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3모녀 인질극’ 엉성한 진압 피해자 숨져

경찰, 인질극 진압 수칙 무시 주먹구구식 작전

등록 2001.08.08 16:29수정 2001.08.0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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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영화에서나 봄직한 인질극 사건이 국내에서도 간간이 발생해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고 있으나, 한국경찰의 진압방식이 ‘조선시대 포졸 수준’이란 여론이 대전지역을 중심해서 전국을 들끓게 하고 있다.

지난 8월 1일 대전의 모 음식점에서 발생한 인질극 사건에서 경찰의 어설픈 진압으로 인질로 잡혀 있던 애기엄마와 등에 업혀 있던 애기가 중상을 입는 모습이 뉴스에 보도되자 이를 접한 시민들의 인터넷을 통한 분노와 비난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

인질로 잡혀 있다 목에 심각한 상처를 입고 뇌사상태에 빠진 애기 엄마는 지난 8월 7일 오후 4시 30분 끝내 숨졌다. 가족들이 지난 3일 만든 ‘대전3모녀 인질극 진상(http://www.idmap.co.kr) 홈페이지에는 7일 현재만도 1만5천여명의 네티즌들이 방문해 진압 경찰을 성토하는 글로 도배를 하고 있는가 하면, 대전북부 경찰서(http://djbb.cnpolice.go.kr)홈페이지에도 수천명의 네티즌들이 진압경찰을 향해 “총은 뭐하러 차고 다니냐, 인질이 너희 가족 같으면 각목으로 진압했겠느냐. 수준이하다”는 등의 항의와 욕설로 성토하고 있어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이트가 다운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대체 경찰의 인질극 진압방식이 어떠했길래 네티즌들을 분노케 하고 있는가. 한 전직 테러 진압부대원과 함께 TV뉴스 화면을 분석했다.

KBS 9시 뉴스에 보도된 화면(http://www.idmap.co.kr)을 보면 검은색 반팔 T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오른손에 식칼을 붕대로 동여맨 범인이 까만색 민소매 T셔츠와 빨간색 반바지를 입고 2살난 애기를 등에 업은 송 여인의 오른손을 움켜쥐고 7살난 딸애와 함께 2층에서 1층으로 계단을 걸어내려 오는 모습이 보인다.

인질범과 인질이 1층에 다다르자 까만색 경찰 조끼를 입은 경찰관이 범인과 인질을 향해 다가가 뭔가 말(해봐! 해봐!-현장 목격자의 증언-)을 걸자 범인이 애기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위협을 하고, 순간 겁에 질린 애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광경을 흰색 T셔츠를 입은 건장한 사내(경찰관)가 허리에 양손을 낀 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고, 범인이 도주할 승용차를 요구하자 경찰관이 등을 보이며 앞서 가고 그 뒤를 범인과 인질이 따라 가는 순간
차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관이 각목(쇠파이프)으로 급습하자, 이를 눈치챈 범인이 송 여인의 목을 찌르고, 진압하는 경찰을 향해 몇 차례 칼을 휘두른 뒤 자해를 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 사건으로 송모 여인은 대전 을지병원에서 목의 절반이 잘리운 채 뇌사상태로 의사들마저 손을 놓은 채 기적을 바라고 있으며, 등에 업혀 있던 2살배기 애기의 오른팔이 뼈까지 드러나는 중상을 입었고, 경찰과 3명도 부상당했다.

경찰의 인질극 장면을 본 테러 진압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전 특수부대원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진압작전이었다고 개탄을 금치못했다. 그에 따르면 인질극 진압의 기초도 모르는 엉성함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정도가 진압방식에 비해 적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는 지난 93년경, 애인의 변심에 충격을 받은 한 특공부대원이 수류탄과 k1소총으로 무장탈영해 무고한 시민 5명을 사상케 하고, 어린애를 인질로 잡은 채 막다른 골목길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는 현장에 출동해 인질범의 귀언저리를 저격하고 인질로 잡혀 있던 5살배기 애기를 긁힌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하게 구출해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낸, 진압부대원으로 경찰의 인질극 진압작전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칼 동여맨 인질범 제압 도구가 각목뿐(?)

그는 진압 경찰이 경찰종합학교에서 무슨 교육을 받았는지 조차 의심이 갈 지경이라는 것. 인질범을 앞에 두고 투항권고나 설득전 등 대 테러 진압에 기본적인 선무 활동 즉 심리전도 없었고, 특히 칼을 손에 동여맬 정도의 사생결단의 인질범 제압에 각목과 쇠파이프만을 사용한 것은 피해를 자초한 것이나 진배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인질극 진압작전은 인질이나 범인의 인명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다음과 같은 진압방식을 소개했다.

첫째, 이성을 잃은 인질범에겐 어떻게 하든 잘 구슬러 고조된 감정을 진정시키는 게 최우선이며, 이후 가족이나 친지들을 불러 설득전을 펼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한다. 범인은 막다른 길에 갇힌 쥐의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비위를 맞춰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는 것(대부분의 인질범은 이 과정에서 투항하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다반사며 인질을 해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80년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유행시킨 탈옥수 인질극 현장에서 풀려 나온 인질들이 오히려 범인들을 두둔하는 입장인 점을 보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설득을 해야 한다는 것).

