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용칸과 늑대우리

아직도 여성전용칸이 있다

등록 2001.07.24 15:59수정 2001.07.2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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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호선 부천역에서 신도림, 신도림에서 2호선을 타고 교대, 교대에서 다시 3호선을 갈아타고 수서까지 장장 1시간 20분에 걸친 출근시간이 나의 일상이다.

부천역에서 신도림까지 가려면 전철의 뒷쪽에서 타는 것이 시간을 줄일 수 있으므로 나는 늘 전철의 뒷쪽에서 탄다. 오늘 아침도 예외없이 가장 끝 차량의 중간 문에 서서 전철을 타고 가는데, 안내방송에서 의외의 내용이 흘러나왔다.
'전철 앞과 뒤를 여성전용칸으로 운용하고 있으니 많은 이해와 협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순간, 아직도 여성 전용칸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황당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타는 가장 끝의 차량에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월등하게 많았다. 나는 내가 여성전용칸에 무단으로 침입한 파렴치한 인간으로 생각되기 시작했고, 이런 웃기지도 않는 제도를 만들어 놓은 지하철의 정책 담당자 머리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몇 년전에 여성전용칸이 시행된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통신 게시판에 아래의 글을 썼었다.

12월 1일부터 전철 1호선에는 이상한 풍경이 벌어졌다. 그 이상한 풍경이란 다름아닌, 양들과 늑대들을 갈라놓기 위한 범국가적인 사업으로 많은 양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일부 양심적인(?) 늑대들의 공감대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보통 10량짜리 지하철에 1/5인 2량을 그것도 가장 앞과 가장 뒤에 매달아 양떼들을 보호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당국의 조치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반대를 해야할지 난감해한다.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당연히 찬성이지만, 남녀평등과 구조적 모순의 해결이라는 점에서는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격인 이런 조치를 비난해야 할 것이다.

우선 가장 단순, 과격, 무식하게 생각해도 전철의 가장 앞과 뒤에 여성전용칸을 만들어놓은 것은 편의주의적 발상이며 여성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꼴이 된다. 왜냐하면, 지하철 당국자들은 절대 그럴리 없다고 핏대를 올리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전철끼리의 충돌사고가 생긴다고 가정하자. 요즘은 벼라별 일이 다 생기는 세상이니 무슨 일인들 안생기랴.


전철이 충돌하면 당연히 앞과 뒤가 가장 먼저 접촉을 하니, 그 안에 탄 모든 여성들이 가장 먼저 다칠 것은 자명하다. 당국은 가장 앞과 뒤가 구분하기가 좋아서 그렇게 결정했겠지만, 그것이 바로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정말 여성을 보호하려면 가운데 칸에 나란히 붙여서 만들었어야 한다.

그리고, 여성전용칸을 단 2량만 만든 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세상이 다 알다시피 여성은 모든 인구의 반이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여성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10량의 전철에 타는 승객의 절반, 즉 5량의 인구에 해당하는 사람이 여성인 것이다. 이렇게 많은 여성승객들이 있음에도 여성전용칸을 2량만 만들어놓은 데에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시험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니까 그럼 그렇게 생각하자. 이 제도가 잘 되면 나중에는 더 늘리겠다는 어떤 관리의 말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나중에는 여성전용칸을 5량으로 늘릴 생각인가?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 그러면 여성전용칸이고 뭐고 필요가 없다. 결국 남녀가 갈라져서 타고 다니니 자연히 남성전용칸이 생기는 셈이 될테니까.

우리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남학생반, 여학생반을 별도로 만들어서 공부하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남녀가 각각 달리 공부를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같은 성끼리 다니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도대체 상대편의 성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온갖 편견과 호기심과 터무니없는 과장과 왜곡된 이야기들이 떠돌아다닌다.

여성도 우리와 조금도 다를바 없는 인간이고 남성도 여성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서인지 남성들은 여성만 보면 호기심과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만 전철과 같은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도 여성에 대한 관찰(?)을 세밀히 하려고 노력한다.

당국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남녀의 차별을 두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 여성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것은, 여성이 힘이 약하고 몸무게가 적게 나가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불평등과 억압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의 보호는 완전한 사회적 평등이 있기 전까지는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성의 보호와 차별은 구분되어야 한다. 여성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온갖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다른 쪽으로 해석하고 왜곡하려는 의도는 분명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다.

여성을 보호하겠다고 하면서 전철에 여성전용칸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처럼 어불성설이 어디 있는가. 여성을 진정으로 보호하려면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숨을 쉬면서 타고 갈 수 있도록 차량의 증차와 운행의 횟수, 지하철의 합리적인 운행,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대중교통문제의 해결 등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눈가리고 아웅을 하면서 마치 여성을 엄청 위하는 것처럼 여성전용칸을 만드는 행위는 여성을 차별하는데 다름아니다.

여성의 보호는 이 사회 속에서 남성과 함께 생활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으로 가능하다. 여성전용칸을 만들어 수많은 남성들이 여성전용칸을 기웃거리도록 만드는 행위는 또 하나의 성폭력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제도를 만든 사람은 생각해 보았는가?


글을 쓴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다시 읽어봐도 오늘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체, 사회는 정말 좋아지고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 답답하고 한심한 제도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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