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개그에 대한 단상

등록 2001.05.31 21:24수정 2001.06.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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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개그가 유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허무 개그가 아니다. 깨기 개그다. 진지함, 진실함을 깨는 개그다.

허무 개그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던져지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를 반전 시키는말이 등장한다. 그리고 맨 처음 말을 던진 사람은 예상과는 달리 순순히 인정한다. 보통 생각하기에는 진지하고 반대되는 자신의 의견을 내놓을 것으로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 다음 상황은 진지함이나 자신의 의견과는 상관 없는 무심한 답이 나온다.

예를 들어 신문선 버전을 보자. 신문선이 아! 골이예요 골! 하자 아나운서가 알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신문선은 순순히 그래 라고 말한다. 축구 대일본전 중계 방송 당시 신문선과 아나운서가 연출했던 격정적이고 진지했던 상황은 쉽게 가볍워지고 희화화 된다.

이순신 장군의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당부에 병사들은 네 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역사, 사회, 정치 여기에다 TV 광고 패러디, 영화 명대사 패러디에 역사 속 위인의 말씀 패러디까지 '허무'의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기발하고 허를 찌르는 개그라고 할 수 있다.

'허무 개그'가 이 같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머리 굴리지 말고 단순하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지고 드는 보통 사람들의 자화상을 빈틈없이 꼬집기에 후해서 인기를 끈다고 한다. 또 고생 끝에 마침내 도달한 경제적풍요가 가져다주는 우울한 허상 앞에 한없이 허탈해진 우리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투영하기 때문이기도 하단다.

그러나 허무 개그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진지함에 대한 반란이다. 진지하게 고려하거나 고려하는 틀에 대한 도전이다. 나아가 역사, 사회라는 무겁고 진지한 주제에 가벼움을 씌워버리기 쉽다.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주제를 고민하는 것은 하나의 우스개 소리에 못미친다.


이같은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진지함이나 배려, 고려를 하는 사람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진지함이나 배려, 우리가 꼭 염두해두어야 할 기본적인 가치들이 우스개만도 못해지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지해져 봤자 심각하게 고민해봤자 별 쓸 데 없고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오히려 손해만 돌아온다는 것을 반증하고자 허무개그는 오늘도 사이버 공간상에서 창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개그의 소재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개그를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기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런 가벼움은 진지한 사람을 우스개로 만들어 버리거나 진지한 사고나 진지해야 할 영역을 왕따 시킬 수 있음을 염두해 두고 개그를 해도 해야 할 것이다.


통렬한 꼬집음과 일깨움의 허무개그는 필요하지만 무분별한 허무 개그는 자신이나 사회와 역사가 진짜 허무 해질 수 있지 않을까. 허무 개그에 뒤에 숨어 낄낄대며 집중하기 보다 진실함과 진지함이 통하고 인정받는 사회를 일구어 가는데도 신경을 놓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우스개는 있지 말기를 바란다. 1)종군위안부는 강제로 희생된 여인들이다. 2)화장실이라니까! 3)어 !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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