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37년만의 신기록이라는 폭우 속에서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수재민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대도시의 한복판에서 많은 사람들이 집이 물에 잠기는 황당한 일을 경험해야 했고, 심지어 감전되어 목숨을 잃은 사람조차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동대문구 이문동)에도 그런 수재민이 있었다. 아니, 아직 그들의 집이 완전히 피해복구를 마치지 못했으니 수재민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내 집도 반지하이나 다행히도 약간 고지대에 있어 직접적인 피해는 면했다. 그래도 주변의 친구들이 난데없는 물난리를 당해 친구집 정리를 돕기도 했으니 완전한 남의 일은 아니라고 할까.
'이 동네 살아온 지가 십 몇 년째인데 이런 일은 처음이다'라는 아저씨의 말에서부터 시작해서 '물이 차오르는데 순식간, 물이 빠져나가는데 눈깜짝할 사이'가 걸렸다는 사람들의 말들. 우연이기에는, 그리고 너무 많이 내린 비를 탓하기에는 구청이나 공무원들의 행태가 너무 괘씸하다는 이야기들이 무척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펌프를 제 시간에 맞춰 작동했더라면 아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해를 입는 난리를 겪지는 않았을 게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인재'라고 비난하는 것만 봐도 사람이든 기계든지간에 무엇 하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것은 알 수 있으니까.
일요일 새벽에 그렇게 많은 비가 내렸던 것이 한몫을 했다고 하지만 동네마다 '폭우피해, 예방하면 줄일 수 있다'고 플랭카드를 걸어놓은 구청이나 동사무소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무책임한 행동에 피해를 입고, 남의 탓으로 돌리며 '면피'에 바쁜 이들을 보고 주민들은 '폭발'을 했고, 아버지고, 어머니고를 떠나 분에 못이기는 마음으로 지하철 선로를 가로막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하더라도 시나 구에서 그리고 국가의 수해대책본부에서 이야기하는 보상금은 일괄 90만원. 그게 끝이다.
옷이며, 책이며, 컴퓨터에 가전제품들이 모두 '잠수'하는 피해를 당한 한 친구는 아직도 집정리가 끝나지 않아 다른 친구집을 전전하는 생활을 1주일째 하고 있다. 그 친구는 통장에 수해보상비를 입금시켰다는 구청 직원의 전화를 받고 '화'를 벌컥 내기를...
"그래서, 어쩌라고요? 다 끝났다 이건가요?"
상대방은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분노한 친구는 길길이 뛰며 화를 삭이지 못했다.
그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해를 당한 사람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조금씩 도와서 차츰 정리가 되어가고 있지만 정작 참기 힘든 것은 이렇게 '보상비 지급=사건해결'이라고 생각하고 나타나지도 않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구청이나 보건소 같은 곳에서 나와 소독을 하고, 쓰레기를 옮기고는 하고 있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말단'일 뿐이고, 정작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이들은 아무도 이번 수해에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로하려고 하지 않더라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앉아 계시던 한 아저씨께서 하시는 말씀.
"여기에 서민들만 사니까 그런 거야.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나 피해를 입었지. 그런 XX(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이들)들이 이번 비에 집이 잠기기나 했겠어? 그 사람들한테는 다른 나라 이야기라구."
며칠 전 학교 노천극장(외국어대)에서 수해를 당한 동네 주민들이 대책회의를 했었다. 각 가정이 입은 피해가 다 제각각이긴 하지만 '이럴 수는 없는 거 아니냐'라며 주민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잠시 근처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번에 보상금이 얼마 안 나오나보지?"
"보상금이 문제야? 사람들 집이 물에 잠겼는데."
"아니지, '저런 사람들'한테는 보상금이 문제지, 그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다만 그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저런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그리 호의적으로 쓰인 것 같지는 않았다는 느낌밖에는. 게다가 내가 열받아서 한마디하기 전에 그 사람들은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으니까.
얼마 전 서울시는 건축물 조례를 개정해서 앞으로는 반지하에 주거시설을 들이지 못하도록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리고 19일에 정부는 새로운 '주거대책'을 내놓았다. 뭐, 한마디로 줄이자면 '앞으로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신경 좀 쓰겠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번 수해에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 없었다면 피해가 좀 줄어들 수는 있었을 것이다. 임대주택이라도 '지상'에만 사람들이 살았더라면 정말 피해규모가 훨씬 적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요즘에 집없는 '서민'들에게는 임대주택은 그냥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짓지도 않는 임대주택에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겠는가?
실제로 서울에서 임대주택 공급을 거의 혼자서 도맡아하는 대한주택공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2년째 단 한채의 건축계획(사업승인 기준)도 세워놓지 못하고 있다.
계획대로 시행되면 무척이나 좋겠지만 매스컴은 너도나도 '빛좋은 개살구'라는 이야기를 벌써 해대고 있다. 해당 지자체가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어떤 문의도 받은 적이 없다는데 이건 정말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아니면 '여론무마용 멘트'가 아닌가 말이다.
정부가 서민생활에 얼마나 많이 신경을 쓰고, 예산을 투입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안해오던 일에 갑자기 의욕적으로 나서서 큰 진전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이다. 수해를 당한 이들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이들이, 보상금 지급하고 문제 끝났다고 생각하는 이런 이들이 과연 '정책'을 통해 성공할 수 있을까? 한없이 의심스럽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