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메운 밭에 농민의 행복이"

한 고등학교의 농촌봉사활동, 그 땀의 의미

등록 2001.07.25 15:36수정 2001.07.2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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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의 백영고등학교. 여름방학이 시작됐지만 학교 운동장에 백 여명의 남녀 학생들이 묵직한 가방을 들고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이들은 모두 방학을 맞아 강원도 홍천군에 있는 시골마을로 봉사활동을 떠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었다. 방학을 맞아 늦잠도 자고 싶고 가족들과 여행도 가고 싶으련만, 백영고 학생 1백30 여 명은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아랑곳 없이 농민들을 돕겠다며 자발적으로 나섰다.

버스를 타고 두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노일리는 50여 가구가 옹기 종기 모여 벼와 옥수수, 감자 등을 경작하는 전형적인 시골마을.

마을 이장님 댁에 여장을 푼 학생들은 학교를 출발하면서 준비한 간단한 도시락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이장님으로부터 간단한 주의 사항을 들으며 일터로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열 개 조로 나뉘어 각자 주어진 일터로 나간 학생들. 35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평소 도심 생활에서 접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농촌 일을 경험하면서 구슬 같은 땀방울을 뚝뚝 흘려야 했다.

널찍한 호박잎이 밭 전체를 뒤덮고 있고 밭고랑을 따라 큼지막한 호박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전원에서 학생들은 호박잎을 헤치며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을 열심히 뽑아냈다.

여학생들은 모자라는 일손 때문에 손댈 수조차 없었던 농로에 모여 무성히 자란 풀을 베내느라 낫질을 해봤지만 역시 마음 먹은 대로 잘 되진 않았다.


그러나 여린 손아귀에서 나온 노력의 보람은 학생들 마음 속에 키워지고 있었다.

농촌봉사활동에 나선 이미나(2년) 양은 "처음 하는 일이어서 무척 힘들었지만 농촌일을 해볼 경험이 없는 청소년기에 좋은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며 소감을 밝혔다.


교실에서 개구쟁이짓만 했던 남학생들 역시도 이번 폭우에 유실된 도로를 복구해보겠다며 서툰 솜씨로 삽을 들고 나서 보지만 농촌일이 이렇게 힘든 줄은 처음 알았단다.

김정수(2년) 군 역시 "솔직히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앞서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면서 "선생님들이 도와준 덕택에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고 2박3일간의 보람을 전했다.

한편 이 마을은 이번 폭우로 많은 논이 유실되면서 무릎 높이까지 자랐던 벼들이 흙 속에 파묻혀 버린 실정이다. 시뻘건 황토가 뒤덮은 논바닥에 영세한 농민들의 가을걷이에 대한 희망도 묻혀버린 상황.

농민들은 영농자금을 대출 받아 활로를 모색해 보고 싶지만 대출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고 운이 좋아 대출을 받는다 해도 이자 갚기조차 힘든 형편이라며 농사만으로는 생계조차 빠듯한 농촌의 현실을 소개했다.

실제로 이 마을 김정용(56) 씨는 "현재 영농자금 대출은 정작 농민들보다 읍내에서 장사나 사업하는 주민들에게만 대출 되는 실정"이라고 푸념섞인 현실을 전해주었다.

더구나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빠져 나가고 노인들만이 농촌에 남아 있는 등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백영고 학생들의 정성이 대견스럽고 고마울 뿐이었다.

이번에 백영고등학교에 농촌봉사활동을 요청한 오흥운(53. 마을이장) 씨는 "학생들이 자그마한 손길로 돕는다는 것이 주민들 입장에서 매우 감사하다"면서 "학생들의 땀 흘리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작은 도움이나마 큰 힘이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학생들의 농촌 봉사활동을 이끈 백영고등학교 표영학 선생님. 표 선생님은 이번 농활을 통해 학생들이 우리 농촌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회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이번 농활을 계획했다고 한다.

대학진학이 지상 과제인 현실 속에서 공부에만 몰두하기를 강요 받는 우리 사회의 고등학교 학생들.

무한 경쟁 속에서 자칫 인간으로서의 가치관 상실과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 사로잡혀 왜곡된 사회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농활은 단순히 형식적인 봉사활동의 차원을 넘어서 열심히 일하면서 흘리는 땀의 의미를 배우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아울러 학생들의 올바른 인격 형성과 더불어 사는 사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인성 교육의 소중한 시간으로 승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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