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돼지 저금통

등록 2001.08.11 23:23수정 2001.08.1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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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갔다 오면 나를 반겨주는 것이 둘이 있다. 하나는 순이라는 예쁜 강아지이다. 맛있는 것이라도 하나 주면 더욱 더 꼬리를 치고 애교를 부리면서 좋아한다. 그러면 나는 안아주고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언제나 미소만 짓고 있는 빨간 돼지저금통이다. 강아지처럼 재롱이나 애교는 부리지 않지만 나와는 10여년간 침묵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비록 말은 못하지만 난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언니, 배가 고파요, 동전을 주세요"라는 말을 돼지저금통은 말대신 빙그레 웃으면서 나에게 알려준다. 그러면 나는 "안녕 돼지야, 배가 고팠지? 하면서 10원짜리나 100원짜리 동전을 구멍 속에 넣어준다. 그리고는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듯이 저금통을 흔들어 본다. 얼마나 들어 있을까. 언제쯤이면 가득 찰까 하는 기대와 설레임으로...

저금통과의 인연은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리본 모양이 그려져 있는 조그만한 빨간 돼지 저금통을 사주시면서 시작되었다.
"지현아. 이제부터는 용돈이 생기면 이 저금통에 넣어라"하시면서 저금통에 동전 몇 개를 넣어주셨다.

처음 저금통을 받았을 때는 별 마음이 없어 그냥 아버지의 선물로 받아서 방 한구석에 놓아두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께 일주일 단위로 500원씩 용돈을 받았는데 그 용돈은 군것질을 해버려서 하루나 이틀이면 돈을 다 없어져 버렸다.

돼지 저금통을 선물받은 지 한두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저녁식사 시간에 "우리 지현이는 밥도 많이 먹고 아무 반찬이나 잘 먹으니까 몸이 아주 튼튼하지. 그런데 네 방에 있는 돼지 저금통은 배가 고파서 어떻게 하지?"하고 아버지께서 물어보셨다. 그때까지 나는 저금통에 돈을 한번도 넣지 않았다.


"돈을 많이 넣으면 돼지가 배가 고프지 않을 거예요"하고 아버지께 대답을 하였더니 "그래 맞아 네가 어머니께 받은 용돈을 다 써버리면 돼지저금통은 배가 고프고 나중에 네가 저축을 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일 닥치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큰 돈이 필요할 때 사용을 하지 못해. 그렇기 때문에 돈을 사용하기 전에 미리 저축을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그날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난 뒤 나는 돼지 저금통이 배가 고프지 않도록 해야 되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을 하였다.


그후 어머니께서 용돈을 주시면 돼지 저금통에 넣었다. 학교를 마치고 올 때 친구들이 군것질을 할 때는 조금은 먹고 싶었고 부러웠지만 꾹 참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금통을 흔들어 보면서 짤랑짤랑거리는 소리에 즐거워하였다.

몇 달이 지나자 저금통을 들면 제법 묵직하고 흔들어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께 저금통이 다 찼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우리 지현이가 아버지와 약속을 잘지켰구나"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는, 내일 저금통을 은행에 가져 가서 통장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다음 날 아버지와 함께 은행으로 가기로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려서 집 옆에 있는 장둑이 터져 동네로 물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집 1층에도 물이 들어와 1층 아저씨들과 부모님께서 며칠 동안 집안의 물을 퍼내고 물을 젖은 옷가지면 전기제품을 햇볕에 말리셨다. 우리집뿐만 아니라 동네 전체가 다 그랬고 울산 시내 전체가 홍수에 물난리가 났다고 부모님과 아저씨께서 걱정을 하셨다.

며칠 동안 1층 아저씨 가족들은 2층에서 지내다가 내려가셨다. 돼지 저금통을 은행에 가서 저금통장으로 바꾼다고 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우리도 이번에 수해의연금을 내는데 얼마는 내야지"하고 말씀을 하시면서 "지현아. 우리 이번 수해의연금을 내는데 너의 돼지 저금통을 내면 어떨까?"하고 물어보셨다.

난 그때 수해의연금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그리고 내가 모은 저금통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싫어서 "안돼요"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아버니께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저축은 자신에게 필요하기도 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도 필요한 일이라면서 내일 아버지와 같이 방송국을 가자고 하셨다.

그날밤 나는 돼지 저금통과 헤어지는 꿈을 꾸었다. 나는 슬퍼서 자꾸 저금통을 놓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저금통은 막 웃으면서 내 곁을 떠나 버렸다.

다음날 아버지와 함께 방송국에 갔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수해의연금을 내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서 돼지저금통을 드렸더니 아나운서 아저씨께서 "참 착한 아이구나. 용돈을 아껴 이렇게 좋은 일에 사용하니까"하시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께서 "지현아 섭섭하지"하고 물으셨다.
나는 속으로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었지만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문방구에 들러서 지난 번 저금통보다 더 큰 돼지 저금통을 사주시면서 "오늘 우리 지현이가 참 착한 일을 했단다. 사람은 어려울 때 자기보다도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고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돼지 저금통이 배가 부르게 하는데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다음 날부터 난 아침이면 1층에 있는 신문을 가져다가 아버지께 드리고 아버지의 구두를 닦아드리고 100원을 받았다. 그러면 그 돈을 저금통에 넣었다. 조금은 힘이 들었지만 돼지 저금통이 조금씩 조금씩 차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주시는 용돈도 꼭 돼지 저금통에 넣었다. 1학년이 끝날 때쯤 저금통이 다 차서 아버지와 함께 은행으로 가서 내 이름으로 된 저금통장을 만들었다.

저금통장과 함께 은행언니는 집모양의 저금통을 하나 주셨다. "저축 많이 하세요. 귀엽고 착한 아가씨"라는 언니의 말에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아버지께서 돌아오는 길에 돼지 저금통을 또 하나 사주시면서 하나는 어머니가 주신 용돈을 저금하고 하나는 지현이가 수고하면서 받는 돈을 저금하라고 하셨다.

그 다음 날부터 나는 어머니의 용돈은 돼지저금통에, 아버지께 받은 수고비는 집모양의 저금통에 넣었다. 그런데 은행에서 준 작은 저금통은 빨리 가득차 은행에 자주 갖다주었지만 빨간 돼지 저금통은 부피가 커서 배가 빨리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집에 있는 빈병을 수퍼에 갔다 주면 돈을 주니까 그 돈을 저금통에 넣어라"고 하셨다 그날 이후 난 집에 있는 병을 슈퍼에 갔다 주고 몇십원씩 받아 저금통에 넣고, 그리고 집에서 나오는 신문지나 폐품을 고물상아저씨께 드려서 몇십원씩 받아 돼지 저금통에 넣었더니 은행의 저금통처럼 빨리 찰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빨간돼지 저금통과의 인연은 계속 되고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동생에게 빨간 돼지 저금통을 내가 선물해주고 아버지께 하는 일은 동생과 함께 하고 있다. 그 동안 저축은 우리집과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입학금이며 교복을 사는 값으로 그리고 아버지께서 아프셔서 병원비로, 동생이 필요한 물건을 살 때 등 많은 일들을 대신해주었다.

저축은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란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오늘도 빨간 돼지 저금통을 흔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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