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다음에는 울타리 없는 곳에서 만나요"

암말기의 아버지에게 올리는 국보법위반자손준혁 씨의 편지

등록 2001.06.28 18:12수정 2001.06.2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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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체포된 손준혁 씨의 아버지가 담도암 말기, 앞으로 2달밖에 안남은 상태인 것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들이 손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손씨가 부모님께 쓴 편지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면서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1998년 영남대 총학생회장과 한총련 의장으로 활동하던 손씨는 외아들로 4년 동안의 수배생활을 하면서부터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고 전화 인사만 드리고 있었다.

수배생활을 하면서 학생운동을 진행해오던 손준혁 씨는 지난 21일 광주에서 반미총력투쟁에 결합하고 전남대에서 나오던 중 학교 앞에서 잠복근무를 하고 있던 광주 보안수사대 형사들에게 강제 연행되었다.연행과정은 미란다원칙을 무시한 불법 강제연행으로 알려져 있으며 손씨는 지금 수사중에 있다.

체포된 덕이었을까. 손준혁 씨를 창살 앞에서 수갑을 찬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던 아버지 손영상(64) 씨는 그러한 아들의 모습에 소화가 안되었는지 병원을 찾았으나 이미 담도암 말기. 암이 전립선까지 퍼져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이고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는 그는 현재 양산의 한 요양소에서 두 달 남은 마지막 삶을 마무리하고 있다.

담도암은 암 중에도 극히 드물게 나타나는 암으로 담즙이 내려가는 관에 암이 발생하는 것을 말하고 환자의 대부분은 감염이나 간부전증으로 사망하는, 생존률이 극히 적은 병이다.

손씨의 어머니 역시 평소 안 좋았던 심장병이 악화돼 아버지와 함께 요양소에서 지내고 있다.

그리고 24일 저녁 7시경 양산의 암환자 전문 요양소에서 더 이상 그곳에서도 생활이 불가능하니 집으로 모시고 가라는 연락이 왔다. 일주일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오로지 주사에 의지해와 10kg이나 몸무게가 빠진 손씨의 아버지는 간간히 먹던 생즙마저도 이제는 먹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었다.


그런 와중에 손준혁 씨가 아버지와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인터넷상에 공개되어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손준혁 씨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아버지, 어머니 보십시오

"아버지세요! 저 혁인데요. 당분간 집에 못들어 갈 것 같아요. 자세한 애긴 나중에 드릴께요. 걱정하지 마세요. " 97년 12월 마지막 날 쯤 이었던 걸로 기억되네요. 아버진 조금은 익숙하기도 하고 무뚝뚝하게 외마디 짤막하게 답하셨죠.

"그래, 알았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 당신의 믿음이 있었기에 짧게 걱정 없이 대답하셨겠죠. 혹은 아마도 '해맞이' 갔다 오겠지라고 생각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죄송하게 그 '당분간'이라는 일상에서 짧은 시간이 무려 4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는 이별의 시간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산가족으로 4년, 다시 얼굴 맞대고 앉은 곳이 경찰서 유치장이라니.
아들은 수배생활 4년을 보내고서 손목에 수갑을 차고 고무신 신고, 아버지는 창백하게 하얀 얼굴, 불편한 몸으로 말기 암이라서 수술도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뒤로하고 병과의 투쟁을 시작하고 계셨죠. 불편한 몸 추수리고 눈물 방울진 눈으로 앉아계신 어머니.

분단반세기, 50년 넘어 긴 세월을 그리움에 가슴저리며 흩어져 살아오다 상봉의 기쁨과 회한으로 눈물짓는 이산가족은 있었건만, 우리 가족의 이별과 만남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애써 태연하고 당당하게 행동하시는 아버지, 눈물방울이 맺힌 어머니 눈, 겉으로는 웃었지만 터질듯한 분노와 눈물이 마음속 깊은 곳에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명절이라도 되어 집에 전화라도 할때면 밥은 거르지 않는지, 몸은 건강한지, 뭐 필요한 것은 없는지, 아들 걱정이 앞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요.

