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비통, 김병관의 퇴임사

27일 오후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다"

등록 2001.07.28 00:21수정 2001.07.30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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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의 김병관 명예회장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 7월 27일 사표를 제출, 수리된 김병관 동아일보 전 명예회장. 그는 인촌 김성수의 3세이자 현재 탈세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있다. ⓒ 최승환
동아일보사는 27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김병관 명예회장과 오명 회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로써 동아일보사 명예회장이자 이사였던 김 회장과 대표이사 회장이었던 오명 회장은 동아일보사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게 됐다.

김병관씨는 이날 퇴임사를 통해 "동아일보가 지금 시련에 처한데 대해 저는 무거운 책임감과 안타까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면서 "동아일보가 시련에 처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이사직, 명예회장직도 내놓고, 주주로서만 남겠다"고 밝혔다.

A4용지 2장 분량의 퇴임사에는 "분노"와 "비통"이 섞여 있다.

김씨는 "81년이란 동아일보의 긴 역사에서, 그리고 창업자 3세로서 온갖 영욕을 겪어왔지만 지금처럼 회한스런 적이 없었다"면서 "국세청이 부과한 추징금과 공정위의 과징금, 검찰이 조사하고 있는 국세청의 고발내용중에는 억울하고, 부당한 부분도 많고, 최종적인 것은 사법적 판단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특히 "법률적 판단도 나오기 전에 저와 제 가족을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언론사주로 매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도언론의 빛나는 역사를 가진 동아일보를 조직적으로 음해하며 궁극적으로 동아의 독자들 마저 모독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행태에 대해서는 분노한다"면서 동아일보 임직원들에게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명운이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명감으로 단합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동아일보는 민주주의를 짓밟는 일제와 독재권력에 대항해 영욕이 교차되는 역사를 겪으면서도, 꿋꿋이 언론의 사명을 훌륭하게 수행해 왔던 자랑스런 역사를 갖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개혁과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시키려는 세력에 대해 엄정히 비판해 우리의 기본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병관씨는 창업주 인촌 김성수 선생의 손자로, 1968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1989년부터 3월부터 대표이사 회장 겸 발행인으로 재직하다가 올 2월에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오명 회장은 1996년 동아일보사 대표이사, 1996년6월 동아일보사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해 발행인, 편집인, 인쇄인 등을 맡았으며, 올 2월부터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직해왔다.


한편 동아일보의 한 직원은 "세금 탈세 혐의 등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본인 부덕의 소치라고 판단해 물러난 것 같다"면서 "이 과정에서 정권의 압력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관계자는 "임시이사회에서 전 임원이 사표를 제출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중 김 명예회장과 오명 회장의 사표만 수리된 것으로 안다"고 했으나, 경영전략실의 한 관계자는 이 사실을 부인했다.

한 동아일보 현직 기자는 "김 명예회장 부인의 자살 사건이 발생한 전에는 정부와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가자는 말도 나왔으나 그 뒤에는 사내에서 (정부의 조치에 대해) 격앙된 분위기가 형성됐다"면서 "이번 사건으로 사내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명 회장 체계는 김 명예회장의 장남 김재호 씨의 '차기 대권'을 옹립하기 위해 존재하던 임시체제였다"면서 "이번 사태로 인해 현 김학준 사장의 과도 체제로 대체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음은 김병관 명예회장의 퇴임사 전문이다.


친애하는 동아 가족 여러분

저는 지금 매우 비통한 마음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단호한 각오로 말씀을 전합니다. 원인과 경과를 차치하고, 동아일보가 지금 시련에 처한데 대해 저는 무거운 책임감과 안타까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일제치하에 동아일보를 창간해 정간과 기사삭제, 압수 등 갖은 탄압속에서도 국가의 독립과 민족의 자존을 위해 헌신하신 창업주이자 조부이신 인촌 선생과 해방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불굴의 의지로 독재 권력의 온갖 회유와 탄압을 이겨내시면서 동아일보를 키워주신 부친 일민선생의 노력을 생각하면 후손으로서 선대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또 동아일보를 민족의 신문으로, 한국의 대표신문으로, 세계적인 신문으로 성장하도록 피와 땀을 바쳐온 전 현직 동아가족에게도, 그리고 누구보다도 동아일보에 변함없는 기대와 애정, 믿음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과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고 있는데 대해 더할 나위없는 송구스러움을 느낍니다.

임직원 여러분. 저는 지금 제 70평생의 마지막 모든 것을 걸고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동아일보가 시련에 처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통감합니다. 이사직, 명예회장직도 내놓았습니다. 주주로서만 남겠습니다.

지난 33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81년이란 동아일보의 긴 역사에서, 그리고 창업자 3세로서 온갖 영욕을 겪어왔지만 지금처럼 회한스런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궁극적인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국세청이 부과한 추징금과 공정위의 과징금, 검찰이 조사하고 있는 국세청의 고발내용중에는 억울하고, 부당한 부분도 많습니다. 최종적인 것은 사법적 판단을 구할 것입니다. 관행으로 행해오던 법에 어긋나는 회계처리는 과감히 시정되어야할 것입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나 법률적 판단도 나오기 전에 저와 제 가족을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언론사주로 매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도언론의 빛나는 역사를 가진 동아일보를 조직적으로 음해하며 궁극적으로 동아의 독자들 마저 모독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행태에 대해서는 분노하게 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자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것도 결국은 저의 부덕의 소치입니다. 가족들에 대한 사랑 못잖게 동아일보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아내의 죽음이 궁극적으로는 동아일보를 지키고 거듭 태어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의 아픔을 견딜 길 없습니다.

친애하는 동아가족 여러분. 동아일보는 반드시 위기를 이겨내고 도약해야합니다. 저는 떠나지만 동아일보는 반드시 다시 서야 합니다.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명운이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명감으로 단합해 주십시오. 동아일보는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의 보루입니다. 이 나라를 세우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중심인 것입니다. 그것은 독자들과의 결코 변할 수 없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 동아일보는 민주주의를 짓밟는 일제와 독재권력에 대항해 영욕이 교차되는 역사를 겪으면서도, 꿋꿋이 언론의 사명을 훌륭하게 수행해 왔던 자랑스런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개혁과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시키려는 세력에 대해 엄정히 비판해 우리의 기본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합니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언론의 정도를 용기와 인내를 갖고 지켜야 합니다. 동아일보의 정체성도 이같은 원칙에서 조금의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임직원 여러분.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저는 떠나지만 동아일보는 반드시 살아야 합니다. 어떤 외압,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단합을 통해 권력의 남용과 사회부조리에 대한 감시 비판이라는 동아일보의 본연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사원 여러분. 여러분이 회사를 아끼고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한마음 한뜻으로 합쳐주십시오. 좋은 신문,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여러분은 각자의 역할과 업무에 최선을 다해 주시기 부탁합니다.

독자와 국민여러분께도 부탁드립니다. 동아일보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여주신 여러분의 성원에 정말 무슨 말로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질책과 함께 더 큰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1년 7월27일
김병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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