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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해로 엉망이 돼버린 집 ⓒ 오마이뉴스 박수원 |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져 내렸다.
7월 14일과 15일 사이에 서울에 내린 비가 300mm가 넘었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이날 집중호우로 49명이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그 사망자 중 10명의 사상자가 신림6동과 10동에서 발생했다.
수해가 발생한지 꼭 일주일이 지난 7월 21일 찾은 신림6동에는 이날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관악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쓰레기 더미와 밀려 내려온 자동차가 신림6동 입구를 막았던 처참했던 일주일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신림6동 시장 입구에는 "수해복구를 위해 수고하신 국군 장병과 자원봉사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신림6동 주민일동"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수해의 흔적은 사려졌지만 신림6동 시장 상인들은 두서너집 건너 공사를 하고 있었다.
시장 입구에서 김밥·만두집을 운영하는 서미자(가명, 38)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말도 못했어요. 집 무너지고 쓰레기가 말도 못하게 많아서 군인들이 어제(20일)까지 덤프트럭으로 치워갔어요. 오토바이, 프로판 가스하며 자판기가 막 떠내려갔어요. 옆에 호프집은 물을 차서 누전으로 불이 나는 바람에 사람이 4명이나 죽었어요. 집 무너지고 죽은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가게 수리해서 장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감사해야죠. 이 동네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은데 그 할머니들 요즘 옷을 싸 가지고 다닐 정도예요."
가게를 나와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동사무소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다시 한번 장마전선이 북상하여 시간당 60mm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있습니다. 지반이 약한 곳에 사시는 주민여러분께서는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장 입구에서 300m쯤 올라간 왼편 집터는 모두 파헤쳐져 있었다. 비가 퍼붓던 날 새벽 호프집 주인과 손님 두명, 호프집 옆 보배식당 주인은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목숨을 잃었고 가게는 잿더미로 변했다.
"사람들이 성냥불처럼 신경이 곤두서 있어요. 지금도 보배식당 아주머니가 눈에 아른아른 한데. 귀챦게 자꾸 물어보지 말고 저 위에 피해 많이 난 곳에 가서 물어보세요."
수해로 인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던 란호프 주인은 취재고 뭐고 다 귀챦다는 듯 피해 당한 이 곳 주민들의 심리상태를 '성냥불' 에 비유했다.
주민들은 상태는 '성냥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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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수해로 집이 잠긴 김원단 할머니. 그는 500만원에 5만원하는 쪽방에 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
교회, 성당, 부녀회.
수해가 나자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수해민들을 도와준 곳이다. 집이 물에 찬 며칠 동안 사람들은 신림 10동 '성림교회' 안에서 잠을 청했고, 거기에서 밥을 해결했다.
이날은 마침 신림6동 부녀회에서 나와 노인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점심 메뉴는 하얀 쌀밥에 미역냉국, 오이무침과 김치. 밥을 퍼 담는 김영자(49)씨는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꼬박 일주일 동안 15명의 부녀회 회원들이 나와서 식사를 제공했어요. 아픈 노인들에게는 집으로 밥을 날라줬구요. 오늘 김치는 신림13동 부녀회에서 준거예요."
신림6동 808-503번지에 살고 있는 김인단(82,여)씨. 김씨는 부녀회에서 주는 점심을 먹고 막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신림10동에 살았었는데 한달 전에 이리로 이사왔어요. 아들도 아프고, 며느리도 아파서 더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김씨 집은 주소는 있지만 무허가다. 수해가 심하게 났던 신림6동과 10동에는 김씨처럼 무허가 쪽방에 살고 있는 독거 노인들이 상당수다. 김씨의 쪽방은 500만원에 월세 5만원. 그의 방도 이번 물난리로 물에 잠겼다.
"방에 물이 찼어요. 이불도 젖어서 버리고, 선풍기도 버렸어요. 그래서 장판도 모두 걷어내고 새로 깔았어요."
김인단 씨는 아들이 있기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자에서도 제외됐다. 그는 한 달에 10만원 조금 더 나오는 일명 '영세민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는 '수해 피해조사를 위한 설문'(주민자체조사)을 작성해 건너 집에 갔다줘야 한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질문지를 슬쩍 보니 설문내용 중에는 이번 수해의 문제점을 묻는 문항도 있었다.
