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06.28 20:36수정 2001.06.2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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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백설기, 시루떡, 송편, 약과 등 김이 무럭무럭 나는 떡판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는 떡집 주인을 본다. 그런 떡집이 나의 근무처 주변에는 두 군데나 있다.
오늘 아침에는 유난히 떡 향기가 골목 안에 그윽하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떡집 앞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순전히 그 향기에 이끌려 들어갔다.
깎은 밤과 검정콩을 넣어 만든 백설기 떡판이 시루에서 막 나오는데, 그 위로 모락모락 번지는 하얀 김이 일품이다. 그 냄새는 향기라 해야 옳다. 원료는 쌀이고, 그것을 찐 냄새에 불과한데 달착지근한 향기가 코끝에 그윽히 묻어 난다.
어쩌면 내 어릴 적 어머니의 젖내 같기도 하다. 무명 적삼에서 배어 나오는 어머니의 젖 향기처럼 달작지근하다.
생전에 어머니는 술을 잘 빚었다. 선친이 유난히 약주를 좋아하신 까닭에 어머니의 양조 기술은 유별났다. 거기에는 내 고향 청양의 특산물인 구기자도 꼭 들어갔다.
고슬고슬한 술밥을 멍석 위에 펼쳐 놓으면 누룩을 섞기 전에 얼른 한 줌 입에 넣어야 한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가장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어느 때는 미처 술밥을 맛보기도 전에 누룩을 섞어버려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어머니께 그 야속함을 말씀 드리면 "시렁 위 소쿠리를 열어 보아라" 하셨다. 막내 아들의 몫을 한 줌쯤 남겨 놓은 것이다.
오늘의 이 떡 냄새가 그 시절 맛보았던 찐 쌀의 향기와 다름 없다.
희뿌연 김과 함께 시루에서 막 나오는 백설기 떡판을 나는 통째로 들고 나오고 싶었다. 집에 가져가 가족들과 함께 먹고 싶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이미 떡 세대가 아니다. 제과점 케익에 입맛이 익숙해진 지 오래여서 진정 우리의 전통 떡 맛과 향기를 아이들은 모른다.
어쨌거나, 떡집 아주머니에게 '맛 좀 보게 조금만 달라'고 했더니, 2천원어치라면서 싸주는데, 그 뜨거운 것을 싸 가지고 집에 오니, 이내 식어버렸다. 온기가 가신 것이지만 집사람은 "이게 웬 떡?"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작게 썰어 내게도 한 점 권하였으나, 나는 갑작스런 입 안의 통증 때문에 떡을 밀어두어야 했다. 왜 갑작스럽게 그런 통증이 일었는지 모르겠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이어서 동네 치과에 갔더니, 치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턱 관절의 뻐근한 통증은 누구나 올 수 있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턱 관절 모형까지 보여주면서 눈물이 나오도록 하품을 크게 하였을 때도 비슷한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의학적으로는 그런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통증의 근저(根底)에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농가의 부엌에서 번져나왔던 그 독특한 술밥 냄새의 진한 향수가 병인(病因)임을 왜 모르랴.
그러므로 안타까운 일은 야간 근무를 마친 사람은 새벽 공복(空腹)에 진한 '떡 향기'를 함부로(?) 맡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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