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라는 키워드
96년 말 구조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동법 날치기 통과시 국회에 있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잘 기억할 수 있다. 지금 와서 97년 말 왜 외환위기가 왔느냐는 질문에 그 답변이 여야가 다르지만 노동법 날치기 사건이 외환위기를 불러왔고 그래서 당시 집권여당의 정권재창출에 실패하게 된 주요 요인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때 노동법 날치기는 당시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를 둘러싼 권력갈등의 결과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당시 신한국당 대표는 이홍구 씨였고 총리는 이수성 씨였다. 이홍구 씨는 유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차기 여당의 후보가 되기에는 불투명하였다. 이에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사람이 바로 이수성 총리였다. 당시 노동관계법은 현안 문제였는데 정부 여당내에서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방법과 시기를 두고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하나가 신속처리이고 다른 하나는 신중처리였다.
이수성 총리는 청와대의 박세일 수석과 이원종 수석의 지원을 받으며 전자쪽에 서서 어쨌든 동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여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홍구 대표는 당시 신민주공화당과 협력해서 해를 넘기더라도 모양새를 갖추어 처리하고자 하였다. 이홍구 대표는 당시 김수한 국회의장과 서청원 총무 등의 지원을 받으며 온건론을 이끌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신속처리로 가닥을 잡아 크리스마스날 처리를 강행하였다. 그것은 바로 파국으로 이어졌다. 양쪽이 갈등 대신 협력을 했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유추가 아니다. 한국정치에 있어서 대통령 선거 즉 대선이 갖는 절대성과 파괴성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지금 여당인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장파와 동교동계 가신 그룹과의 갈등도 바로 이 대선 때문이다. 대선을 1년 6개월을 앞두고 일어난 안동수 법무장관 파동은 그렇지 않아도 대선고지가 험난한 여당인 민주당의 정권재창출 기대를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내년 대선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정당의 몸부림 이것이 오늘날 민주당 내홍의 핵심이다.
정동영 최고위원을 비롯한 소장파는 이대로 가면 절대 정권재창출이 어렵다, 뭔가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한화갑, 김근태 최고위윋 등 중진그룹이 가세한 것은 그만큼 이런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를 비롯한 동교계들은 이 시점에서 분열은 곧 파멸이다. 잘 단합해서 나가면 안될 것도 없다는 시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갈등과정에서 나타난 특징은 이념이나 노선의 투쟁이 아니고 철저히 사람에 대한 공격이라는 주요 내용이라는 점이다.
노벨상 부메랑 : 김대통령 시나리오의 실패
그러나 이러한 갈등의 근원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약화되고 있는 김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문제이다. 김대통령 개인의 리더십이 여권에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어서 여권의 다른 모든 요소의 합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고 이에 따라 여권 특히 민주당은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최근 정동영 최고위원에 이어 한화갑 최고위원 까지도 청와대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김대통령 리더십의 문제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의 리더십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레토릭과 실천과의 차이에 있다. 정치는 말의 예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통령 만큼 말을 통한 정치를 탁월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으로 낮은 수준의 정치에서 통용된다. 당의 총재나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는 경우가 다르다.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화려한 말을 우선하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 정치는 다름이 아닌 포퓰리즘이다. 김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형적인 인기영합주의 바로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이란 제도적인 지지와 요구에 바탕을 두지 않고 일시적인 선동과 감정에 의존해서 하는 정치행태를 말한다. 김대통령의 그런 정치행태가 두드러진 것이 외환위기 극복과 남북정상회담에서이다. 외환위기극복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법과 제도에 의하지 않고 당시의 분위기를 이용하여 재벌총수의 재산환수와 빅딜을 추진하였다. 사실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은 아니었는데 일시적인 편의에 의해 추진되었다. 지금까지 경제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이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북정상회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역사적인 기회를 잘 살릴 수 있는데도 제도적인 장치보다 그때 그때 편의에 의해서 추진하였기 때문에 지금 안팎으로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당시 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선거에 활용하지 않겠다고 단언해놓고 총선을 며칠 앞두고 남북회담을 발표한 것도 지금 와서 부담이 되고 있다. 또 하나는 노벨 평화상이다. 필자는 김대통령이 재직중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중 한사람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이 부담이 되고 역대 수상자중에서 실패한 지도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은 김대통령 개인을 넘어서 이 나라의 영광이다. 문제는 그런 상을 받고난 뒤 김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했느냐가 문제이다. 노벨 평화상의 정신을 살려 국민화합을 도모하고 사심없이 개혁을 밀고 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노벨상을 받고난 뒤 너무 오만하였으며 그것을 정권재창출의 기회로 활용하려고 하였다.
민주당 내분의 향후 전망
김대통령의 그러한 시나리오의 구체적인 집행은 첫째, 김중권 대표체제의 구성 둘째, 야당의 96년 대선자금 수사 셋째, 언론개혁을 표방한 공정위와 국세청의 조사 넷째, 미국 방문의 조기단행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김대통령의 시나리오는 대북정책의 차질로부터 헝클어지기 시작하였다. 연두기자회견에서 표방한 강한 정부는 오히려 국민들과 야당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노벨 평화상의 부메랑이었다. 그리고 서두른 미국방문에서는 부시 행정부와 대북정책에서 이견만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5공 세력 지원과 영남의 분할을 노린 김중권 대표체제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의 정체성에 위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황이 점점 나빠지면서 여권 일부에서는 대선에서의 절망감으로 인한 부패가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결국 김대중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으로 나타났다. 김대통령은 상황을 되돌리기 위하여 무리수를 두었는데 그것이 신승남 검찰총장 체제의 선택이다. 법무장관은 분명 상급자인데 그 밑의 총장을 특정인으로 교체하기 위해 법무장관을 교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 민주당의 내분은 법무장관 추천에 대한 책임논쟁이 일고 있고 겉으로는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김대통령을 위에다 두고 그 밑에서 치고박는 형식인데 본인들도 알고있는 것으로 문제는 김대통령의 잘못된 시나리오에 의한 잘못된 국정운영에 있는 것이다. 당에서 벌이는 갈등을 청와대는 어떤 식으로 대응할 지 모르겠으나 뾰족한 대안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의 본질을 청와대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정국은 내년 대선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바람이 불면 작은 것부터 갈라지는 법이다. 민주당의 분열도 결국 서로 내년 대선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그리고 자민련도 위기를 느끼고 있다. 최근 느닷없는 JP 대망론도 결국 마지막 단말마의 몸부림이다. 그 바람이 민주당을 향해 거세게 불고 있다. 민주당의 내분도 이러한 움직임 속에 있다. 그래서 내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절망감을 극복할 만한 기회가 좀처럼 잡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김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자세를 바꾸어 절제되지 않는 제왕적 대통령제, 식물기능을 하는 국회, 낙후된 정당제도 등의 문제를 사심을 버리고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야당도 여기에서 상황을 즐기며 수수방관해서는 안되며 정치개혁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당의 내분 결과 개혁세력이 승리할 경우 그 불똥이 한나라당으로 까지 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국민들의 관심은 안주하는 이회창체제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리더십의 교체가 너무 쉽게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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