집에 별일은 없는지. 아버지, 어머니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을 때면 당신께서는 건강은 여전하고 집에는 별일 없다. 너 하나 건강하고 별일 없으며 아무 걱정 없다고 하셨지요.
그리고는 뉴스를 들으셨는지 이제 곧 국가보안법이 개정, 철폐 될 것이니 좋은 소식 있을때까지 몸조심하고 잘 다니라고 격려까지 빼먹지 않으셨지요. 특히,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달라진 상황에 한껏 고무되기도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남북공동선언 이후 공동선언의 정신대로 합의 사항이 성실히 이행되기만 했어도 남측에서는 벌써 국가보안법 같은 반통일 악법은 철폐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총련 이적규정도 없어지고 정치수배도 해제되고 감옥의 양심수들도 모두 풀려 났어야 하지요. 이것은 남북 두 정상이 민족의 뜻에 따라 서로 약속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 민족끼리의 소중한 약속이었지만 그 약속은 아직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고, 이제 아버지의 아들은 죄명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경찰, 검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립던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갇혀 있게 되었지요. 버스타고 10분이면 가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아버지, 어머니가 자식을 가장 필요로 하는 지금, 그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아버지의 승부기약 없는 투병생활, 저의 수감, 어머니께서는 아마도 예전 몸이 몹시 아프실 때보다 더 어려운 시기라 생각해 봅니다.

면회오셔서 아버지, 집 걱정은 조금도 하지말고 너나 건강히 잘 생활해라. 밖에는 엄마가 있지 않느냐고 힘주어 애기하시던 어머니 모습에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문득 떠올려 봅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하는 저의 모습이 궁색하기 이를 때 없습니다.

'국가보안법'. 50년 동안 이땅에 존재하며 반통일, 반민중, 반민주 악법으로 그 역할을 하더니 이제는 저와 우리 가족에게 반인륜의 부도덕함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온 국민, 칠천만 겨레가 힘을 모아 하루라도 더 빨리 국가보안법을 철폐시켜 다시는 우리 가족 처럼, 그리고 수 많은 이땅의 가족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래보기도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부터 시작이라고 마음먹어 봅니다.
쉽지 않을 아버지의 투병생활, 저의 감방 투쟁 그리고 어머니는 뒷바라지에 쉴틈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니 우리 가족의 투쟁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곧 울타리 없는 곳에서 건강한 아버지 모시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 믿으며 열심히 살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건투를 바랍니다.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해 2001, 6. 10
아들 혁이 올림


손준혁 씨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지난 주말까지 해서 검찰, 국정원 조사가 공식적으로는 마무리 된 것 같구나 한달여간 경찰, 검찰, 국정원 돌아가며 이것저것 조사하더군.

자기들끼리는 수군수군하며 뭔가를 조사하는데 내보기에는 별 특별한 것도 없어 보인다.

이번주엔 국정원에서 또 온다고 하는데 아마도 특별한 것은 아니고 자기네들이 궁금해 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 하는 것 같구나 별걱정 없다.

바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내 생활은 편하다고 해야겠지. 눈병으로 퉁퉁 부은 눈을 해가지고 여기저기 신경쓰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네 모습에 고맙다고 해야하나? 안쓰러워 해야하나?

몸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데 걱정이 되는구나.

몇일전엔 책이 한 보따리 씩이나 들어왔다. 내가 보고 싶었던 귀한 책도 있고 지도교수님이 보내주신 전공책도 있더구나. 잠시라도 지난 시간을 잘 마무리하고 다시 준비할 기회를 바라던 터라 책들이 여간 반갑지 않다. 정리도 해 보고 성급한 전망도 해본다.

