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짜리에게 배달통을... ?

등록 2001.07.27 22:26수정 2001.07.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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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광일아, 배달."
엄마는 배달통을 들어 보였다. 장난기가 또 발동한 것이다. 반은 찡그리며 반은 웃으며 일어서는 아이는 친구들을 한 번 휘 둘러 보았다. 오늘따라 여자 애들이 많았다.

"왜, 배달 가기 싫어?"
엄마는 목소리를 더욱 높인다.
"엄마는 꼭……."
엄마에게 눈을 흘기며 조그마하게 특별 제작된 배달통을 받아 든다.
"주차장이야, 돈도 받아 오고."
"……."


아이가 처음부터 배달을 잘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어렸을 때부터 배달 수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광일아, 배달 좀 갔다 올래?"
"싫어요."

쟁반 위에는 냉면 한 그릇이 올려져 있었다. 국물이 없는 것을 일부러 고른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쉽게 대답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엄마와 아들 사이의 실랑이는 계속 되었다.
"저기, 가깝잖아. 천천히 갖다 주고 와."
"…… ."

아이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 뭐 먹을래? 흘리지 않고 갔다 오면 사 달라는 거 다 사줄 게."
그제야 솔깃한 듯 고개를 들었다.
"통닭이요."
"좋아. 두 마리 사 줄께."

아이는 쟁반을 받쳐들고 조심조심 걸어 나갔다. 엄마아빠의 마음도 조마조마했다.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냉면 한 그릇 배달료로 냉면 몇 그릇 값은 족히 지불됐다. 배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가할 때의 배달은 영락없이 아이의 몫이었다. 배달료는 좀 비싸게 먹혔지만 아깝지 않았다. 조그만 배달통까지 특별 제작했다. 친구들이 놀러라도 오는 날이면, 없는 배달이라도 만들어 내는 엄마였다.
그러니 여자 친구들이 많이 왔는데 그냥 넘길 엄마가 아니었다. 여자 친구 앞에서 배달 통을 드는 일도 이젠 이골이 났다. 그렇게 어린 녀석에게 배달을 시키기 시작한 까닭이 있었다.


아이가 앞으로 무슨 일이든 당당히 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 주고 싶었다. 살아가다 보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지도 모른다. 그 때를 대비하여 험악한 일도 시키는 것이었다.

솔직히 아이가 배달통을 질질 끌 듯 들고 가는 안쓰러운 모습을 지켜보기란, 아빠로서 참기 어려운 시간이다. 오히려 아빠가 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마음도 편하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이든 서슴치 않고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안쓰러움도 참고 견디어야만 했다. 그런 녀석이 어느덧 나라를 지키는 국군 장교가 되었다. 앞으로도 세태에 물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주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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