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양민학살 보도 북한 신문 발견

해방일보, '1950년 7월 9일 13일 ...3백명 학살'

등록 2001.06.30 23:00수정 2001.07.0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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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경찰이 옥천군 일원 보도연맹 관련자 수 백여명을 총살했다는 <오마이뉴스> 증언보도를 뒷받침하는 당시 북한 종군기자의 기사가 실린 신문이 최근 발견됐다.

1950년 7월 날짜 미상의 '해방일보'는 '3백여명을 학살'이라는 제목하에 당시 옥천읍에 사는 김순근 씨의 증언을 인용해 "(1950년) 7월 8일 (옥천읍내에) 경찰들이 보도연맹 관련자를 전부 소집하여 2km 밖에는 절대로 나가지 못하니 꼼짝말고 있으라 떠들고 가더니 다음날 9일 새벽 3시경 30여명의 보도연맹원을 군소면 앞산으로 모두 끌고 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7월 12일(에는) 부락민들을 동원해 두 개의 큰 구덩이를 파게 한후 다음날 아침 인민들을 태운 트럭 두 대를 그곳으로 끌고 갔다"며 "5명씩 팔을 묶어 차례차례로 구덩이 앞에 세워 놓고서 5연발 총으로 사살해 구덩이에 쓸어 넣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또 김씨의 증언을 인용, "이렇게 죽은 사람이 3백여명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

이같은 '조선인민보'의 당시 기사는 지난 해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1950년 7월 초경 충북 옥천군 군서면 월전리 일대 3곳에서 최소 2백여명의 보도연맹관련자들이 경찰에 의해 총살됐다는 증언보도를 뒷받침 하는 것이여서 주목된다. <아래기사 참조>

이밖에도 '조선인민보'는 김순근 씨의 말을 인용, "(1950년)7월 18일 미군과 패잔병들이 군북면 이택리에 들려 피난가라고 하면서 돼지, 소 할 것없이 모조리 잡아먹었고 군북면 자모리에서는 인민들이 피난을 가지 않는다고 40여호나 되는 부락에 불을 질렀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기사는 1950년 7월 날짜미상의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취재기자는 이 신문사의 '특파원 고석'으로 돼 있다.

관련기사-충북 옥천에서도 양민학살 주장/이기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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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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