이번 수해에서 나타난 문제는 무엇입니까 ?
①원인규명의 문제 ② 방역·소독의 늦은 문제 ③ 구호물자의 전달문제 ④ 의료진료미비 ⑤보상문제 김씨는 ①에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쳐 놓았다.
김원단 씨가 막 나가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들인 것 같았다.
"그래 괜찮다. 부녀회에서 줘서 밥도 조금 전에 먹었다. 내 걱정 마라."
김씨는 집을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픈 아들이 내가 혼자 이렇게 살다가 죽을까봐 걱정돼서 또 전화를 한 것 같소."
쪽방에 살고 있는 김원단 할머니
신림 10동으로 올라가는 길 곳곳에 책상과 싱크대 등이 널부러져 있었다. 상점이 많은 신림6동과는 달리 신림10동에는 가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특히 많았다. 일부 무너진 집 자리에는 벌써 새집이 올라가고 있었다.
신림10동 808-1445번지. 생활보호자 윤희근(71,여)씨는 물이 앞뒤에서 밀려오는 통에 가건물로 지어놓은 집이 다 떠내려갔다. 냉장고, 가스렌즈, 가스통, 고추장독이 물에 모두 쓸려 내려갔다. 겨우 군인들이 와서 떠내려간 집에 판자를 괴어 울타리를 만들어줬다. 그는 수해가 나던 날 넘어져서 허리와 다리를 다쳐 걸어 다니는 것도 여의치 않다. 윤씨는 수해 취재를 나왔다는 말에 계속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나 좀 살려주소. 나 좀 살려주소."
신림10동 808-144번지. 이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앞과 뒤에서 물살을 만났다. 이 지역 뒤에는 30여미터 앞 삼두 아파트를 사이에 두고 소유자를 알수 없는 공터가 100여평 이상의 공터가 방치돼 있다. 공터에서 떠내려온 비로 피해를 입었다는 김필순(44)씨는 이 땅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공터에 쌓아둔 나무판자들 때문에 앞의 5층 아파트가 시야에 안 보일 정도였어요. 이 땅이 누구 소유인지도 모르겠어요. 관악구에서 어떻게 조치를 취해 주든지 해야지. 군인들이 와서 모래주머니로 괴어놓고 가긴 했는데 언제 또 변을 당할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살려줘, 나 좀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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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해의 원인이 된 배수구. 밖에서 보면 5미터 가량의 배수구가 두 개(위의 사진)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2미터의 배수구가 두 개(아래 사진)가 있을 뿐이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
신림10동 320-12호. 이번 수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지역이다. 신림6동과 10동은 94년에 복개공사를 완료했다. 그 복개공사의 시작 지점이 바로 이 곳. 밖에서 보면 5미터 가량의 배수구가 두 개지만 안 쪽으로 들어가면 5미터 가량의 배수구 중 한 쪽에만 2미터길이의 배수구 두 개만이 뚫려있다. 배수구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었다. 배수구 병목현상과 함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꼭대기에서 떠내려온 두 대의 승용차가 이 좁은 배수구 관을 막아 버려 결국 물난리를 겪고 말았다.
이 곳에 30년 가까이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면서 40대 주민은 혀를 찼다.
"안으로 들어가서 배수구 뚫린 것 좀 보십시오. 하천관리가 잘못됐다는 거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눈 가리고 아옹' 하는 행정의 본보기가 바로 여깁니다. 공무원들이 제일 먼저 와서 한일이 뭔지 아십니까. 떠내려온 나무 치우는 일이었습니다. 벌목된 죽은 나무들을 빨리 빨리 치웠어야 했는데 안 치운 책임 면하려고 득달같이 날려와서 떠내려온 나무들 먼저 치워갔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50대 주민은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냐"며 "사람들 복구 작업하느라 힘드는데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손사래를 쳤다.
"여기 1000명도 더 왔다 갔습니다. 이 지역 국회의원 이해찬 뿐 아니라 김중권 민주당 대표, 청와대 비서,구청장,별 달린 장성들까지 '한다' 하는 사람들 다 왔다 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 뿐입니다. 그냥 인사치레로 왔다 간 것뿐이에요. 변한 게 없어요."
