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특위 좌절과 꺾여진 민족정기

25일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보고

등록 2001.05.28 12:43수정 2001.05.3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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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친일파 숙청 실패

한국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역사적 사건은 무엇일까?
한국전쟁,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5·18광주 민중항쟁 등 우리 현대사는 어느 나라의 역사보다 많은 사건들을 겪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경중(輕重)을 논하는 것이 어리석을지 모르지만, 필자는 "친일파 숙청의 실패"를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일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36년간 일제하에서 조국과 민족을 배신하고 자신들의 일신의 안락을 위해 독립운동가들을 밀고·고문한 친일파들의 숙청이 제대로만 이루어졌어도 일제때 일본군으로 독립군을 잡던 박정희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 101조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자 처벌'

역사적 가치에 비해 조명을 받지 못하거나 왜곡된 사실들을 찾아 보도하는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매주 금요일 9:55∼)"는 지난 5월 25일 <반민특위, 승자와 패자(연출 정길화)>에서 1945년 해방 후 유일하게 친일파 숙청을 위해 활동한 반민특위의 활동과 한계를 보여주었다.

반민특위는 1948년 해방 후 국민들의 여론이 친일파 숙청 요구가 높아지자, 당시 입법기관인 과도입법의회에서 "민족 반역자·부일 협력자 모리 간상배에 관한 특별법"에 기초하여 만들어 졌다.

이와 헌법 101조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한다"에 기초한 반민족 행위 처벌법에 의해 반민특위의 활동이 시작된다.

▲백재호 반민특위 전남조사관 ⓒ MBC
당시 반민특위 활동 위원이였던 백재호(85) 씨의 "반민특위가 활동하자 목포에서만 6000통이 넘는 친일행위자들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는 등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는 증언은 당시 반민특위의 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을 읽을 수 있다.


제대로 친일파 처벌 못하고 반민특위 해체

반민특위는 1949년 1월 8일 일제 때 비행기 헌납을 주도했던 화신 백화점 사장인 "박흥식"의 검거를 시작으로 김연수·최린·이광수 등 지식인들의 검거와 일제 경찰부 보안과장으로 악명 높았던 노덕술을 체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1949년 6월 6일 새벽, 특경대의 활동에 위법성이 있다는 이유로 반민특위의 행동 부대라 할 수 있는 "특경대 대원들"을 경찰에서 연행해 사실상 와해시킨다.

▲반민특위 특경대 ⓒ MBC
이후 6월 20일경부터는 소위 "국회 프락치 사건"이 터져 반민특위에 활발히 활동하던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공산당으로 몰리면서 급격히 반민특위의 힘은 약해지고, 6월 26일 김구 선생의 암살로 사실상 반민특위는 활동은 중단되고 9월 5일에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만다.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에 대한 역사적 단죄를 처음으로 시작한 "반민특위"의 깃발은 이렇게 내려지고 만다.

반민특위 활동기간 343일 동안, 취급건수 682건, 영장 발부 408건, 기소 221건, 체형(體刑) 12건 등을 처리하였다. 그러나 그나마 체형 12건도 1950년에 전부 사면돼 우리나라는 해방공간에서 반민족자들을 한 명도 처형하지 못하는 역사적 오점을 남긴다.

프랑스, 해방 후 즉결 심판으로 1만명 처벌

이에 반해 독일에게 4년간 점령을 당한 프랑스는 해방 후 레지스탕스를 중심으로 재판없이 대독 협력자에 대해 즉결 심판을 해 대독 협력자 1만명과 대독 협력 여성들의 머리를 삭발시켜 수치심을 주는 방법 등으로 대독협력자를 처벌했다.

재판 없이 대독 협력자를 처벌하자 드골 정부는 "나치 협력과 처리 전담 재판소를 전국적으로 설치한다"는 포고문과 함께 "숙청 재판소"에서 나치에게 활동한 사람들과 독일과 협정을 맺어 프랑스를 사실상 독일에게 넘겨준 "비시 내각"의 총리 등 3부 주요 인사들을 사형을 시키는 등 강력하게 대독 협력자들에 책임을 묻고 역사를 바로잡는다.

프랑스는 독일로부터 해방 후 사형 6763건(형 집행 767건), 종신 강제 노역 2072건등 대독 협력자들 12만명에 대해 처벌하고 시민권을 박탈한다.

특히 바르비라는 대독 협력자는 39년을 도망다니다가 몇 해 전 붙잡혀 종신형을 언도 받는등 프랑스에서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처벌을 줘 역사를 바로잡고 있었다.

친일경찰 혐의 하판락 씨와 독립운동가 이광우 씨 인터뷰

▲이광우 독립운동가 ⓒ MBC
<이제는 말할수 있다>에서는 단순히 역사서나 자료에 의한 사실뿐 아니라, 당시 특경대 부대장이었던 이병창, 김구 비서실장 선우진(80), 반민특위 감사원이었던 박재호(85) 씨 등의 인터뷰를 통해 좀더 당시 반민특위 활동을 자세히 보여준다.