둘째, 범인이 음료수나 음식을 요구할 때에는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강력 마취제나 신경안정제를 투입하는 방법을 동원했으면 의외로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범인의 심리상태는 극도의 흥분 상태로 갈증을 쉽게 느끼며, 그에 비례해서 섭취물의 체내 흡수율이 높아지게 되고 따라서 범인이 진정제나 마취제가 든 음료수를 마셨다면 진압작전은 90% 성공한 것이나 진배없다는 것이다(특히 아쉬운 것은 경찰과 대치상황에서 범인이 음료수와 음식을 요구했음에도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라며 아쉬워했다).

셋째, 이러한 경우가 통하지 않더라도 진압요원들은 냉정한 이성을 유지해 인내심을 갖고 침착하게 차선책과 차차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범인이 힐로폰 등 환각상태가 아니라면 반드시 요구조건을 내걸고 협상을 시도하게 되어 있으며, 진압요원은 이 과정에서 충분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

범인이 흥분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면서 최대한 요구조건을 들어줄 것 같이 대응하면서 인질의 숫자를 최대한 줄여줄 것을 요청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당신도 자식이 있고 어머니가 있지 않은가? 약한 어린애와 여자가 무슨 죄가 있는가? 차라리 내가 인질이 되어 주겠다” 등의 말로 어린애나 여자들만이라도 풀려나게 해 최악의 상황에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전술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전이 통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강제 진압에 들어가야 하지만, 이 경우에도 범인을 자극하지 말고 범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하고 은밀하게 작전에 돌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리한 대치상황이지만 진압 순간은 그야말로 눈깜짝할 정도인 10초 내외여야 하며 인질범이 인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순간,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저격수가 흉기를 든 손이나 어깨죽지를 정확히 명중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인질들의 안전을 100% 장담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국내 인질사건 대부분이 3단계에서 종료되는 경우가 허다하며, 강제진압시 인질과 범인의 부상이 속출하는 예가 대부분이라는 것).

인질극 진압작전의 문제점

첫째, 경찰이 사건현장을 비디오로 촬영을 하는 세심함을 보이면서도 정작 진압작전은 너무나 어설펐다는 점이다. 경찰특공대나 각 광역지방청의 특공대의 지원요청없이 자신들 혼자만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과욕이 앞섰다는 것. 특히 범인의 눈에 띄지 않는 도주로 요소요소에 요원들을 배치해 범인의 방심한 틈을 노렸으면 수월하게 작전을 종료했을 수도 있다는 견해다.

경찰이 촬영한 비디오를 보면 범인이 인질의 목을 뒤에서 감싼 채 칼을 들이대지 않고 왼손으로 인질의 오른쪽 손목만을 잡고 걸어가고 있으므로 순간 뒤쪽에서 전기충격기를 사용해 진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지적했다.

둘째, 테러 진압부대에 진압 요청을 하지 않고 인질극 진압 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일선 경찰이 스스로 작전을 수행했다는 것이 인명피해를 초래했다는 것.

경찰특공대 같은 대 테러 전문 진압요원이 현장에 출동해 작전을 펼쳤더라면 단 10초 안에 상황을 종료할 수 있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대테러 전문 저격수들은 20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권총 사격 표지판의 흑점을 정확히 명중시키는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이들로서 칼을 든 범인의 손목이나 어깨죽지를 총격했다면 인질의 피해는 없었을 것이며 특히, 인질범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보면 범인과 인질과 상당한 이격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저격수의 제압은 식은 죽먹기였다는 테러진압 전문가의 의견이다.

셋째, 각목이 아닌 전기 충격기를 사용했더라면 무고한 인질과 경찰관의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음에도 각목을 사용한 것은 상식 밖의 진압방식으로 많은 부상자를 양산했다는 비판이다.

경찰관의 각목공격이 어깨를 약각 스칠 정도여서, 위험을 느낀 범인이 완강히 저항하고 이 과정에서 애꿎은 애기 엄마와 애기가 치명적일 정도의 부상을 입게 된 것이다.

만일 각목이 아닌 30만 볼트의 전기충격기를 사용했다면 그 누구도 다치지 않을 수도 있었음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전기충격기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몸에 닿는 순간 일순간 온 몸이 마비된 상태로 2분에서 5분간 의식을 잃게 된다고 한다.

여하튼 이번 경찰의 작전은 완전히 조선시대 포졸들의 수준이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을 지경이다. 피해를 본 시민들에게 국가적인 차원의 보상과 사죄가 있어야 한다.

한 네티즌의 흥분된 글은, 이번 사건을 통해 바라본 우리 경찰의 초라한 현실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으로 2만 5천 네티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내가 만약 인질범에게 잡히는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절대 현장에 출동하지 마라. 내 목숨은 내가 알아서 인질범에게 구걸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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