신림6동과 10동은 '고립된 섬'이다. 주변에 모두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이 곳은 예전모습 그대로다. 신림6동과 10동 옆길은 산 허리를 잘라 금천구 시흥동과 이어지는 도로를 개통했고, 도로 개통을 전후로 주변에는 재개발 붐을 타고 아파트가 늘어났다. 사고가 났던 신림10동 지역에는 2000년 8월 입주가 완료된 주공아파트를 포함해 4500여 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이 곳에서 36년을 살았다는 오복희(51)씨는 "일주일 동안 전쟁터에서 살았다"며 사고 원인을 주변의 난개발과 주인 없이 방치된 '버려진 땅'들에서 찾았다.
"이 지역만 빼고 여기저기 산에다 아파트 지었어요. 어디 그것뿐인지 아세요. 산 속에다 천주교 성지니, 교회 기도원들 지었쟎아요. 비가와도 흡수할 땅이 없어요. 흡수할 땅이 없으면 배수관이라도 신경 써서 만들어 놓던지. 거기다 신림6동과 10동에는 무허가 집들이 태반이예요. 곳곳에 산비탈 같은 터가 남아 있지만 지상권자만 있고 실제 소유주는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이번에 산에서 쏟아진 물과 시위지 땅에서 쏟아진 물이 앞과 뒤에서 덮쳐 피해가 더 컸던 거예요."
오 씨 뿐 아니라 신림6동과 10동에서 만났던 많은 주민들은 "이 곳을 그냥 방치해 두면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행정당국에서 뭔가 구체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림 6동과 10동은 고립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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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림6동 동사무소에 세워진 구호물품. ⓒ 오마이뉴스 박수원 |
사망 12명, 부상37명, 이재민 1만2308명, 주택침수 5460가구, 공장·상가침수 1,111건, 주택파손 123건, 차량파손 773대, 도로·하천파손 77개소. 관악구청이 자체 집계한 이번 수해와 관련된 통계수치다. 관악구청 직원들은 지금 '비상 근무' 중이다. 관악구청 본관 3층에 마련된 재해대책본부는 24시간 비상근무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관악구청은 이번 피해가 '인재' 혹은 '관재'라는 주장에 대해 홈페이지를 통해 이렇게 사고원인을 설명해 놓고 있다.
"피해 지역은 한강의 최대 홍수위 보다 높고 배수기능이 원활하여 그 동안 피해가 거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만 짧은 시간에 폭우가 집중적으로 내려 관악산과 삼성산에서 내려온 물이 계곡 주변의 차량들과 함께 떠내려가 하수박스를 막으면서 하수가 범람하여 주변 주택 및 상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으며 이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관악구청 하수과 관계자는 사고원인에 대해 여러명의 주민들이 지적했던 '난개발과 배수관 설계'의 문제점에 대해 묻자 "처음 만들 때 이미 그런 상황들을 감안해서 설계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개선방향에 대해서는 "서울시와 전문기관의 실태조사가 끝나봐야 뭔가 계획을 수립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서울시청 치수과 담당자의 이야기는 좀 달랐다.
"이미 관악구청에서 피해조사를 진행했고 복구 계획도 수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돈을 빨리 달라고 해서 급하게 예산을 집행 했습니다. 관악구청이 처음 큰 피해를 당해보는 거라 정신이 없는 거야 알지만, 아마 입이 백개,천개라도 할말이 없을 겁니다."
결국 신림6동과 10동의 수해주범은 서울시립대 이수곤(토목공학)교수 팀이 밝힌 조사결과 나타났듯이 '난개발과 이에 따른 배수용량 조절 실패'로 드러났다. 주민들이 지적했던 원인 분석이 정확했던 셈이다.
신림6동과 신림10동에는 총577가구 1140명의 생활보호대상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관악구청 복지사업과에 따르면 관악구의 생활보호대상자 수는 서울시 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많다. 기초생활조차 누리지 못하고 재개발된 아파트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이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의례적인 인사보다 철저한 '원인규명'과 납득할 만한 사후방안일 것이다.
2-3평에 불과한 쪽방 이지만 자신의 보금자리가 물 때문에 다시 잠기지 않기를 이들은 지금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 곳에 살고 있는 많은 주민들이 82살된 김원단 할머니처럼 이번 수해에서 나타난 문제를 보상이나 구호물자 전달보다 '원인규명'에 두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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