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정의 실현? 쇼하고 있네'

[민심기행] 한나라당 텃밭 대구

등록 2001.07.25 03:22수정 2001.07.2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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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가 텅 비었으니 갑자기 언론사에 세금 내라고 난리지, 요즘 들어 왜 그렇게 주차 단속 및 교통 단속 심한지. 이유는 모두 하나야. 국민이 낸 세금은 모두 북한에 퍼주고 우리나라에는 돈이 없기 때문이야!"

지난 7월 12일, 시내에서 한나라당 동구지구당 사무실로 향하는 택시 속에서 운전기사(45)가 털어놓는 하소연이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 탄압 또는 조세정의 실현인가?"라는 질문을 채 마무리하기 전에 기사아저씨는 위와 같은 내용을 속사포처럼 쏟아놓았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언론말살이다, 조세의무를 져버린 데 대한 책임 추궁이다'는 이야기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논의되는 가운데 지난 7월 10일부터 4일간 대구지역 민심을 취재했다.

사회과학조사방법론에 따라 정확한 샘플링 작업 후에 취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대구의 민심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과 정치권이 이 사안으로 매일 불꽃튀는 싸움을 벌이고 있음에 비해 정작 시민들은 이를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무조사의 타당성은 인정하지만, 이런 방식은 안돼!

다양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대구 동대구역. 역사 주변에서 분식점을 경영하는 한 아주머니(고씨. 48 세)를 만났다. "이름은 밝히지 않아도 괜찮지? 괜히 이런 인터뷰했다고 주위 사람들이 알면 욕할 것 같아서. 난 자세히 몰라, 아줌마가 뭘 알겠어?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번에 정부가 언론에 세금내라고 벌준 것은 잘 한 일인 것 같아. 공무원이나 월급쟁이들 보라고. 몇십원까지 세금으로 딸딸 긁어가는데 그들이 이 사실을 보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고 씨는 "물론 현 정부의 정치에는 만족하는 것이 아니야, 다들 죽는다는 소리하는데…"라며 옛날보다 훨씬 더 어려워진 분식점 상황도 덧붙였다.


대구에 일 때문에 방문했다는 이 씨(35. 전주)를 천일고속 앞에서 만났다. 무더운 대구날씨에 연신 땀을 닦으며 인터뷰에 응했다. "전라도 사람이라고 김대중 씨에게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에 경상도가 정권을 잡았을 때 언론사 세무조사를 했어도 우리들은 잘 했다고 칭찬할 것입니다. 전라도 지역에도 김대중 씨에 대한 여론은 그리 좋지 못해요. 하지만 이번 사안에 대해서만은 대부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구요!."
"초록은 동색아니요? 이번 사안을 언론탄압이라고 하는 놈들은 다 똑같은 놈들이지"라며 근거없는 동류의식에 일침을 가했다.

동대구역 대합실. 기차를 기다리던 이 씨(48)는 한나라당이 펼치는 논조에 동의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좀더 구체적이었다. "앞의 사람들 모두 다 성만 이야기 했네"라며 성과 나이만 밝히고는 "초기에는 언론을 개혁한답시고 ABC제도 도입, 사이비기자 양산 방지, 신문공동판매제 등을 이야기하더니 지금은 그런 이야기는 쑥 들어가버리고 언론사들의 세금포탈 사실만 남았지"라며 허탈해했다.


즉 현 정권이 언론개혁의 일환으로 세무조사를 추진했다기보다는 비판언론에 대한 재갈물리기 전략임이 분명하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물론 세무감사도 필요하지. 하지만 이런 식은 안된다는 거야, 한나라당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말이 더욱 설득력이 있어"

정치권의 정쟁에 국민만 죽어나는 거야!

열대야 현상에 잠 못 이루는 대구시민들이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 곳이 신천 둔치다. 서늘함으로 인해 보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오후 8시 즈음에 이곳을 찾았다. 이들 대부분은 언론개혁에 대한 정당성보다는 정치권의 소모적인 논쟁에 진저리가 난다는 의견이 많았다.

장기판에서 3번이나 졌기 때문에 다소 감정이 격해있던 김 씨(53, 이천동)는 "DJ정부 X새끼!"라며 대뜸 욕설부터 내뱉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대방의 입을 막으면 되겠어? 그건 독재야!"라는 김 씨는 "언론탄압, 조세정의? 쇼하고 있네, 정치하는 놈들은 모두 미쳤어"라며 현재 신문과 방송뿐만 아니라 정치권 사이의 공방을 소모적인 정쟁이라고 일축했다.

돗자리를 편 채 음료수를 마시며 친구들과 신천 바람을 즐기던 박숙자(47. 수성구) 씨는 12일 방송된 드라마 명성황후의 상황을 먼저 화두로 꺼냈다. "대원군의 손자가 항문이 막히는 병으로 인해 결국 죽게 되더라구요. 대원군은 '양의에게 수술을 받자'고 주장했고 대왕대비는 '용정에 칼을 대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니 약으로 치료하자'며 이를 반대했죠"라며 당시 내용을 상세하게 묘사해주었다.
"대원군의 독백이 압권이었습니다. '만일 내가 약으로 치료하자고 했다면 손자를 살릴 수 있었을텐데!".

