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열에 선 여자친구와
진압복 입은 남자친구의 짧은 만남

등록 2001.07.26 15:24수정 2001.07.2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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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명동에서는 비가 많이 내리는 가운데 창원지역 화학섬유관련 3개 회사가 상경 집회를 가졌다.

방패너머 가슴 시린 풍경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진압경찰과 시위대의 만남은 달갑지 않은 아픔을 남긴다. 때론 진압 방패를 사이에 두고 애인이, 형제가, 친구가 아픔을 나누기도 한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집회에 5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석했고, 그들은 모두 비닐로 만든 옷을 입고는 있었지만 전날 저녁 늦게 서울에 도착해 모 대학에서 숙박을 한 탓인지 모두들 힘들어 보였다.


그들과 마주 대하고 있는 의무경찰들 또한 한없이 내리는 비에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한참 집회가 진행되어가고 있을 때, 집회에 참석한 20대 초반의 한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와 마주 대하고 있던 한 의무경찰은 고개를 떨구었다.

'7년 동안 사귄 애인.'

남자는 2년 전 의무경찰에 입대해 이제 전역을 3개월 남겨둔 고참이었고, 여자는 창원의 한 섬유회사에 취직해 있었다. 그들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주위의 친구와 동료들이 부러워하는 애인 사이였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너무도 다른 상황에서 서로를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과격하고 극한 대립은 아니었지만 여자는 머리에 붉은띠를 묶고 '고용 안정'이라고 쓴 조끼를 입고 작은 주먹을 쥔 채 구호를 외치고 있었고, 남자는 집회가 불법적인 시위로 변질된 경우 이를 차단하기 위해 잔뜩 긴장이 되어 있었다. 그들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오갔다.


이 걸 알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하늘에 구멍이 나기라도 한 것일까? 장대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집회는 끝났고, 여자는 그들이 숙소로 정한 대학으로 돌아갔다.

결국 서로 한마디 말도 나누지 못한 채, 남자친구 또한 경찰서로 돌아왔다. 그날 차디찬 바닥에서 잠을 잘 여자친구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던 그는 결국 내게 도움을 청해왔다.


▲ 밀어붙여야 하는 사람들과, 막아야만 하는 사람들. 정말 '못할 짓'이다. 어디에도 '이 짓'이 좋아서 즐기는 사람은 없다. 그저 살아야 하므로...
ⓒ 오마이뉴스 노순택


그는 "지금 여자친구 얼굴 한 번만 보고 오면 안되겠냐?"는 말과 함께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내게 얘기했다. 결국 나는 방범순찰대의 지휘관에게 허락을 받아냈고, 내 차에 몸을 맡긴 그는 계속 울먹였다. "왜 취직은 하지 말라는 데 해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는, 여자친구와 집회현장에서 마주쳐야만 하는 현실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둘은 만나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난 대학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갔다온다며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내게 전화가 왔다. "다 봤으니 돌아가자"는 말이었다. 혹시 그들은 처음부터 헤어질 때까지 울기만 한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아무 말도 필요 없었으리라. 그들은 그냥 서로를 부둥켜 안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는 어느 집회현장에 출동해 있다. 군 생활, 남은 기간 동안 그의 출동은 초조하고 불안한 순간의 연속이 될지도 모른다. 혹 어느 현장에서 또 여자친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그가 '희망'을 가지고 있음을 믿는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항상 자기 옆에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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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현직 경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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