특히, 당시 친일 고문경찰 혐의를 가지고 있는 하판락 씨와 그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당시 반민특위에 고발해 법정까지 간 이광우 씨와의 인터뷰는 <이제는 말할수 있다>팀의 특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자신의 행위를 밝히기 꺼려하는 사람들을 방송이라는 공적 영역으로 불러들인 것은 분명 <이제는..>팀의 높아진 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민특위 승자와 패자>에서는 친일을 한 개인뿐 아니라 일제 시대 때 여론을 왜곡했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을 잊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독일 점령시에 15일 이상 신문이 발행된 신문사는 폐간 당해 역사적 심판을 받았지만, 우리 신문들은 일제 시대의 친일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죄없이 아직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당당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나라 역사가 왜곡되는 이유 중 하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친일 행위자들의 변명 들을 수 있어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닌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프랑스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수치를 통해 보여줘 시청자들에게 좀더 객관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또한 친일 행위자들의 반론 아닌 변명을 직접 인터뷰를 통해 들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제는...>에게 투자한 60여 분은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생각된다.

무임 승차론

단순히 생존권을 위해 친일을 한 사람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명백한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 특히 그들의 자식들은 지금 각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 비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분들의 자식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3·1절"이나 "8·15광복절"에 하는 특집 방송을 통해 많이 접했을 것이다.

한 시사 평론가의 책에 "무임승차론"이라는 것이 나온다. 독재자가 나왔는데 그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독재가 물러나면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만 다시 독재자가 나타나더라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독재에 대항해 싸워 결국에는 독재자들이 나타나기 어렵게 되는 민주 국가로 나아갈수 있다는 것이 무임승차론의 요지다.(물론 독재에 싸우는 사람들이 단지 물질적 보상 때문에 싸우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러 개인적 상황 때문에 부당한 권력의 행위에 침묵을 지키다가 일부의 사람들에 의해 부당한 권력 행위를 벗어날 수 있다면, 법적으로 보장해줘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일 것다. 실제로 독립유공자나 상이(傷痍)용사들에게 주는 혜택 등이 이러한 전제하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것을 좀더 확대하자는 것이 무임승차론이라 생각된다.)

역사는 반복된다

▲보도연맹원들이 학살당한 통영 앞바다 ⓒ MBC
일부에서는 해방 후 친일 관료들을 계속해서 쓴 이유가 "혼란한 당시 우리나라 상황에서 나라를 운영하자면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과연 일제 시대 때 그들(친일 관료)이 행정 업무가 뛰어나서 발탁된 것이란 말인지 묻고 싶다. 대부분 일본 제국주의의 하수인이 되기를 다짐하고 "내선일체"를 외쳤던 사람들만이 일제 시대때 관료를 했다는 것을 정녕 모르고 하는 소리인지 궁금하다.

최근 국회에서 소장파 의원들이 "친일파 청산"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공청회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미 5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그런 행위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한 역사 학자의 말처럼 과거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반성 없이는 다시 과거의 치욕적인 민족의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시청률에 좌지우지 되지 않기를

우선 지난 1999년 <제주 4·3>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30여편의 한국 현대사를 중심으로 진실을 파헤치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1999년 첫 방송을 했을 때 "과연 진실을 얼마만큼 파헤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얼마나 갈 수 있을지"라는 궁금함으로 지켜본 것이 사실이다.

1999년과 2000년도에 방송되었던 내용 중에는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과의 인터뷰 실패로 단지 의문점만 제시하고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트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방송된 <이제는...>에서는 한국전쟁 때 소문만 무성하던 "보도연맹"사건을 당시 학살당한 가족들의 증언으로 실체를 파헤쳤고(4/27·5/4방영), "5·16과 장도영(5/11방영)"에서는 미국에 있는 장도영 씨와 만나 5·16 군사쿠데타 당시 상황을 직접 듣는 등 역사적 자료 가치를 높이고 있다.

앞으로 "한일협정(6/1)", "6.25 일본군 참전(6/15)", "이승만을 제거하라-에버레디 프랜(7/6)"등 한국 현대사에서 감추어졌던 사실들을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찾아갈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시청률이라는 숫자 놀음에 의해 폐지되는 상황이 안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앞으로 역사의 진실을 찾는 데 앞장서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되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 방송 예정 내용(iMBC자료게시판)>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 5월25일(이규정. MBC프로덕션)
·한일협정 / 6월 1일(홍상운)
·푸에블로 미스터리 / 6월 8일(강지웅)
·재일동포 기민(棄民) 정책 / 6월 15일(김동철. MBC프로덕션)
·6.25 일본군 참전 / 6월 22일(박건식)
·자유언론 실천선언 / 6월 29일(정길화)
·이승만을 제거하라 - 에버레디 플랜 / 7월 6일(한홍석)
·미정 / 7월 13일(이채훈)
·도시산업선교회 / 7월 20일(홍상운)
·전향, 그 후 / 7월 27일(강지웅)
·황태성 사건 / 8월 3일(박건식)

덧붙이는 글 < 방송 예정 내용(iMBC자료게시판)>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 5월25일(이규정. MBC프로덕션)
·한일협정 / 6월 1일(홍상운)
·푸에블로 미스터리 / 6월 8일(강지웅)
·재일동포 기민(棄民) 정책 / 6월 15일(김동철. MBC프로덕션)
·6.25 일본군 참전 / 6월 22일(박건식)
·자유언론 실천선언 / 6월 29일(정길화)
·이승만을 제거하라 - 에버레디 플랜 / 7월 6일(한홍석)
·미정 / 7월 13일(이채훈)
·도시산업선교회 / 7월 20일(홍상운)
·전향, 그 후 / 7월 27일(강지웅)
·황태성 사건 / 8월 3일(박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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