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세무서가 룸살롱 등 탈세·축소 신고 혐의가 짙은 업소를 상대로 실사를 벌이면서 카드를 사용한 고객에게 '카드 사용확인서'를 가정으로 보내 가정불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불만을 사고 있어 고난도의 테크닉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세무당국의 무책임한 행정발상으로 가정파탄 직전까지 갔던 한 직장인이 당한 황당한 사연을 토대로 사생활 보호에 대해 당국의 철저한 대책마련을 촉구해본다.
룸살롱 출입 들통난 한 직장인
회사원 중견간부인 H씨(45세)는 지난 5월 중순 어느 날, 출근하는 뒤통수를 강타한 부인의 냉기서린 한마디에 온 몸이 마비되는 충격을 받았다. "허구헌날 술집에서 가스나들과 술이나 퍼마시고, 오늘 저녁 들어오면 한번 보자"는 말이었다.
H씨는 출근길 30분 내내 차 안에서 '마누라가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같이 간 동료가 일러줬나. 그럴리는 없을 테고...'라는 물음표를 되뇌였다. 물론 하루 종일 회사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번엔 어떤 방법을 동원해 빠져나가야 할까"는 걱정에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수를 찾지 못한 H씨는 늘상 변명하던 대로 '거래처 접대'로 둘러대기로 하고,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동료직원과의 회식도 미룬 채 평소보다 일찌감치 집으로 향했다.
들통난 원인이 세무서의 공문 한 장(?)
잔뜩 독을 품은 표정의 부인이 H씨 앞으로 내놓은 것은 흰색 A4 크기의 종이 한 장. 종이를 펼쳐던 H씨는 순간 부인에게 둘러대기로 했던 변명을 접어둔 채 상기된 얼굴로 어디론가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야이, ××놈들아 사생활 보호도 모르나. 당첨금 줄테니 카드 사용 권장할 땐 언제고..." 전화기를 집어든 H씨는 다짜고짜 욕부터 해대기 시작했다. H씨는 그날 이후로 부인 몰래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BC카드마저 가위로 두 동강 신세가 되었다. 부인의 손에 들려진 가위에 잘리우는 카드 신세가 마치 자신인 양 뼈저린 아픔과 함께 각방을 쓰는 인내와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룸살롱 술집이름 적힌 신용카드 사용확인서
과연 그 흰색 종이가 무엇이었길래, H씨의 사생활이 부인에게 공개되고 이후 일주일 동안 각방을 써야 했을까. H씨의 치부를 부인에게 알려준 그것은 다름아닌 모 세무서에서 보낸 '신용카드 사용확인서'였다. 이 확인서에는 H씨가 큰 맘먹고 거래처 직원을 접대하기 위해 술을 마신 창원 소재 '모 룸살롱' 명칭과 함께 주대와 봉사료(속칭'팁')의 금액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기재된 남편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본 부인이 받은 충격은 남편 자체를 불결한 사람으로 인식하기에 충분했다. 각종 매스컴이나 인터넷을 통해 룸살롱에서 벌어지는 손님과 여성 접대부와의 행태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엔 카드이용대금 청구서가 사무실에서 받아본 터라 집으로 송부될 줄을 꿈에도 몰랐던 H씨의 황당함과 이에 따른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다행히 이 사건은 부인의 용서로 일주일만에 일단락되었지만, H씨의 분노는 지금 사그라들 기미가 없어 보였다. 만일 이 사건으로 가정파탄으로 이어졌다면 관할 세무서와 BC카드사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불사했을 것이란 입장이다.
BC카드사 무성의와 세무당국의 행정편의주의 발상이 불화 초래
이에 관할 세무서 모 조사계장은 "카드사에서 보내준 회원자료중 직장과 집이 구분되어 있으면 사생활 보호차원에서 대부분 직장으로 확인서를 보내고 있으나, BC 카드 회원의 경우, 집주소만을 통보해와 어쩔수 없이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하고, "H씨와 유사한 사례의 항의를 받고 있어 이후엔 되도록 직장으로 확인서를 보낼 것을 직원들에게 지시했다"면서 가정불화를 초래한 점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시했다.
카드사가 평소대로 카드 이용대금 청구서를 보내던 주소를 세무서에 통보했더라면 가정불화를 초래한 사생활 노출은 막을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H씨 부인이 받은 확인서에 집주소 옆에는 사무실 전화번호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를 보더라도 카드사가 세무서의 자료 요청에 세심한 주의만 기울여 직장주고만을 통보했다면 화목한 고객의 가정 불화 초래와 고객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세무당국도 본인과 전화를 통해 확인을 하거나, 술집이름인 '××룸살롱'중 룸살롱이란 업태명만이라도 삭제한 상태에서 확인서를 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국민의 가정이야 알바 없다는 행정편의주의 발상으로 무분별하게 사생활을 노출시킨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최근 들어 개인의 사생활이 인권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보호강도가 높아져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세금 추징도 좋고 카드 사용자 확대도 좋지만, 그에 앞서야 할 것은 개인의 인권과 사생활보호다. 누군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그것을 만인에 공개된다면 그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세무당국과 카드사의 세심한 주의를 다시 한번 촉구하며, 무분별한 카드사용으로 인한 개인파산과 가정파탄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오직 사용자에게 달려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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