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주말 드라마를 보면 하나같이 "결혼을 어떻게 하면 가장 애절하게 할 수 있나?"를 보여주는 듯 하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내세우려고 하는 시도를 어떻게든 하려고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3회에서 6회를 넘어가면서 무너지기 마련이다. 뭔가 새로운 성격을 보이는 캐릭터를 도입시켜서 시작한 드라마라도 사랑앞에서는 맥을 못춘다.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어머니에게 차별받으면서 자랐지만, 괄괄하고 시원스러운 성격을 지닌 여자캐릭터가 자신의 뒤를 잘 돌보아주는 부유한(절대적으로 부유한 캐릭터여야만 한다) 남자캐릭터와 사랑을 하고, 결혼해 살아가는 모습(SBS "그래도 사랑해"),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살아온 여성이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남성과 결혼하면서 두 사돈간의 대립이나, 가사분담, 시누이와의 갈등 모습(MBC "그 여자네 집")을 그리는 내용은 이전에도 시청자들이 너무 많이 보았던 모습임에 틀림없다.
특히, 드라마의 흔한 주제인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벌써 몇년째, 몇번째 방영되는 것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이다.
주말 드라마에서 늘 등장하는 구조 중 하나는 며느리와 시댁간의 갈등 구조다. 며느리는 항상 능력있는 직장여성이다. 하지만 이 며느리는 가사에는 영 서투르기 짝이 없다. 직장에서와는 달리 요리, 세탁, 청소, 모든 가사에 서투른 이 며느리를 시누이(시누이도 반드시 등장하는 극적장치 중 하나다)나 시어머니는 미워할 수밖에 없다.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과시라도 하듯이 "내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혹은 동생이나 오빠)에게 어떻게 이런 대우를 할 수 있느냐"고 퍼붓는다. 혹여 아들(동생, 오빠)이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든 해결하려 치면 시누이는 "우리 어머니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다"며 아들에게 죄책감을 지우고, 시어머니는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부담을 가중시킨다.
시누이 역시 바꾸어 말하면 다른 쪽으로 며느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같은 입장에 놓인 올케는 왜 이해하지 못할까? 자신이 시집살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누이는 남편이 능력이 없어서 친정에서 살던가, 시어머니의 영향력이 약하다.(극중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혹은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직장여성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식으로 논리적(?) 이유를 달아버린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비현실적인 설정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능력을 인정받는 직장여성"이라는 점이다. 사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직장여성이 아니라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이다. 전문직은 전문적이고 심도있는 지식을 가져야 하고, 높은 보수를 받는 직종을 의미한다. 실제로 한국에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이 얼마나 되는가? 아무리 전문적이고 심도있는 지식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높은 보수를 받는다던가, 남성보다 높은 직책을 맡는 여성이 과연 한국의 사회에서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가?
드라마에는 그런 소수의 여성이 너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현실과 가상공간을 혼동하기 쉽도록 하는 영상매체의 특성을 고려하면 꽤나 위험한 가정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의 지위가 저만큼 신장되어 있는데도 여성들은 실력을 키울 생각은 않고 자기 직업이 없다고 한탄만 한다"식의 편견을 사회에 자리잡게 하는 훌륭한(?) 역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능력을 인정받아봤자, 밥도 하나 못하는 여자가 될 뿐이다"라는 생각도 갖게 할 만한 위험한 소지도 가지고 있다. 대학에 다니면서 밥도 한 번 안해봤다는 게 어떻게 이해가 되겠는가? 대학에 다니면서 MT도 한 번 안가본 대학생이 대체 몇명이나 될까? 그리고 MT에서 밥도 안하고 설거지도 안하고 가만히 흔한 말로 "공주처럼" 앉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둘째, 시누이가 며느리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남자형제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도 좋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자신이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직장여성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꿈이 현모양처라서 고등학교나 대학 졸업 후 결혼을 꿈꾸며 신부수업만 받지 않은 이상은 직장 생활을 스스로도 1년은 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직장 생활을 하지 않은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말은 이율배반 아닌가.
그리고 남편의 무능때문에 친정에 들어와 산다는 설정을 한 번 보자. 시집에 들어가 살든, 친정에 들어가 살든,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친정에 들어가 사는 사람은 시집에 들어가 사는 사람에 비해 아직은 소수다. 드라마 속엔 왜 그리 처가살이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시집살이하는 며느리 만큼이나 많다.
또 시누이의 시어머니는 두메 산골에 사는 분이거나 애초부터 없는 설정으로 등장하지 않거나, 소재를 찾다 참신함을 더하고자 할 때 곁들이는 이야기로 잠깐 서울에 올라오는 식으로 옅은 영향력을 보여준다. 시누이는 어떻게 친정에도 매일 올 수 있는가. 며느리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친정에 자주 올 수 있을까? 그러면 올케입장의 며느리는 친정에 어쩌다 한번 가도 왜 욕을 먹는가? 시누이가 딸로서 어머니를 보고 싶은 것만큼 며느리도 딸로서 얼마나 어머니를 보고 싶겠는가. 정말 시누이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또 사돈 사이에 존재하는 그 엄청난 경제적 차이는 어떠한가? 이제는 흔한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내버려두자. 한국에서 경제적 차이가 큰 사람들이 결혼하는 예가 얼마나 있을까? "청담동 문화"와 "강북문화"의 차이나 이질감이 얼마나 큰지 드라마 작가들은 잊어버린 모양이다(하긴 그들은 강북문화라고 하면서 온갖 브랜드 상품을 집어넣고 있으니 말이다). "청담동 문화"는 상당히 배타적인데도 그러한 성격은 이미 무시하고 있다. 그 얼마나 환상적인 꿈인가. 재벌집 아들, 혹은 딸과 결혼하는 평범한 소시민.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뿐, 실제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과연 이러한 똑같으면서 비현실적인 소재가 각각 다른 이름의 드라마로 탄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역시 시청률에 있을 듯 하다. 그들은 "시청자는 자신의 삶과 똑같은 모습은 구질구질해서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화려한 소재를 보여주면 그들은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들것이다"라는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요즘과 같은 경제 불황은 드라마 상에선 잠깐의 장치에 불과하다. 성공하는 소수의 케이스를 전부인 것처럼 보여주거나, 부(富)와의 합공이 성공의 지름길인 것처럼 보여준다. 그들은 평범한 이들보다 쉽게 성공에 다가서고, 쉽게 실패하기도 한다. 실패도 그것은 잠깐의 장치다. 절대적으로 계속되는 것은 없다.
"결혼학개론"을 중심으로 다루는 가족드라마가 정말로 "가족드라마"를 표방할 수 있을까? 그것은 평일 10시에 방영하는 흔한 드라마와 다를 바가 없다(그 드라마들역시 결혼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말이다).
대체 얼마나 시청자들은 똑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지겨워해야 하는 것일까. 혹자는 그러면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될 것이 아느냐고 반론을 하기도 할 것이다. 보지 않으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공중파에서 드라마를 방영하는 시간에 볼만한 프로그램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방송사가 시청률에 매달리지 않고 정말 작품성있는 드라마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언제쯤이나 생길런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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