 도식 씨는 벨기에에서 번역학을 전공한 후 91년 한국을 첫 방문하고, 그 후 일본에서 1년 동안 공부하다가 좀 더 한국어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그는 다시 한국을 찾았다.

태연 씨는 미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LA에 있는 극장에서 1년 동안 일하다가 한국어를 좀더 체계적으로 배워야 할 생각으로 그녀도 다시 한국에 왔다.

"서로에 대한 인상은 무척 좋았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중국으로 배낭여행을 갔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하면서 친해진다는데, 우린 엄청 싸웠어요. 그때 얼마나 섭섭했는데요." 그러면서도 태연 씨는 남편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본다.

1995년 그들은 런던대학으로 '한국학' 석사과정에 입학한다. 서로 전공은 달랐지만, 1년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미국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도식 씨와 그것에 반론을 제기하는 태연 씨는 한미관계와 관련해 토론의 토론을 거듭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것이 '한국학'. 그리고 결혼.

"프로포즈요? 알고 지낸 지 2개월만에 벨기에에 가서 부모님께 인사드리자고 하더라구요. 속으로 얼마나 놀랬던지. 그런데, 이렇게 결혼하고 나니까 그게 프로포즈였나 봐요."

그들은 1998년 벨기에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그 해 여름 다시 미국에서 친정부모님들을 모시고 결혼식을 치렀다.

두 달만에 건넨 프로포즈, 결혼과 한국학 공부로 이어져

현재 이들 부부는 미국 오하이오대학 '한국학' 박사과정에 있다. 도식 씨는 마지막 논문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데, 그의 논문주제는 '한국 학생운동과 민주주의'.

"같이 하숙을 했던 형이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도식아, 너는 한국인이면서 외국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정리되지 못하고 있는 학생운동과 민주주의에 대해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 거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연 씨의 논문주제는 '한국의 현대문화-대중문화와 소비문화'. "주제는 잡았는데, 아직 작업에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서두르지 않고 좀 더 한국을 공부하고 접하면서 틀을 잡아가려고 합니다."

평소 시민활동에 활발히 참여해온 벨기에 부모님들의 영향을 받은 도식 씨는 '어깨동무' '시민의 신문' 등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태연 씨 역시 한국을 공부하는 중에 세계 속의 자신을 발견해 나가면서 '국제민주연대(KHIS, www.khis.or.kr)'의 어학당에서 영어강사로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에게는 꿈과 계획이 있다.

"자본주의로부터 탈피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저희들의 꿈이에요. 꿈은 이루기가 어렵죠. 하지만 그 꿈을 조금이나마 실현하기 위한 계획이 있습니다."

교수가 되어 세계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이 바로 그것.

'민족은 깃발 같은 것' 닫힌 민족개념에서 탈피해야

'도식 씨에게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무심코 던진 질문에 도식 씨는 단호히 말한다.

"민족이요? 민족은 깃발과 같은 겁니다. 닫힌 민족은 인류의 벽을 만들고 서로를 갈라놓고 평화를 깨뜨리죠."

어디에선가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이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사람들과 함께 꾸면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태연, 도식 씨 부부는 벌써 두 명이 함께 꿈을 꾸고 있으니,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제민주연대가 펴내는 격월간 '사람이 사람에게' 5.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국제민주연대가 펴내는 격월간 '사람이 사람에게' 5.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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