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한 동생이 보내온 소포

"아우야, 첫 싸움에서 내가 졌다"

등록 2001.07.30 18:39수정 2001.08.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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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에 찾아온 손님

밤늦게 이것저것 하느라 잠 못 이루다 오후가 되기 전에 일어났다. 그때 1층에 사는 아저씨가 문을 두드렸다. 아저씨와 눈인사는 나눴지만 말을 나눠본 적은 없었다. 더욱이 반지하 작업실에 내려온 경우는 없었다.


작업 때문에 집을 비워두는 일이 많았고, 그런 일이 벌써 반년이 지났건만 무심해도 여간 무심한 게 아니었다. 아저씨 손에는 라면박스보다 작은 종이상자가 있었다. 지레 짐작하길 음식을 담아왔구나 생각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학생이 000이요? 어제 소포가 왔는데 누군지 통 알 수가 있어야지."

경품당첨이겠거니 하며 소포를 받고는 보낸 이가 누군지 살펴봤다. 다름 아닌 동생이었다. 26살 늦깎이로 군대에 간, 나에게는 하나뿐인 핏줄이다. 더운 바람이 작업실로 들어왔고 잠시 유골이라도 받아든 듯 떨었다.

동생에 대한 기억

동생을 만난 건 1년만이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회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녀석은 이제야 군대 가게 되었다며 짐싸들고 올라온다고 했다. 대전에서 학교를 다녔고 졸업한 뒤에도 종교활동에 빠져 있는 녀석을 나는 환자라고 불렀다.

솔직히 말하자면 할 말이 없다. 대학시절 문익환 목사의 시집을 던져주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래야 한다며 동생을 타이르고는 했다. 딴에는 현실에 투철한 리얼리스트인 양 동생에게 위선을 부렸던 것이다. 그때 동생은 재수생이었다.

동생과 같이 살던 자취방은 이른바 철부지 학생운동원들이 모여 술을 먹는 장소였는데 동생은 그 틈에서 종교에 더욱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동생과 멀어졌고 녀석이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는 명절 때가 되어야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 둘은 제사문제로 갈등했고 작년에는 할 수없이 지방대신 기도문 형식으로 대신하곤 했다.


나에게는 손님, 동생에게는 성경

그 일이 있은 후 일 년이 흘렀다. 사무실에서 황석영 님이 쓴 '손님'을 읽다가 문득 동생이 생각났고, 우연인지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수에서 기차를 탄다고 했다. 졸업 후 여수에 있는 양로원에서 노인들을 돌보고 있었고 이제야 군대에 가게 됐다며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4시간 뒤 동생은 박스를 어깨에 매고 내게로 왔다. 짐은 소박한 정도가 아니었다. 책이며 옷은 친구에게 맡겼다며 내게 가져온 것은 겨울에 입었던 옷이었다. 비오는 날 차 안에서 동생의 종교관에 대해서 설득해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그의 신념은 폭우와 같았고 난 이리 저리 변하는 여우비에 불과했다.

제 또래들은 벌써 제대한 뒤 자신의 이상을 위해 달리고 있지만, 동생은 그런 이상과는 멀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신앙인으로 살고 싶다는 것, 동생이 풀어놓은 고민이었다. 나는 차를 멈추고 지금 네가 믿는 종교는 아주 현실적인데 너는 왜 아직 이상에서만 살고 있냐고 꾸짖었다.

비는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 낮은 데 고인다. 이 시대 종교가 그렇게 했을까. 비가 오면 죽순처럼 외형만 키웠지 그 아래 있는 민중에게는 입 적실 정도밖에는 한 일이 없지 않느냐고 동생에게 따졌다. 동생은 처음 듣는 성경 한 구절을 얘기 할 뿐 말을 하지 않았다.

동생처럼 순수한 종교인들이 이 시대 빛과 소금 역할을 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하필이면 동생이 그런 힘겨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게 원통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차라리 돈 잘 버는 목사였다면 이렇게까지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나의 이기심은 숨긴 채 동생과 하룻밤을 보냈다.

동생이 새벽기도 나간 사이

새벽 3시쯤 동생은 기도하러 간다고 했다. 나는 꼬인 마음을 담은 채 '이 어두운 시간에 교회가 설마 문을 열어 놓겠냐'고 핀잔을 줬다. 몇 분 후 동생은 웃으며 들어왔다. 나는 그것 봐라며 쾌재를 불렀지만, 동생은 조금 있으면 문 연다고 같이 가자며 되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동생이 새벽기도를 간 사이 동생의 수첩을 훔쳐보았다. '팡세노트'라고 적힌 수첩에는 난공불락과 같은 그의 사상이 담겨져 있었다.

"오늘 두 번째의 장례식을 치루었습니다. 주님! 이번이 애양원에서는 7번째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삶과 죽음…. 주님은 안행례 할머니의 생애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비전은 무엇입니까? 죽음의 그 자리에서 사위들과 손자들에게 전도하셨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음의 그 자리에서도 전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2001.3.29>"

동생과 아침밥을 먹고 고향으로 가는 길에 동생에게 더 이상 핀잔을 할 수 없었다. 76살까지 살겠다며 인생목표를 빼곡이 적어놓은 그의 생각에 나는 먼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을 친척집에 데려다 주고 나는 일에 묻혀 입대하는 날짜도 잊고 있었다.

1전 1패를 기록하며

일주일 뒤 소포가 왔다. 그가 입대한 뒤 4일만이다. 소포를 뜯었을 때 땀 냄새가 달려들었다. 일을 핑계로 동생이 입대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해 어떤 모습으로 군생활을 버텨나갈까 궁금해진다. 편지에는 여전히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빼지 않은 채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는 짤막한 편지가 있었다.

동생의 높은 이상을 눌러주기 위해 '손님'을 죄다 읽고 편지지를 준비했다. 하지만 무엇을 꾸짖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막막했다. 광야에 잡초처럼 살겠다는 그의 의지에 비하면 나는 온실 안 화초에 불과하다. 온실 속의 온갖 유혹으로 그를 설득하지 못한다.

신의 이름으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과 그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동생의 성을 공격해볼까 고민하다, 한 줄도 적지 못하고 몸 건강하게 군생활 마치고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썼다. 그리고 '더위 조심하고'라고 써내려가다 '첫 싸움에서 내가 졌다'고 인정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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