어리둥절해하며 머뭇거리고 있는 기자에게 "대왕대비는 아무런 논리도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대원군이 '약으로 병을 다스려야 합니다'고 주장했다면 대왕대비는 당연히 '수술로서 치료를 하자'라고 반대론을 폈을 것이라는 거죠. 현실에도 이런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에서 자꾸만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니, 민주당 측은 이에 반대해 언론개혁(?)에 더욱 채찍질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대원군과 대왕대비의 명분없는 싸움에 세손이 생명을 잃었듯이, 정치권의 소모적인 논쟁에 국민들만 죽어난다는 것이다.

젊은 층의 여론은 종잡기 힘든 상황

젊음층의 여론을 알아보기 위해 대구의 번화가인 동성로와 민주당 노무현 고문의 특강(7월 12일)장을 찾았다. 동성로를 왕래하는 대부분의 젊은 층은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에 특강 장에 모인 대학생 및 시민들은 노 고문의 언론개혁 요구에 열화 같은 박수로 호응했다.

"언론개혁이요? 그런 어려운 말, 잘 몰라요. 요즘은 신문과 TV는 거의 안봐요. 맨날 같은 소리만 하니 지겹죠. 골치 아픈 것 만큼 힘든 것도 없어요"라며 자리를 피해버렸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언론탄압이라고 생각합니다"는 이민석(22. 대학생, 이천동) 군. 진지하게 대꾸하는 그는 "정부에 대한 막연한 불신과 반감이 존재하던 차에 갑자기 개혁인사 흉내를 내는 것이 다소 역겹죠"라며 "현재 거액의 세금추징을 당한 조선이나 중앙일보는 모두 적자경영에 허덕이고 있죠. 그들이 과연 세금을 낼 수 있을까요?"라며 세금추징이 형식적 몸짓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중요한 것은 언론사의 적자경영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과 이들이 투명한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인데,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더군요"라고 징계에만 혈안이 된 정부를 비판했다.

하지만 지난 12일, "한국정치와 언론개혁"이라는 주제의 특강이 진행된 곳에 모인 젊은 층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광주가 국가권력에 의해 마구 학살당하던 시기, 인권 및 시민의 권리를 애써 외면했던 그들이 오늘에서야 이야기하는 언론자유, 인권탄압이라는 담론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까?"라는 호소에 강의장을 가득 채운 청중들은 열띤 박수로써 이에 호응했다.

김진영(23. 경북대) 군은 "권력의 나팔수 역할해 왔던 그들이 외치는 언론자유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며 "세금을 떼먹었으면 정중하게 국민에게 사과하고 세금만 내면 되지, 왜 이리 시끄럽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야당의 비판·견제기능에 딴지를 걸다니…

지난 12일, 중앙당 지침에 따라 한나라당 각 지구당에서는 '언론탄압 규탄대회'가 연일 진행되고 있다. 12일 한나라당 대구 동구지구당. '김대중 정권 언론탄압 규탄대회'라는 플래카드 아래 모인 50여 명의 사람들. 연설자로 나선 사람은 대구시의회 부의장인 이덕천(동구, 한나라당) 씨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실에 조심스럽게 대응하던 이 정권이 갑자기 대응수위를 높이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언론탄압으로 인해 잃은 민심을 회복시키고자 일본에 대한 투쟁수위를 높인 것입니다"며 정권의 과장된 몸짓에 국민들은 속아서는 안된다고 당부한다.

"군사독재 때에도 이 정도로 혼란스럽지 않았다"는 황영규 사무국장(한나라당 동구지구당)은 "이문열 씨의 글에 대해 곡학아세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며 야당의 비판·견제 기능에 발목을 잡는 것이 현 정부"라고 강조했다.

서문시장에서 가게를 경영하고 있는 최광호(53) 씨가 제기하는 비판수위는 이보다 훨씬 더 높다.
"예전하고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 옛날에는 민주세력이 탄압 받았지만 요즘은 공무원, 언론, 재벌들이 탄압받고 있는 실정"이라는 최 씨는 "데모의 대부인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학생들도 조용하네"라며 기존의 운동세력들이 현 정권에 동조만 하는 현실이 아쉽다고 한다.

"시민단체에서 진행하는 몇몇 신문 구독거부운동. 그런 일을 왜 하는지 몰라. 신문에 대한 선택권은 국민에게 있는데, 왜 그렇게 시민들을 가르치려고만 하는지. 친일언론 조선일보? 그때 친일 안한 곳이 어디 있어? 다 똑같지!"

대구는 침묵하고만 있는가?

지난 6일(금) "탈세언론 비호 한나라당 규탄, 조중동 구독거부 시민행동"기자회견장.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한나라당의 몰이성적 행동에 문제제기하지 않는다면, 대구는 한나라당의 텃밭이라는 오명을 또 덮어쓸 수밖에 없다"며 "7월 26일 신문개혁국민운동 출범을 통해 대구지역에서도 본격적으로 언론운동을 전개할 것"임을 이날 시민행동에 참가한 단체들은 밝혔다. 이들은 현재 한나라당 대구경북지구당 앞에서 오전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한나라당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구지역 민심에 '언론개혁 또는 언론탄압'이냐는 논쟁은 없었다. 다만 현 정권에 대한 깊은 불신과 함께 '다음에는 꼭 갈아 보자'라는 보복심리가 매우 강했다.

시민단체에서 제기하는 각종 개혁과제는 'DJ 친위대 또는 홍위병'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현 정부형태는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지만 과거와는 또 다른 형식의 만기친람(萬機親覽)형 독재라 인식하고 있었으며 장관은 '예스 맨'으로 전락하고 NGO는 GO로 얄궂게 자리매김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제 개혁의 주체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어떤 전략과 전술로 대구지역 민심을 추스릴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월간 말 8월호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말 8월호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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