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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앙라이의 고산족 박물관. ⓒ 김준성 |
치앙라이를 벗어나 꼬불꼬불 산길을 달린지 1시간 정도 지나서였을까. 비포장 도로가 나왔다. 내가 탄 도요다 승용차는 힘겹게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따라 산을 올랐다. 지난 7월 22일 오전 나는 안내인 듀이 씨와 함께 태국 라오스 국경지대의 아카(Akha)족 마을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7월 20일 밤 방콕을 떠나 11시간만에 태국의 고도 치앙마이를 찾았다. 치앙마이 대학의 고산족 연구센터를 방문했지만 아예 대학 밖으로 이사를 한지 오래였다. 그래서 다시 그 곳을 향해 출발하려 하는데 대학 직원이 토요일이라 문을 안 열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이럴수가. 할 수 없이 나는 다시 치앙라이를 향해 떠났다.
치앙라이는 치앙마이에서도 다시 북쪽으로 3시간 정도 더 가야 한다. 치앙라이는 치앙마이와 더불어 태국에서 트레킹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작은 도시다. 치앙라이에서 북쪽으로 약 60여km를 달리다보면 태국과 버마, 라오스 국경이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곳이 나오는데 이 곳이 바로 세계적인 아편 생산지인 골든트라이앵글이다. 치앙라이에서 밤을 보내고 나는 22일 오전 고산족 박물관에 들렀다가 아카족 마을로 향했다.
아카족 마을은 차에서 내려 약 1시간 정도를 더 산을 탄 후에야 나타났다. 30여 가구가 산 언덕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언덕에서는 멀리 메콩강이 유유히 흐르는 것이 보였다. 내가 마을에 들어섰을 때 마을 중심에 위치한 공터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공터 왼편 큰 나무 아래서 마을 아낙네들이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공터 오른편에 위치한 소 우리에서는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한 할머니가 소를 기둥에 매어두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어주었다.
1995년 현재 치앙마이 대학 고산족 연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아카족은 약 5만명이 태국 북부 고산지대에 살고 있고 라오스, 버마, 중국 운남성 일대에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조상은 약 2백년 전에 티벳에서 이 곳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들의 종교는 조상신 숭배다. 이들은 주로 벼와 옥수수, 아편을 재배해 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치앙마이 대학 고산족 연구센터는 보고하고 있다. 내가 방문한 마을 주변에서는 벼와 옥수수 재배지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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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를 기둥에 매고 있는 아카족 할머니 ⓒ 김준성 |
태국에는 아카족을 비롯해 20여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데 그 중에서 아카(Akha), 카렌(Karen), 라후(Lahu), 리수(Lisu), 미엔(Mien), 몽(Hmong) 이상 6개 민족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6개 민족이, 소위 말하는 태국의 메이저급 소수 민족이다.
이들은 저마다 고유의 전통과 문화,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들에게는 태국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럼 이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란 말인가? 이들은 어느 나라 사람도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으며 학교에 다닐 수도 없다. 시민권이 없으니 당연히 참정권도 없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표하는 사람을 의회에 보낼 수도 없다. 사실상 이들이 태국 주류사회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완전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 소수 민족 중에는 태국말을 못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인데 이들이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 서게 되면 재판은 태국말로 진행된다. 지난 해에는 라후족 여인이 태국 경찰로부터 강간을 당했지만 그 경찰은 잠시 업무에서 떠났다가 다시 복귀한 것으로 태국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높은 산에 산다고 해서 고산족이라 불리는 태국 소수 민족들의 인권 상황이 현재 이런 실정이다.
지난 7월 4일에 태국에서 두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진 소수 민족인 몽족은 치앙라이 시청 앞에서 자신들은 독립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이색적인 시위를 벌여야 했다. 이 시위는 치앙라이 지방언론에 몽족이 태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였는데 이들이 이런 이색적인 시위를 한 이유는 간단하다. 태국 사회로부터 더 큰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아카족 마을에서는 영어는 물론이고 태국어가 가능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나를 안내한 태국인 듀이 씨와 함께 라후족 마을로 가기로 했다. 라후족 마을로 가기 위해서 약 1시간 정도 더 산길을 걸어야 했다.
내가 방문한 라후족 마을은 20여 가구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아카족 마을과 마찬가지로 마을 중심에 자리잡은 공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다행히도 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났다.
마을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야우찬 씨는 고산족의 현실에 대한 이런 저런 질문에 주로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으로 답했다. 그래서 나는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했는데 그나마 의미있는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우리는 라후족이다. 우리에게 국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독립을 원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라후족은 아카족과 함께 다른 소수 민족에 비해 태국 주류사회로의 편입을 거부하고 있는 민족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내가 방문한 마을에서 나는 텔레비전 수신 안테나를 전혀 볼 수 없었다. 마을 공터에 아주 조그만 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가끔씩 치앙라이에서 선생님이 와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야우찬 씨가 말해주었다.
치앙라이 고산족 박물관에서 만난 태국인 매초우 씨는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태국 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시민권 문제가 해결되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 민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그들에게 태국 시민들이 누리고 있는 제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태국 헌법에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규정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카족 마을과 라후족 마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물론 남을 밟고 일어서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식의 교육을 받기 보다는 산과 들을 벗삼아 뛰놀면서 조상들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고 도시로 나가는 것 보다는 고향을 지키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최소한 이들에게 교육받을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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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족 마을의 어린이 ⓒ 김준성 |
태국 정부는 이들 소수 민족에게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이들을 산림파괴의 주범, 마약 재배와 밀매의 원천,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범죄자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소수 민족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며 태국인들과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 뿐이다. 그들의 그러한 삶의 방식이 태국인들의 삶의 방식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라후족 마을에서 내려와 차를 타기 위해 아카족 마을을 지나는데 몇 시간 전에 낯을 익힌 아이들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래서 다가가서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더니 그만 냅다 줄행랑을 친다. 너무도 순박한 아이들이다.
치앙라이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인간에게 자연재해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다른 사람이나 집단으로부터 받는 차별이 아닐까? 우리 사회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심하게 차별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나도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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