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인만의 워싱턴 5.18 행사

5.18이 특정 지역만의 것인가

등록 2001.05.26 15:27수정 2001.05.26 17:3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역사란 무엇인가? 독일의 랑케가 말한 '과거에 있었던 단순한 사실'인가 아니면 이탈리아의 크로체가 말한 '오늘 현재의 역사'인가? 아니면 이 두 가지 견해에 절충을 한 영국의 EH. 카가 말한 '역사가와 사실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인가?

현재와 과거사이의 대화라면 우리는 어떤 현재로서 과거와 대화를 하고 있는가? 이러한 생각들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지난 20일 필자는 워싱턴 교민들이 주최하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2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몰았다.

필자가 체류하고 있는 버어지니아주에는 동서로 29번 도로인 리하이웨이(Lee Highway)란 길이 있다. 행사장인 아난데일을 가려면 반드시 그 길을 지나야 한다. 리하이웨이의 '리(Lee)'란 단어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라 처음에 무척 반가웠지만 얼마 지나서 그것이 남북전쟁때 남군의 지도자로서 참패를 당한 로버트 리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 약 140년전 버어지니아 지역은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남군과 북군이 처절하게 싸운 전쟁터였다. 지금의 주도인 리치몬드는 당시 남군연합군의 본부였다.

존 덴버의 노래중 '신비로운 달빛 감도는 생각하면 눈물어리는 곳'이라는 쉐난도 계곡도 이곳에서 멀지 않은데 그곳도 남북전쟁 당시 처절한 격전지이다. 지금은 그런 역사를 역사책의 갈피와 팸플릿에 간직한 채 동굴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역사에서의 반목이 화해로 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잠겼다가 바깥을 보니 행사장인 메디슨 디스트릭 파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필자는 우선 초라한 행사의 규모에 놀랐다. 비가 뿌리는 날씨 탓인지 불과 40 여명이 모인 행사에 영사관 관계자가 대독한 이한동 총리의 치사내용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곳 몇 개로 나누어진 한인회 대표들의 축사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규모로 보면 일요일에 모인 향우회 수준이었다. 사실 행사장에 가기 전 한인신문에서 행사를 후원하였다는 가게에 들어가 행사장의 위치를 물어보니 모른다며 두 손을 내저었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이 행사가 워싱턴 동포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범동포적 행사로 치르게 됨을 뜻깊게 생각한다" 며 고대현 호남향우회장의 기념사가 다소 공허하게 들렸다. 이런 행사를 호남 향우회가 아니라 한인회 전체행사로 진행해야 하는데 사전에 아무런 논의없이 이름만 올려놓았다고 하는 한인회 관계자들의 불평도 들렸다.

유감스럽게도 동 행사는 국민의 정부 초기와는 달리 다른 지역은 배제된 채 특정 지역의 향우회로 그치고 있음이 역력해 보였다. 한국에서의 5.18 행사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야 대표들이 기념식에 참가하고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였지만 연례행사 이상의 의미는 찾을 수 없었다. 광주 피해자 유가족들은 오히려 서울 국회로 올라와서 피해보상이 아니라 국가유공자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하는 데모를 벌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 외에 올해 5.18 관련 행사는 대부분 국민들에게 그저 덤덤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오늘의 5.18 광주는 왜 이렇게 초라하게 전락되었는가? 그것은 이 지역과 사건을 기반으로 한 김대중 정부의 정치실패에 있다. 피해자가 화해당사자가 되어 지난날의 반목을 치유하고 차별을 없앤다고 한 정부는 그때의 약속과 달리 오히려 역차별로 같은 지역사람끼리 뭉치는 정권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래서 지역감정의 골은 더 깊어져 정상적인 국가기능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소수정권으로서 원칙을 통한 정치보다 편법을 통한 통치는 실패로 나타나 사실 국민들의 지지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미국의 역사도 갈등의 역사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와 진리가 승리하기 위한 갈등의 역사이다. 아직 미국 남부에 가면 당시 남부군의 상징인 연합군기가 펄럭이고 있고 사우스 캐롤라이나주는 주 청사에 이를 게양하는 문제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부군의 국기가 펄럭이지만 그 옆에는 당시 적의 수장이었던 링컨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과거의 갈등을 현재의 노력으로 치유하고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의 패자이지만 로버트 리 장군의 명예는 도로 이름으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패자에게 모든 것을 빼앗지는 않는다. 역사를 보는 미국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흑백갈등에서의 교훈 때문인지 미국에서 차별만큼 엄격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없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집으로 보내는 각종 서류의 모두에는 차별을 당하였을 경우 언제라도 연락하라는 글귀와 함께 신고 전화번호가 적혀져 있다. 그렇게 역사에서 배우고 현실은 역사를 다시 만드는 것이다.

필자가 본 워싱턴의 5.18 기념식은 분열과 앙금이 가셔지지 않은 고국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5.18은 호남인의 행사로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몇 사람이 모이더라도 이국에서의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의미는 있다. 그리고 5.18을 더 이상의 특정 지역만이 관심을 갖는 행사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 서로 더 깊이 이해하고 화해하는 마음으로 이 지역감정의 골을 넘어서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더욱 세차게 뿌렸다. 머리 속에는 갈 때보다 더 많은 의문들이 꼬리를 이었다. 역사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고 현재의 역사가 아닌 과거와 현재와의 끝없는 대화라고 하면 역사를 만나는 우리의 현재는 어떤 것인가? 이러한 초라한 현재로서 과거를 만나고 대화해서는 안 된다. 21년 전 광주의 역사가 정부와 국민들에게 준엄하게 묻고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오늘은 무엇인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산책하던 주민들이 가리킨 곳, 황어 사체가 둥둥... 왜 이런 일이 산책하던 주민들이 가리킨 곳, 황어 사체가 둥둥... 왜 이런 일이
  2. 2 딸들이여, 어떻게 나이 들지 궁금하면 이 사람을 봐요 딸들이여, 어떻게 나이 들지 궁금하면 이 사람을 봐요
  3. 3 비행기 문짝 떼고 공중에서 찍은 사진인데 어떻게 이럴까 비행기 문짝 떼고 공중에서 찍은 사진인데 어떻게 이럴까
  4. 4 심상치 않은 일본의 움직임...한국인 관광객이 제일 큰 피해 본다 심상치 않은 일본의 움직임...한국인 관광객이 제일 큰 피해 본다
  5. 5 3D 프린터 쓰다 사망한 과학교사...그의 아버지가 대법까지 가겠다고 나선 이유 3D 프린터 쓰다 사망한 과학교사...그의 아버지가 대법까지 가겠다고 나선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