그리고 우리가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어릴적엔 검게 그을리고 주름진 아버지 모습이나 지문이 다 달아 없어지도록 일한 어머니의 손이 부끄럽기도 했고 넉넉하지 못한 집안형편이 못마땅하기도 했지.

대학시절을 겪으며 친구들과 사회는 그런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생명력 있고 귀중한 우리 민중의 모습이라는 것을 나에게 깨우쳐 주었어.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한 누구나가 그렇듯이 엇갈리는 가치관속에서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이 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지. 그런 어머니, 아버지, 민중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이 지난 4년간의 수배생활을 지탱하게 했다고나 할까.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어. 그렇기에 요즘은 조금더 복잡한 생각이 드는군.

얼마전 신문을 뒤적이는데 예전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기사들에 시선이 멈추기 시작했다. '암' '항암제' '항암식품' 이런것들....
몇일전에 '담낭증'에 대한 기사가 났더군. 콩같은 까만 돌들을 몸속에서 빼내는 사진과 함께 몸속에 많이도 들었더라. 그런데도 그 사진속의 환자는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는 아니었어.

'대체 아버지는 얼마나 큰 돌이 어느 정도 어떻게 퍼져 있기에 밥도 못드시고 치료가 불가능 한 것일까?' 문득 생각이 멈추더라. 항암치료, 건강 식품들에 대한 기사도 유심히 읽어 보았다. 힘든 병마와 싸우고 계신 아버지께 걱정거리가 될 뿐.....
말기에 암치료에 세계적인 권위가 있다는 북의 '고려의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북의 치료약 '장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지금 내 처지에서는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무력해 지고 만다. 예전에도 말 잘 듣고 효도하는 아들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아버지께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야 할텐데.....

허망한 생각의 고리를 접고 냉혹한 현실 앞에 선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시대에 그 아픔을 당했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충분히 고칠수 있었고 북에서 초청장 까지 받고도 치료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김양무 선생님, 내일 죽게될 동생의 침대 앞에서 수갑이 채워지고 구속된 장진숙학우, 결국 동생은 누나가 감옥간 사이에 주고 말았지.

어머니를 잃게 된 이은경이라는 친구도 있었구나. 나에게만 닥친 일이 아닌 것 알게 된다. 분단된 조국, 민족의 아픔이었다.

그러나 남북 두 정상이 6.15 공동선언을 약혹한 마당에, 그리고 거기에 맞추어 1년을 살아온 마당에 국가보안법이 뭐 필요한가? 적이 아니라 서로가 존중하고 통일을 하여야 할 한 민족임을 선언한 6.15선언 수많은 사람들이 남북을 오고 가건만 안타깝게도 내 생활속에 남쪽의 땅위엔 여전히 분단이 건재하구나.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련다.

형근아! 미안하다만 고생스럽더라도 계속 신경써주면 고맙겠다.

2001. 6. 7
구치소에서 준혁이가



사람의 목숨 위에 법이 있을 수 없다. 정태수, 김현철 등은 자신의 병이나 기타의 핑계로 보석으로 풀러나면서, 이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그들 나름대로의 신념을 따라 열심히 살아온 한 청년은 아버님의 병간호도 못 하게 하는 일은 힘없는 소시민은 깔아뭉개도 좋다는 식의 논리로 보일 수밖에 없다.

"손준혁 씨를 아파서 신음하는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주세요. 이 시대 젊은이의 임무를 깨닫고 살아가느라 4년 동안 얼굴도 못뵌 아버지가 아프시답니다. 사람 세상에서 당연한 권리를 눈물로 호소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착한 아들을 병든 아버지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픈 아버지 손잡고 위로해드리지 못하게 막고 있는 장벽은 무엇인가요"라는 한 네티즌의 푸념이 눈물나게 슬픈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법과 그 적용은 인간의 초보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인도주의와 도덕적 가치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탄 나라에서, 민주주의와 인권국가구현을 최우선과제로 삼고 있는 '국민의 정부'에서 이 같은 안타까운 부자간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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