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학의 지난 10여 년은 참 황폐한 시절이었습니다.
세상의 저자거리마다 꽃은 피었는데 향기는 나지 않고 노래는 울창한데도 즐거워해야 할 귀청은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거짓으로 회칠된 세상과 싸우던 시인들은 분노로 날밤을 새우다 끝내 목숨을 세상에 두고 떠났지만 그의 죽음을 괴로워하는 시인은 몇 되지 않습니다.
한 시절 무엇으로 살며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고민하던 시인들과 작가들은 잠시 방향을 잃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자본의 급류를 타며 문단 데뷔에 못지 않은 화려한 변신으로 이제 배곯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주의·자본주의 양대 체제의 균형 파괴로 인한 세계 질서 변화와 신자유주의에 급습된 국내 사회의 급격한 해체 등의 외부적 환경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빈곤한 삶의 진정성과 땀의 기반을 무시한 허구적 민족문학(작가 지상주의)이 불러온 필연적 현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래도록 황폐함으로 날밤을 새운 결과, 떠날 사람은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남았지만 남은 이들마저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총총하던 눈매는 흐릿해졌고, 날카롭던 목청에서는 헛소리가 쉴 새 없이 튀어나와 세상을 헷갈리게 하면서 길 따라오던 젊은 벗들을 혼돈으로 교란시키기도 했습니다.
한시바삐 허상으로 덧칠된 민족문학의 간판은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논의하고 검증해 몸으로 사는 실천의 글들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것은 민족문학이 현란한 수사와 궤변의 진흙탕에 팽개쳐져야 할만큼 탕아가 아니기에 희망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 입니다.
민족문학은 말 그대로 민족에게 복무하는 문학이어야 하며 작가의 사고와 발품은 민족의 현실과 민중의 터전을 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누가 전선이 허물어졌다고 허위증언 합니까? 눈을 들어 세상을 보십시오, 과연 허물어졌고 끝났는지, 개혁전야인 지금 승냥이처럼 혹은 하이에나처럼 개혁의 몸체를 물어뜯는 저 아귀 같은 무리들이 지르는 괴성이 잘 들리지 않습니까.
한 시절 독재정권과 천민자본에 맞서 글줄을 휘날리던 시인과 작가들은 어서 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왜 맹인이 되려고 합니까. 어찌해서 갈 길을 몰라 헤매다 시궁창에 빠지고, 빠지려고 자청합니까. 왜 귀머거리인 척 하면서 이 땅의 누이와 어미, 아비의 울부짖음을 애써 외면하며 저네들의 태평가를 후렴 하십니까.
이 땅의 문학은 삶의 터전에 가래침을 뱉고 늙은 어미 아비의 눈물을 희롱해왔음을, 그리하여 술잔에 코를 박는 것이 작가의 수작인 것처럼, 건강한 생활로 달궈지는 노동의 일상을 능멸해왔음을 솔직히 자인해야 합니다.
시인이여! 작가여! 더 이상 비겁해지지 마십시다. 세상을 헷갈리게 하고, 진실을 왜곡시키는 글을 우려먹는 룸펜(한국식 표현은 '놈팽이')의 습성을 폐기처분 하도록 하십시다.
민중을 팔아 술잔을 채우고
민족을 들먹이던 낮은 가고
분탕질의 욕망을 채우는 밤의 그 허튼 짓,
지면 한 자락 얻을까 잃을까 아둥바둥하던 그 좁쌀 같은 짓
문명(文名) 하나로 세상 권세 얻은 듯 하는 그 허망한 위세
그 따위의 망할 것들을 패대기치고
가서 싸우십시다.
몸이 허약해 두렵거든 싸움의 현장에 파견돼
두들겨 맞고 쫓겨나는 그네들
눈물과 비명과 소리외침을
볼펜 꼭꼭 눌러 기록하고
그네들의 눈물과 아름다움을 더도 덜도 보태지 말고
있는 그대로 가슴에 새길 것을
그래서 우리가 부끄러움을 아는 가슴임을...
그러나 전사가 되자는 것도 투사가 되자는 것도 아닙니다. 시대 또한 그걸 원치 않습니다. 그저 씨줄낱줄의 촘촘한 그물처럼, 제 정신들어 세상을 바로 보고 바른 소리로 엮을 것을 요청하고 있을 뿐입니다.
변절한 자는 반성하지 않고 죽었고 죽어갈 것입니다. 변절의 대물림을 통해 후계구도로 권력을 이양하고 변절의 공화국을 이룰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 때는, 진정한 삶의 실천으로 긴 밤과 씨름했던 건강한 혈통이었습니다. 적어도 시정잡배는 아니었음을, 그래서 시대는 훼절한 과거를 버릴 것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이 사회학자의 의식을 인도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학자의 뒤꽁무니도 쫓지 못할 정도로 몽롱한 상태입니다. 새벽을 부르던 날선 정신은 어디에 팽개치고들 할 소리 못할 소리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를 비하할 때 '개 짖는 소리'라고 하곤 하는데, 하지만 개 짖는 소리는 도둑이 왔음을 알려주는 경보음이 되기도 합니다. 개짖는 소리가 때로은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중요한 신호음입니다.
한 사회학자의 글로 글을 끝맺겠습니다. 글은 작가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작가가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어디선가 정신을 깨우치는 일어섬의 글이 쓰여지고 있음은 매우 기쁜 일입니다.
거창하고 화려하고 세련된 무수한 '겉도는 말'에
유혹 당하지 않도록 서로를 도와주면서
우리의 삶을 토론할 수 있는 '말'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자
우리 삶 한가운데서 나오는 지식,
자신의 내면에서 삭혀서 나오는 글을 쓰자.
힘을 빼기보다 힘을 솟게 하는 글.
만병통치약을 바라는 조급함 속에서 쓴 글이 아니라
'우리'를 만들어 가는 여유 속에 쓴 글을,
생각을 풀어주고 마음을 풀어주는 그런 글을 말이다.
〈조혜정, '글읽기와 삶읽기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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