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06.28 13:55수정 2001.06.28 14:42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랑'이라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라는 걸 6월의 어느 날 아침에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남편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들뜬 목소리로 황급하게 절 불렀습니다.
"한솔이 엄마,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술이라도 한잔 한 날이면 다정하게 '은숙아!'하고 제 이름을 불러주지만, 보통 때의 남편은 큰 아이 이름을 넣어서 절 부르곤 합니다.
남편이 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다가가서 모니터를 쳐다보니 제 이름으로 만들어진 홈페이지가 '짠'하고 뜨는 거예요. 그 전날 늦은 밤에 제 홈페이지를 만들어 준다며 아이디를 뭐라고 하면 좋겠냐고 이것저것 물어오는 남편에게 잠시 생각하다가" '누리사랑'이라고 하면 좋겠네요" 라고 무심결에 한 마디를 남기고 별다른 기대도 하지 않은 채 피곤했던 저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사무실에 출근해서 꼬박 일해야 할 남편은 서툰 솜씨로 제 홈페이지를 만들어준다고 새벽 4시가 넘도록 컴퓨터 앞에서 거의 날밤을 새웠다고 합니다.
홈페이지 안에는 어디에서 다 퍼왔는지 황홀할 정도로 멋있는 그림과 좋은 시, 음악, 그동안 제가 올렸던 몇 편의 글들, 특히 요즘 5살 먹은 작은아이가 흥얼거리며 따라 부를 정도로 즐겨들었던 '장사익의 찔레꽃' 까지 깔아 놓았더군요. 그 순간에 남편이 절 생각해주는 마음이 느껴져서 감동스했습니다.
보통 때 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잘 하지 않는 대신에 무심한 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제 무심함에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마음이 들어서 40대 초반에 접어들어 조금은 쓸쓸함을 풍기는 남편의 얼굴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습니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과 선배가 소개해준 동아리에 혼자 가기 영 쑥스럽다며 같이 가자고 조르는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생각지도 않았던 지금의 남편이 있던 '동아리'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눈에도 덥수룩한 머리가 너무도 개성적인(?) 당시 4학년이었던 남편과 첫 상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조숙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었지만, 아직 미팅도 제대로 못해본 채 영화 속에나 나올법한 꿈같은 사랑을 꿈꿨던 저에게 7살 연상인 남편의 급작스럽고 저돌적인 다가섬은 저를 많이 당황스럽고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곁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겉모습에 남다르게 무심한 남편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덥수룩한 머리에 너무도 개성적인(?) 차림새와는 달리 마음속에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순수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저로 하여금 하게 하였고 제 마음도 서서히 열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한 87년 당시는 시대상황과 맞물려 캠퍼스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때였습니다.
도서관에서 틀어박혀 지내야할 4학년 졸업반이었지만, 남편은 동아리방에 자주 나와 있었고, 그러다가 저를 만나게 되었노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의미도 제대로 모른 채 남편을 따라서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영정에 묵념을 드리기도 했고, 시내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에 참석했다가 취루탄을 쏘아대며 돌진하는 전경들을 피해서 쏟아지는 기침과 눈물에 고통스러워하면서 남편의 손을 잡고 시내골목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요즈음 결혼할 때 장만해온 세탁기가 작동이 됐다 안됐다 하는 걸 보면 시간이 많이 흐르긴 흘렀나 봅니다. 모든 것이 급변해서 다급하게 돌아가는 정보화사회라고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보통의 시민들에게 어쩌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직장마다 구조조정 이라 해서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요즈음, 서서히 흰 머리카락이 하나 둘 늘어나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이 땅의 남편을 바라보며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오곤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비록 화려하지도 않고 세련되지 못한 홈페이지지만 그곳에서 남편이 절 생각해주는 마음을 느끼게 되었고 부족하나마 몇자 적게 되었습니다.
요즘 전 남편의 사진을 지갑속에 넣어 가지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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